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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비영리병원 규제, 누구를 위함인가

중앙일보 2014.11.14 00:02 경제 10면 지면보기
박병원
전국은행연합회 회장
철강, 조선 같은 우리 주력산업이 언젠가 중국에 밀려 지금 수준의 고용을 유지하지 못하게 될 수가 있고, 그때 우리 다음 세대가 의지할 수 있는 가장 유망한 산업이 의료산업이라는 것에 이견을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1990년대 들어 우수 인력의 의약계로 쏠리면서 우리는 지금 세계 최강의 의료인력을 가지고 있다. 60~70년대에 공대로 몰린 인재들이 오늘날의 주력 제조업을 일으킨 것처럼 이제는 의약산업이 우리 경제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때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최근 해외로부터의 환자 유치에 노력하는 등 이러한 노력이 강화되는 움직임이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의료산업이 그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기에는 규제가 너무 많다. 이 규제의 뿌리에 병원은 영리를 추구하지 않고 추구해서도 안 된다는 착각에서 비롯된 비영리병원 규제가 있다.



 의료법 33조 2항은 대한민국에서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는 주체로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조산사 등 의료업 면허를 가진 개인, 그리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의료법인과 민법상의 비영리법인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 법 시행령 20조는 비영리법인과 의료법인에 한하여 “영리를 추구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대 개인이 개설한 병·의원이 영리를 추구하여서는 안 된다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개인은 의료업을 통해 영리를 추구하여도 되지만 법인은 영리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이 이상한 규제는 아마도 비영리법인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영리법인과 비영리법인은 그 법인이 영리를 하는가,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그 법인에 대해 출자가 가능한가 아닌가의 차이에 의해 구분이 된다. 즉 비영리법인이란 출자금의 회수와 이익배당을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지 그 법인이 영리 추구를 해서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



 개인병원에서도 법인병원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의료업에 종사해서 돈을 벌어서 먹고 살고, 이익을 내고 세금도 내고 있다. 즉 영리를 하고 있다. 결국 법인이 병원을 만들 때 출연(기부)에 의해서만 밑천을 마련해야 하고 출자를 받을 수는 없게 만드는 것이 이 오해가 초래하는 최대의 해악이다. 오늘날 외국으로부터도 환자 유치가 가능한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병원을 세워 의료산업을 성장동력으로 키우려고 하면 거액의 투자가 필요한데 이것을 막고 있는 것이다.



 더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이처럼 국내 병원에 대한 투자를 금지하고 있는 나라가 외국의 병원에 대한 투자는 장려, 지원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서울대병원이 UAE의 왕립 칼리파병원의 위탁경영권을 따내어 거액의 대가를 받게 된 것에 고무되었는지, 보건복지부와 수출입은행 등이 출자하여 500억원 이상 규모의 ‘한국의료 글로벌 진출 펀드’를 만들어 해외병원 투자를 지원하려고 하고 있다. 정부의 돈까지 들어간 펀드가 외국 병원에 투자해서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은 좋은데, 우리나라에서는 “병원에는 투자를 할 수 없다”는 규제를 없애지 못하는 이 기막힌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 착각의 더 큰 폐해는 ‘밑천’에 대한 자본비용을 감안하지 않는 비현실적인 의료수가로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된다. 대부분 대형병원이 법인병원인데, 그 밑천을 대가를 주지 않아도 되는 출연으로 조달했기 때문에 의료원가를 계산할 때 자본비용을 고려해 주지 않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 대형 법인병원들도 작년에 1개를 제외하고는 다 적자가 났다. 그러니 자기 돈, 또는 차입에 의해 밑천을 조달한, 따라서 자본비용이 분명히 드는 개인병원이 이런 수가체계하에서 살아남기가 얼마나 어려울 것인가? 이래서는 의료산업이 발전할 수가 없다. 자본비용을 제대로 감안한 수가수준을 정해 주어야 하고, 그럴 경우에는 병원에 대한 투자를 인정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병원산업도 투자 유치를 통한 외부역량의 수혈이 절실히 필요하다.



 병원이 영리를 하면 안 되고 투자를 받을 수 없다, 병원산업이 국제경쟁에 노출되어 있지 않다는 등의 집단착각의 결과 우리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 그래도 될 정도로 우리 사정이 여유로운지, 우리 다음 세대의 일자리를 어디서 만들 것인지 답답하지도 않은가?



박병원 전국은행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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