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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제왕적 국회의원’이었던 이재오

중앙일보 2014.11.12 00:04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 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어떤 지도자에게 결함이 있다고 그가 주창하는 대의(大義)가 틀렸다고 해선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주도하는 인물에게 큰 하자가 있다면 대업(大業)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 5선 이재오 의원과 ‘분권형 개헌론’이 그런 관계다. 이 의원은 현행 권력구조가 ‘제왕적 대통령제’라며 “이제는 권력을 나눠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의원 자신이 대통령제 권력을 남용함으로써 한국 정치를 후퇴시켰다는 것이다.



 2008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은 팽팽한 긴장감에 사로잡혔다. ‘대통령 권력’을 잡은 이명박 그룹이 공천이라는 칼을 꺼냈던 것이다. 그해 1월 이명박 당선인은 중국특사로 다녀온 박근혜 의원에게 “공정하게 공천한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는 허공에 날아갔다. 친박계는 학살을 당했고 눈물을 흘리며 탈당했다. 박근혜는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고 했다. 쫓겨났던 이들은 총선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유권자가 ‘학살 공천’의 부당함을 단죄한 것이다.



 형식적으로 공천은 공천심사위가 담당했다. 위원장은 안강민 전 대검중수부장이었다. 하지만 커튼 뒤에서 실질적으로 권력을 행사한 이가 핵심실세 이재오였다. 이 의원은 ‘형님’으로 부르는 이명박 대통령의 권력을 등에 업고 정권의 핵심부분을 설계했다. 그런 그에게 공천은 권력의 핵심이었다. 그를 중심으로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과 이방호 당 사무총장이 학살의 칼을 휘둘렀다.



 한국 정치에서 공천은 모든 시스템의 근원이다. 공천제도가 공정해야 의원들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공천 갈등이 없어야 집권세력은 국정의 동력을 모을 수 있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은 이 부분에서 커다란 실수를 저질렀다. 공천 갈등의 여파로 이 대통령은 임기 내내 어려움을 겪었다. 학살 피해자 박근혜 의원은 정권에 대한 협조를 거부했다. 박 의원이 도왔다면 많은 게 달라졌을 것이다. 광우병 사태나 세종시 문제에서 이명박 정권은 보다 효율적으로 대처했을 것이다. 권력을 ‘제왕적으로’ 남용하는 바람에 정권은 국정 동력의 상당 부분을 잃었다. 결과적으로 이재오 의원은 정권은 물론 국가에 해를 끼친 것이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분권형 개헌’을 주창한다. 자신은 대통령제 권력을 마음껏 휘두르고는 “대통령 혼자 다 하는 시대는 갔다”며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한다. 지금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에는 여야 155명이 들어 있다. 이재오 의원은 2년 전부터 모임을 주도했고 3인 고문 중 한 명이다. 그는 신문·방송에서 가장 활발하게 개헌을 얘기한다. 하지만 개헌을 말할 수 있는 자격으로 따지면 그는 꼴찌다.



 자격도 자격이지만 그의 개헌론은 내용에서도 비현실적이다. 그는 대통령은 국민이 뽑되 외교·통일·국방만 담당하고 내치는 총리가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총리는 국회에서 선출하며 여야를 아우르는 연합내각을 구성하자고 말한다. 한국의 갈등 구조에 비추어 보면 이런 구상은 매우 위험하다. 이명박 정권이 겪은 가장 심각한 내부 위기가 광우병 사태다. 그렇다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외교인가 내치인가. 구분이 안 된다. 그리고 만약 분권형이라면 어떻게 됐을까. 대통령과 총리가 책임을 미루느라 혼란이 더 컸을 것이다. 지금 남한은 5·24조치나 대북전단만 놓고도 갈등이 심하다. 그런 나라에서 대통령과 총리가 정당이 다르면 대북정책은 어디로 갈 것인가. 산으로 가나 바다로 가나.



 박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이 의원의 진단도 틀린 것이다. 지금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으로 야당이 의회권력의 절반을 갖고 있다. 야당의 동의 없이는 대통령이 일을 할 수가 없다. 인사도 마찬가지다. 장관 임명은 국회 청문회를 통과해야 한다. 정권을 도운 이들을 위해 낙하산 인사를 하고 부처 실·국장 인사권을 청와대가 가졌다지만 그렇다고 인사권 전체가 ‘제왕적’은 아니다. 더구나 지금 박 정권에서는 이재오 같은 2인자급 실세권력은 없다.



 대통령 권위도 마찬가지다. 이 사회는 별다른 부담 없이 대통령을 쉽게 공격한다. 사고 피해자 유족이라며 청와대 앞에서 여성 대통령을 향해 쌍욕을 해댄다. 그러고도 무사하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기관이다. 핵심당원들이 내란선동 혐의로 적발되자 당원들이 국정원 앞에 몰려가 노래를 부르며 ‘국정원 해체’를 외쳤다. 이 나라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아니라 ‘해체 민주주의’ 수준이다.



 이재오 의원은 서울 5선이라는 대기록을 가지고 있는 중진 정치인이다. 그렇다면 대의를 주창할 때 자신부터 돌아봐야 할 것이다. 깊은 고민을 통해 내용도 국익에 맞게 다듬어야 할 것이다. 이런 과정도 없이 맨 앞줄에 나선다면 자신이 ‘제왕적 국회의원’이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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