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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무정란 정치, 집권 3년 차 화두는 ?

중앙일보 2014.11.14 00:03 종합 35면 지면보기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가을걷이가 끝난 빈 들판에 쭉정이 벼를 수확한 농부의 심정은 어떨까. 며칠 전 어떤 모임에서 ‘무정란 정치’를 대하는 유권자의 마음이 그렇다고 했다. 무정란 정치, 알을 배지 못하는 정치다. 집권 2년을 경과한 박근혜 정권이 그렇다. 정상회담에, 연금 개혁, 세월호 대책 그리고 침체된 경제를 돌보느라 정신 없는 대통령은 무척 서운할 것이다. 그런데 어쩌랴, 손에 잡히는 게 없는 것을. 누가 대통령이 돼도 국회의 강력한 거부권을 뚫기는 어렵다.



 결혼도 3년 차면 신혼의 설렘은 사라진다. 출근길 정거장까지 나오던 그 신부가 퇴근이 늦었다고 눈 흘길 때를 조심해야 한다. 사랑스럽던 신랑의 그 버릇이 살림을 축내는 나쁜 습관인 것을 알아챘다. 유권자가 사랑을 거두는 것이 바로 이때다. 그래도 생래적 지지자들은 항변할지 모른다. 실적 제로가 안 할 일 하는 것보다 백배는 낫다고 말이다. 실제로 그랬다. 노무현 정권은 ‘4대 입법’을 강행하느라 사랑을 다 까먹었다. MB는 한·미 FTA를 통 크게 헌정했다가 그만 낭패를 당했다. 광우병 공포가 명박산성을 마구 타 넘었고, 급기야 정권의 예봉이 꺾였다.



 2010년 2월, 필자는 MB 정권 3년 차 기념강연에 초대됐다. 거기서 3년 차 역사적 과제를 ‘사회민주화’로 정의했다. 유럽 선진국의 일정이 그러했다. 정치민주화가 성숙하면 불평등 완화, 차별 제거, 기회균등 개혁으로 행군한다. 핵심은 노동시장과 복지를 연결해 생산성과 평등효과를 증진하고 주변 계층에 기회를 확장하는 것. 십시일반 비용을 부담하면 대통합의 길이 열린다고 말이다. MB 정권은 ‘공정사회론’을 걸고 내치에 돌입했다. 그런데 사랑이 식은 탓인지 뒷심이 달렸다. 토목공사만 기억에 남았다.



 박근혜 정권의 역사적 과제는 무엇인가? 훗날 무엇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손톱 밑 가시 뽑기?’ 혹은 ‘비정상의 정상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제3의 변혁’을 향한 시동을 걸어야 한다고. 한국의 근대 개혁은 120년 전 갑오경장에서 비롯됐다. ‘제1의 변혁’인 동학과 갑오개혁은 실패로 끝났다. ‘제2 변혁’은 박정희의 산업화였는데 유례없는 성공을 거뒀다. 제2 변혁의 유효성이 거의 소진된 이 시점이 바로 3단계로 도약할 때다. 게다가 내년은 광복 70주년, 한국전쟁 65주년, 한·일 외교 정상화 50주년이 되는 해 아닌가. 박근혜 정권의 역사적 꿈과 짐은 60갑자 두 번을 넘는 거대 변동의 경로를 확 바꾸는 일이다. 어떻게, 무엇으로? 청와대에 숨죽인 실세들이 답해야 할 질문이다.



 외치와 내치, 두 갈래로 주문하면 이렇다. 지난 120년간 외치의 목표는 우리를 후원할 ‘공평대국’을 찾는 일이었다. 다행히 박규수의 용어대로 ‘정의의 대국’ 미국에 기대 생존과 번영이 가능했다. 지금은 자립외교로 가라는 신호가 사방에서 번쩍인다. 박근혜 정권은 자존심 대결이 한창이다. ‘신뢰프로세스’가 ‘신뢰 받기’가 아니라면 체면을 접고라도 일본·북한과 ‘신뢰 만들기’에 나서야 한다. 중국이 먼저 신뢰를 보냈기에 망정이지 어쩔 뻔 했는가? 정한론자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의 정신적 제자인 아베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4강과 망나니 북한이 두는 강수를 살짝 엎어치기 하는 지렛대 전략이 묘수다. 신뢰를 줘야 지렛대가 넘어온다.



 오랜만에 한 건은 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문제는 자유무역이 국내에 미칠 충격을 흡수할 완충기 설치다. ‘국민대통합’ ‘복지와 경제민주화’ 같은 버려진 목표를 다시 꺼내 들어야 한다. 힘든 생계에 낙심하는 국민들을 어떻게 위로할까? 소비 급락에 우는 자영업자, 조기퇴직에 망연자실한 중·장년을 방치하는 국가는 정상국가가 아니다. 저급한 무상복지 논쟁을 잠재울 논리를 왜 못 찾는가? 복지는 양보한 임금을 보전하는 ‘사회적 임금’이다. 임금 양보가 없는 복지는 재정적자를 늘릴 뿐이다. 자유무역의 사회적 대비책은 강자의 임금 양보, 약자 수용 복지다.



 기업인·직장인·노동자 모두 신바람 낼 구심점은 어디 있나. 2년 수감 생활을 한 재벌 총수들도 그만하면 충분히 반성했을 거다. SK 최태원·최재원 형제를 비롯해 범법 총수들을 이제 통 크게 용서하면 어떤가? ‘사회적 기업’ 책을 출간해 각오를 다지는 최 회장에게 통신비 인하, 경제민주화에 솔선할 기회를 주는 것이 국익에 더 이롭다. 변혁을 향한 새로운 출발선에서 모두를 감전시킬 통합의지를 보여 달라. 분규 관련, 부당해고 노동자 모두 생산현장에 복귀시키고 강한 노동조합도 위기극복에 나서야 한다. 법치적 처벌보다 ‘생산성 동맹’을 모색하게 하는 게 한 수 위 정치다. 집권 3년 차, ‘제3의 변혁’을 가동할 통치철학, 국민들이 화답할 공명(共鳴)의 정치를 기대해도 좋을까.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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