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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탐사선 로제타 인류 최초 '혜성 착륙' 성공

중앙일보 2014.11.13 17:29
혜성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




11년 가까이 지구에서 태양까지 거리의 40배를 날아가 베르사이유 궁전 정도의 울퉁불퉁하기 이를 데 없는 표면에 세탁기 정도의 크기의 물체를 내려놓아야 했다. 서로 한 번 신호를 주고 받는데 1시간이 걸렸다. 성공보단 실패에 가까운 조건이었다. 그러나 유럽우주국(ESA)은 해냈다.

12일 오후 4시3분(세계 표준시 기준) ESA의 혜성탐사선 ‘로제타’에서 분리된 탐사로봇 ‘파일리’가 목성 주변의 혜성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이하 67P)에 착륙했다는 신호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혜성 정보도 함께였다. 안드레아 아코마조 ESA 비행 책임자가 “파일리가 표면에 도달했다는 착륙 신호를 보내왔다”고 공식 확인했다.







10년여 준비 과정을 거쳐 2004년 3월 발사된 로제타가 65억㎞을 날아가 10년 8개월 10일 만에 처음으로 파일리를 내려놓았고 파일리는 22.5㎞를 하강, 1㎢에 불과했던 예상 착륙 지점에 내려앉았다는 얘기다. 혜성이 초속 18㎞로 움직이고 중력은 지구의 10만분의 1 정도에 불과해 작은 충격에도 파일리가 우주로 튕겨나갈 수도 있었던 위험을 일단 넘긴 것이다.



ESA의 의 장자크 도르댕 사무총장은 “인류가 큰 인류가 큰 걸음을 내딛었다”고 선언했다. ESA의 과학자들은 “내 인생 최고의 날”이라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2005년 7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우주탐사선 딥임팩트호의 충돌체를 혜성 템펠 1호에 충돌한 실험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혜성 표면에 탐사 로봇을 착륙시켜 조사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완벽한 성공’의 기쁨은 그러나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1시간 여 후 혜성 표면에 파일리를 고정시키기 위해 작살이 발사돼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사실이 확인됐다. 신호도 불안정했다. 서너 시간 후 ESA는 “아직 상황이 완전히 파악된 것은 아니지만 파일리가 표면에 고정되지 않았고 무선 신호가 불안정한 것으로 보아 파일리가 부드러운 모래 위에 착륙했거나 살짝 튀어 올랐다가 다시 내려앉았을 수 있다”고 밝혔다. 영국 BBC 방송은 "이 과정 탓에 한 번이 아니라 최소 세 번 착륙했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파일리가 혜성 표면에 고정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현재 파일리와 로제타 사이 무선 연결은 끊긴 상태다. ESA는 “예견됐던 일”이라며 “13일 연결이 정상화되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결과만으로도 성공”이란 평가가 우세하다.



착륙도 착륙이거니와 65억 ㎞를 이동하며 이미 이룬 ‘성과’ 때문이다. 2008년 9월 스타인스 소행성과 2010년 7월 루테시아 소행성을 근접 촬영했다. 이후 로제타호는 에너지 소모를 줄이고자 2011년 6월 동면에 들어가 비행하다가 지난 1월 자체 알람에 맞춰2년 반 넘는 동면을 끝내고 작동을 재개했다. 가장 큰 난관 중 하나였다.



유럽은 혜성 탐사 소식에 크게 고무됐다. 그간 우주 관련 주요 뉴스는 미국과 러시아가 사실상 독점해 왔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첫 우주인, 미국의 달 착륙이 대표적이다. 유럽인들은 우주 과학에서도 유럽의 자존심을 회복했다고 보고 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파리에 있는 과학박물관을 찾아 “유럽의 승리”라며 “유럽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회의하는 사람들에게 로제타 프로젝트가 답이 될 것”이라고 환호하기도 했다. 13억 유로(1조7800억원)를 들인 값을 한 셈이다.



물론 파일리가 정상 작동할 경우 인류로선 더 큰 지적 도약을 이룰 수 있게 된다. 혜성은 태양계 탄생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의 최영준 박사는 “혜성은 긴 타원궤도로 짧은 시간 동안만 태양에 가까이 접근하고 대부분 멀리 차가운 곳에 있기 때문에 태양계에서 처음 만들어졌을 때 형태가 유지된다”고 설명했다.



혜성의 물이 지구의 물과 같은지, 혜성의 유기물 덕분에 지구의 생명체가 탄생할 수 있었는지 등 혜성에 관한 오랜 의문의 답을 찾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로제타와 파일리는 또 혜성이 태양 주위를 돌아 다시 목성을 향하는 약 1년의 여정을 함께 할 예정이기도 하다. 태양에 근접할수록 꼬리가 생긴다. 혜성의 핵을 둘러싼 코마(Coma)의 먼지·가스가 태양빛과 입자에 의해 뒤로 길게 늘어지며 생긴다. 과학자들은 로제타와 파일리가 그 장엄한 모습을 현장에서 생생히 ‘중계 방송’ 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도 하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로제타·파일리=고대 이집트의 비석(碑石) ‘로제타석’과 이집트 나일 강에 있는 파일리섬에서 이름을 따왔다. 1822년 프랑스의 장프랑수아 샹폴리옹이 로제타석과 파일리섬에서 발견된 오벨리스크의 명문(銘文)을 비교해 이집트 상형 문자를 해독해낸 걸 염두에 둔 이름이다. 그 덕분에 이집트 문명의 비밀을 이해하게 됐듯 이번 탐사로 태양계와 생명체 탄생의 비밀이 풀리길 바라는 염원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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