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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빠지니 무시” 황혼이혼 하자는 남편들

중앙일보 2014.11.13 00:32 종합 16면 지면보기
#50대 후반의 K씨는 최근 30년간의 결혼 생활을 정리했다. 아내의 뒷바라지로 박사 학위를 마쳤고 아내가 번 돈을 종잣돈 삼아 회사를 세운 탓에 K씨의 발언권은 크지 않았다. 2001년부터는 남남처럼 지냈다. 아내가 이사한 뒤 주소를 알려주지 않은 적도 있다. 부부는 K씨의 이혼 청구로 재판 끝에 갈라섰 다.


집안 외톨이 돼 마음 고생 심해
“버림받기 전 먼저” 남자 청구 40%
노년층 로맨스 증가도 한 원인

 #60대 후반의 P씨는 지난달 아내와 갈라서기까지 10년 가까이 ‘사랑과 전쟁’을 치렀다. 불화는 2004년 P씨가 아내의 연인으로 의심되는 남자를 고소하면서 시작됐다. 아내의 가출→화해→남편의 집착→아내의 가출. 악순환에 지친 P씨는 이혼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집을 나눠 갖고 이혼하라”고 판결했다.





 ‘자식들이 다 크길 기다렸다 남편의 은퇴시기에 맞춰 이혼하기’. 일반적인 황혼이혼이다. 지난해 20년 이상 동거한 부부의 이혼은 3만2433건으로 전체 이혼의 약 28%에 달한다. “퇴직급여 분할이 가능해지는 등 재산 나누기가 쉬워지면서 권리 찾기에 나선 아내들이 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절반의 진실이다. 실제로는 남편의 황혼이혼 청구가 적지 않고, 앞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황혼이혼의 40%는 남편의 청구라는 게 가정법원 판사 등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접수된 50~60대 남성의 이혼 상담은 2012년 365건에서 지난해 622건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서울가정법원 관계자는 “남편들의 황혼이혼 청구가 늘고 있지만 주목받지 못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인철 ‘법무법인 윈’ 변호사는 “황혼이혼을 하고 싶다는 남성들과 상담해 보면 ‘힘이 빠지니 무시한다’는 불만이 가장 많다”고 전했다. 그는 “소송이 남성에게 불리하다는 통념과 달리 (잘못한 것이 없을 경우) 재산분할에선 사회생활을 한 남편 쪽이 유리한 편인 것도 한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전국 각 법원에 접수된 50대 이상 남편들의 이혼소장에는 ‘가정 내 따돌림’에 대한 호소가 많다. 이호선 한국노인상담센터 소장은 “황혼이혼을 고민하는 남성 중 상당수는 아내의 목소리와 엄마를 지지하는 딸들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진 것을 정서적으로 견디지 못하거나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가정 안에서의 입지가 은퇴 후 위축되면서 ‘버림받기 전에 먼저 떠나겠다’고 결심한다는 것이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박소현 부장은 “최근 몇 년 사이 조기퇴직을 하거나 사업에 실패해 경제적 위기에 처한 남성들이 전업주부인 아내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며 경제적 원인을 제시했다.



 ‘노인정 로맨스’가 공론화될 정도로 남녀관계에 적극적인 노년층이 증가한 것도 원인이다. 한 이혼 전문 변호사는 “요즘은 웬만한 60~70대도 건강이 40~50대에 뒤지지 않아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박소현 부장은 “황혼이혼을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노년층 여성 취업 확대 등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



전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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