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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1000억원 투자하면 현금 500억 돌려주겠다”

중앙일보 2014.11.13 00:49 종합 8면 지면보기
열매를 안겨 줄 과감한 시도? 아니면 무모한 도박? 권영진(52) 대구시장의 아이디어를 듣자마자 떠오른 생각이었다. 그는 “대구에 기업이 투자하면 공장 터 매입, 기계 구입, 건축 등 모든 투자비의 최대 50%를 현금으로 돌려주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17일과 23일 두 차례에 걸쳐 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다. 구체적으로 수치를 들어 “1000억원을 투자하면 몇 년에 걸쳐 500억원을 주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기업 투자를 유치하려는 목적이다. 단 투자 분야는 소프트웨어·물산업·신재생에너지·첨단의료기기 등 네 가지로 한정했다.


시·도지사에게 길을 묻다 ④ 권영진 대구시장

 다른 지방자치단체도 투자금의 일부를 돌려주긴 하지만 많아야 10% 정도다. 더구나 대구는 재정이 넉넉지 않다. 빚이 2조원에 이른다. 예산 대비 채무비율은 17개 광역시·도 중 인천에 이어 둘째로 높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비의 50%를 돌려준다는 게 가능할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권영진 시장은 당구도 소통에 활용한다. 12일 오후 권 시장이 대구시의회 의장 및 의원, 그리고 대구시 국장급 간부들과 당구 치는 모습. 시의회가 예산안을 심의하는 계절을 맞아 격의 없이 의견을 나누려고 자리를 마련했다. 2시간30분 동안 즐긴 당구비 약 6만원은 참가자들이 분담했다. [프리랜서 공정식]


 - 밑지는 장사 아닌가.



 “기업이 1000억원을 투자하면 일자리가 300개 정도 생긴다. 한 사람 평균 연봉이 5000만원이면 1년에 150억원이 대구에 떨어진다. 4년이면 600억원이다. 돌려준 500억원보다 많다. 협력업체도 생길 거고 근로자 수입이 다시 지역에 뿌려져 돌고 도는 파급효과까지 있다.”



 - 50%를 지급할 여력이 있나.



 “신사업을 미루겠다. 빚을 내서라도 지원금을 마련하겠다. 소프트웨어 등 대상 4개 분야는 기존 제조업처럼 넓은 땅이나 많은 시설이 필요하지 않다. 되돌려주는 지원금이 수천억원에 이르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 다른 곳은 많아야 10% 돌려주는데 50%는 과한 것 같다.



 “그만큼 절박하다. 대구는 20년째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이 꼴찌다. 섬유산업이 꽃을 피우던 1970~80년대 대구 도심은 서울 명동에 견줄 만했다. 하지만 옛날얘기가 돼 버렸다. 섬유산업이 쇠퇴한 뒤 자동차·전자 같은 산업을 유치하지 못했다. 일자리가 없어 매년 20~30대가 1만 명씩 빠져나간다. 어떻게든 기업을 끌어들여야 한다. 그것도 다른 지자체에 앞서 선점해야 한다. 그러려면 50% 정도는 내걸어야 기업들이 솔깃하지 않겠나.”



 - 왜 소프트웨어·물산업 등 네 가지인가.



 “대구 혁신 100일 위원회에서 논의해 확정했다. 미래 유망 산업이면서 대구와 관련 있는 걸 추렸다. 소프트웨어는 이미 대구에 몇몇 게임 선도업체가 있다. 물산업은 91년 낙동강 페놀 오염사태 때부터 대구가 주목했던 분야다. 대구엔 첨단의료복합단지도 있다. 신재생에너지와 관련해서는 국제에너지기구(IEA)가 2000년 대구를 친환경도시인 ‘솔라시티(solar city)’로 지정했다.”



 - 4개 분야는 무조건 지원 대상인가.



 “전망 있는 투자인지 심사해 고를 것이다.”



 - 신재생에너지와 관련해서는 ‘에너지 자족도시’ 계획을 발표했다.



 “5만 명이 살아갈 대구테크노폴리스(726만㎡)가 대상이다. 산업단지와 연구시설, 주거·상업지역이 함께 있는 복합 신도시다. 2020년까지 태양광·지열·연료전지로 도시가 쓸 전기 100%를 만드는 게 목표다. 한국전력과 양해각서(MOU)도 체결했다. 국내 첫 에너지 자족 신도시가 될 거다. 기업을 끌어들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 기업 유치와 무슨 관련이 있나.



 “에너지 자족도시는 신재생에너지 기업들이 신기술을 가늠해볼 대형 시험단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겠나. 또 건물마다 옥상이 파란 태양광전지판으로 뒤덮이면 장관을 이룰 거다. 관광 명물 역할도 할 것 같다.”



 - 서울시 정무부시장(2006~2007년)을 지냈다. 서울과 대구를 견주면 어떤가.



 “아이고, 부시장이 아니라 서울시장보다 여기가 두 배는 일이 많다. 서울은 기업 유치에 신경 안 쓴다. 복지·교통·환경처럼 시민 삶에 관한 문제만 처리하면 된다. 게다가 서울은 재정자립도가 거의 100%인데(실제는 80.4%) 대구는 42%다. 살림살이가 빠듯하다. 대구시장이 훨씬 어려운 자리다.”



 - 수도권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외국과 경쟁하려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수도권 규제를 풀면 외국 기업이 들어오는 게 아니라 지방 기업이 빨려 들어간다. 다른 지역에 수도권에 필적할 경제권을 만들고, 그 다음에 수도권 규제를 차차 풀어야 한다. 그게 남부 경제권이다. 여기에 신공항도 있어야 한다.”



 - 신공항이 왜 필요한가.



 “수도권과 경쟁한다는 게 수도권 기업을 빼 온다는 의미가 아니다. 유수의 외국 기업을 데려와야 한다. 그러려면 항공 물류가 필수다. 여객뿐 아니라 물류 허브 역할을 할 공항이 있어야 한다.”



 - 공항을 어디에 지어야 하나. 부산 가덕도와 경남 밀양시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남부권 어디서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중심지에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래야 남부 경제권의 핵심 인프라 역할을 할 수 있다.”



 - 구체적으로 어디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나.



 “상식적으로 보면 부산 가덕도는 아니다. 대구가 밀양을 고집하는 건 아니다. 제3의 장소도 좋다. 중요한 건 영남권 지자체의 중심이면서 승객 수송은 물론 항공 물류도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 취임 넉 달이 지났다. 시민의 목소리를 듣는 ‘시민원탁회의’도 열고 “귀를 잘 기울인다”는 평이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별로 한 일이 없다는 소리도 나온다.



 “시장 혼자의 지식과 소신으로 결정하는 것은 과거 방식이다. 시민들의 창의적인 생각을 끌어내 반영해야 한다. 그러려면 충분한 소통이 필요하다. 결단을 해야 할 때는 한다. 다만 아직은 소통할 때다.”



 - 행정부시장·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장·교통연수원장 등 시장과 같은 고려대 출신을 많이 임명했다. 그 때문에 ‘고대 마피아’라는 수군거림이 있다.



 “예컨대 정태옥 행정부시장을 보자. 고려대 동문이지만 안전행정부에서 추천했다. 능력을 보고 기용했다. 학벌·연고 같은 것 안 따진다.”



 - 박근혜 대통령이 대구 출신이다. 예산 따는 데 도움이 되지 않나.



 “일장일단이 있다. 편하게 얘기할 수 있긴 한데…. 예산 얘기 들어주려면 다른 지역 눈치를 봐야 하니 오히려 손해인 것 같다.”



대구=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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