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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가 쉴 틈 있나, 야차가 된 야신

중앙일보 2014.11.13 00:06 종합 30면 지면보기
SK 시절 김성근 감독의 제자였던 정근우는 지난해 말 한화로 이적했다가 김 감독을 또 만났다. 지옥훈련을 또 경험한 정근우의 살이 쏙 빠졌다. [사진 한화 이글스]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6차전이 열린 지난 11일 밤. 서울 잠실구장에서는 삼성 라이온즈의 통합 4연패를 축하하는 축포가 터졌다. 같은 시각, 서울에서 1200㎞ 떨어진 일본 오키나와 고친다 구장에서도 야구가 한창이었다. 3년 연속 최하위에 그친 한화 이글스의 가을 캠프다. 이들의 야구도 한국시리즈 못지 않게 치열했다. 김성근(72) 한화 감독이 혼잣말처럼 한마디 했다. “내년엔 저기 있어야지.”


하루 13시간, 공 1000개씩 수비
식사는 10분 만에, 일부는 걸러
운동장 여기저기 쓰러지며 비명
김회성 “학생 때도 이렇진 않았다”

  김 감독은 지독한 훈련을 통해 각자의 한계를 뛰어넘도록 한다. 그게 모여 팀의 한계를 극복하는 게 그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스파르타식으로 팀을 이끄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다. ‘한화 이글스’가 아니라 ‘한화 고등학교’란 얘기도 나왔다. 김 감독은 늘 그랬듯 자신의 방식으로 한화를 바꾸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열공(열심히 공부)’ 중인 한화 캠프의 24시간을 돌아봤다.



 보통 마무리 훈련에는 주전급 선수들이 참가하지 않는다. 훈련보다 휴식이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기량을 끌어올려야 하는 신예 선수나 군 제대 선수들이 참가한다. 그런데 2014년 한화 캠프에는 정규시즌 1군 멤버들이 모두 모였다. 김태균·정근우·이용규 등 주축 선수들이 머리를 짧게 깎고 캠프에 참가했다. 김 감독은 취임과 동시에 “김태균은 반 죽었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 시즌 타격 2위(0.365)에 18홈런을 때린 간판타자지만 김태균은 더 발전할 수 있다고 김 감독은 믿고 있다. 캠프에 온지 열흘 만에 김태균의 얼굴은 새까매져 있었다. 그는 “선크림을 세 번 발라도 땀을 많이 흘려서 소용없다”고 말했다.



모자를 들자 짧은 머리가 드러난 김태균. [사진 한화]
 SK에서 김 감독과 5년을 함께 했던 정근우는 “아직 괜찮다”며 미소지었다. 그러나 그도 체중이 꽤 많이 빠졌다. 한화 선수들의 머리카락은 고등학생보다 더 짧았다. 김 감독이 취임하면서 “한화는 이발비를 안 주냐?”고 한마디 하자 모두 삭발을 했다.



 일과는 수험생처럼 빡빡하다. 숙소 출발시간은 오전 7시 40분. 유니폼을 입은 채 아침식사를 한 뒤 서둘러 야구장으로 이동한다. 점심시간도 따로 없다. 선수들은 훈련 사이에 식당에서 10~15분 만에 식사를 끝내고 다시 그라운드로 뛰어나갔다. 훈련이 힘들어 조용히 밥만 먹는 선수들을 본 신경현 코치는 “초상집같이 있지 말고 밥 먹을 때만이라도 활짝 웃으라”고 농담을 했다.



 훈련이 끝나는 시간은 오후 6시. 그러나 정해진 스케줄대로 진행되는 건 아니다. 효율을 올리기 위해 김 감독이 즉흥적으로 일정을 바꾸기 때문이다. 휴일도 마찬가지다. 공식적으론 5일 훈련, 1일 휴식이지만 일정이 그렇다는 얘기일 뿐 실제로는 쉬는 날이 없다.



 김 감독은 4개의 마운드가 모두 보이는 자리에서 투수들의 훈련을 지켜봤다. 별명인 ‘잠자리 눈(수 만개의 겹눈으로 된 잠자리 눈처럼 사방을 모두 본다는 뜻)’ 답게 바로 앞에 선 투수를 지켜보다가도 멀찍이 떨어진 선수의 투구폼이 흐트러지면 곧바로 지적했다. 선수의 동작 하나하나까지 짚었다. 족집게 과외선생님과 학생 같았다. 왼손투수라 김 감독을 등지고 연습한 윤근영은 “감독님이 워낙 말씀을 많이 하시니까 목소리만 들리면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게 된다”고 했다. 김 감독은 오후 3시가 되자 “밥 먹는 것도 잊었다”며 식사를 하러 갔다. 감독실에서 밥을 먹으면서도 타격훈련을 지켜봤다.



 야수들의 훈련 강도는 살인적이다. 내야수들은 펑고 훈련(코치가 쳐 주는 공을 받는 수비 연습)을 하다가 수없이 그라운드에 쓰러졌다. 여기저기서 신음과 비명소리가 이어졌다. 왼쪽과 오른쪽을 오가는 펑고를 받던 김태완은 “이건 노동이야”라고 외쳤다. 훈련이 끝난 선수들의 옷은 흙 색깔로 물들어 있었다.



 저녁 시간까지 훈련한 뒤 늦게서야 밥을 먹거나 아예 거르는 선수들도 있다. 11일에는 3루수 김회성이 그랬다. 김회성은 이날 1000개의 땅볼을 받아냈다. 김 감독은 SK 시절 최정과 정근우에게 이런 훈련을 시키곤 했다. 두 선수는 리그에서도 손꼽히는 수비를 펼친다. 김회성은 “학생 때도 이런 훈련은 해본 적이 없었 다”고 했다. 물을 마실 때는 “오아시스를 만난 것 같다”도 했다. 김 감독은 “앞으로 최소한 다섯 번은 더 할 것”이라며 껄껄 웃었다.



 선수들의 훈련을 돕는 김광수 수석코치를 비롯한 코치들도 강행군을 한다. 힘들어하는 선수들을 달래기도 하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내야수들에게 수백 개의 펑고를 쳐준 김광수 코치에게 ‘힘들지 않냐’고 묻자 미소만 지어보였다. 이홍범 코치는 “감독님이 새로 오셔서인지 선수들이 열심히 하려는 분위기가 보인다”고 설명했다. 니시모토 코치와 정민태 코치도 12일 홍백전에서 공을 던진 투수가 마운드를 내려오자마자 붙들고 하나라도 더 설명하려고 했다. 



 숙소에서 저녁을 먹은 뒤 투수조는 수건을 들고 호텔 주차장으로 집합한다. 섀도 피칭(공 대신 수건을 들고 투구 균형을 잡는 것)을 하기 위해서다. 야수 조는 다시 고친다구장으로 돌아가서 타격과 수비 훈련을 한다. 훈련 종료시간은 오후 9시. 밤 11시까지 외출을 할 수 있지만 지쳐서 밖으로 나가는 선수는 거의 없다. 주장 고동진은 “힘들지만 실력이 좋아질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감독의 ‘지옥훈련’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프로 선수라면 자율적으로 해야 한다’거나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지적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김 감독은 이런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다.



 김 감독은 “프로가 무엇인가. 이렇게 해서 좋은 결과를 내면 된다. 과정을 트집 잡는 사람들은 결과를 내지 못한 이들”이라고 일축하며 “세상 사람들이 다 똑같으면 무슨 재미가 있는가. 팀이 살아야 선수가 산다. 야구도 이겨야 보너스 받고, 연봉이 오른다. 이런 훈련은 모두 선수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프로야구선수협의회가 비활동기간(12월~1월)에 단체훈련을 못 하게 한 것도 불만이다. 김 감독은 “겨울에 훈련을 하면 벌금을 내라고 한다. 하지만 한겨울은 선수들 기량을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다. (우리가 훈련을 하고) 구단이 벌금을 내주면 안 되나”고 되물었다. 



오키나와=김효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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