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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참 민망한 혁신

중앙일보 2014.11.14 00:03 종합 35면 지면보기
영국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작품이 공연되고 있었다. 그런데 한 관객이 휘파람을 불어대며 야유를 계속했다. 참다 못한 쇼가 그 남자에게 다가가 물었다. “연극이 마음에 안 드시나요?” “시시껄렁하군요.” 쇼가 소리 죽여 제안했다. “나도 같은 생각인데, 우리 둘이 앞에 나가 공연을 못하게 막을까요?” “에이, 그럴 거까지야 있겠소.” “그렇겠죠? 그럼 그냥 봅시다.” 그 뒤로 남자는 조용해졌고, 연극은 방해 없이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쇼가 누군가. “우리가 결혼하면 내 미모와 당신의 두뇌를 가진 아이가 태어날 것”이란 이사도라 덩컨의 청혼을 “당신의 둔한 머리와 내 못난 얼굴을 닮을 수도 있다”고 자르던 독설가 아닌가. 그런 그도 누구를 설득할 땐 가시 돋친 혀를 말아 넣고 몸을 낮췄다.



 설득이란 게 그런 거다. 자신부터 수그리고 나서야 남도 목소리를 낮추길 기대할 수 있는 거다. 그런데 남을 설득해야 하는 게 직업인 사람들이 스스로 낮출 생각이 없으니 참으로 딱하다. 이 나라의 잘난 선량들 말이다.



 얼마 전 야당에서 그러더니 집권당의 정치혁신안도 의원들한테 거부됐다는 거다. 사실 혁신이라고 하기도 민망할 내용이다. 무노동 무임금 적용, 출판기념회 금지 같은 건 다른 나라 신문의 해외토픽감이다. 선량들의 자존심에 난 흠집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그런데도 기분 나쁜 건 스스로 “상처 받았다”고 떠드는 게 가소로워서다. 공연한 짓을 해 “혁신을 가로막는 정당으로 비치게 한 정치적 참사”라는 불만엔 분노까지 치민다. 선량들이 상처 받기 전 유권자들은 속이 문드러져 남아 있는 오장육부가 없다. 어째서 그런 안이 나왔는지 정녕 몰라서 참사 운운한다면 앞뒤 구분 못하는 철부지들과 다를 게 없다.



 선거구를 선관위가 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불체포특권을 제한하는 것도 시대 변화에 어긋나지 않으며, 어려운 경제현실에 세비 올려 달랄 염치도 없을 게 아닌가. 마땅히 받아들인 다음 진짜 해야 할 정치혁신들이 산적해 있다.



 그런데도 거부한다면 혼자만 시대착오적 특권을 내려놓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면서 지금껏 세월호 유족들을 어떻게 설득해왔으며 앞으로 공무원들을 어떻게 설득할 건지 괴이한 일이다. “세상의 악은 사람도 악 자체도 아니라 바로 특권에서 나온다.” 우리네 선량들이 주홍글씨처럼 새겨진 ‘최악’ 딱지를 떼고 싶다면 새겨둬야 할 19세기 미국 정치가 존 스티븐스의 말이다.



 이훈범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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