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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이끌어온 한·중 관계, 안보 신뢰 발판 마련”

중앙일보 2014.11.11 00:25 종합 8면 지면보기


13억(중국 인구) 시장, 2221억 달러(2013년 한·중 교역액), 54억4000만 달러(관세 절감 예상액)….

“중국, 외교·안보 영향력 확대 노려
한국, 미국과 전략적 균형 고민을”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인한 경제 효과들이다.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은 10일 한·중 FTA가 타결된 뒤 “양국이 1992년 수교한 이래 체결한 가장 중요한 경제 협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중 FTA는 이런 숫자들 이상이다. 전문가들은 한·중 FTA 타결이 앞으로의 한·중 관계를 더욱 넓고 깊게 이어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화여대 박인휘(국제관계학) 교수는 “안보 면에서의 신뢰 향상으로 이어질 발판을 마련한 것”이라며 “제2차 세계대전 뒤 독일과 영국, 프랑스의 관계가 회복돼 유럽 통합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도 시장공동체가 선행되는 과정에서 외교적으로 타협이 어려운 사안들을 자연스레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유럽연합(EU)의 태동도 경제 통합이 앞서가는 바람에 가능했다는 의미다.



 특히 한·중 관계는 경제사회적 이익이 앞서고 군사안보적 이익이 뒤따라가는 시장주도형(market-driven) 관계라는 게 국제정치학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한·미 관계가 군사·정치적 협력이 경제사회적 이익보다 우선한 전통적인 국가주도형(state-driven) 관계인 것과 대비된다. 한·미 FTA가 한·미 동맹 54년 만에 타결된 반면, 한·중 FTA가 수교한 지 22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성사된 게 그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정상들이 10일 베이징 올림픽 수영경기장인 ‘워터 큐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쯔엉떤상 베트남 주석,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 내외,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 하사날 볼키아 브루나이 국왕, 베니그노 시메온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부인 펑리위안,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내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박 대통령, 오얀타 우말라 페루 대통령, 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 내외, 뒷줄 왼쪽부터 량전잉 홍콩 행정수반, 존 필립 키 뉴질랜드 총리 내외,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내외,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 내외, 토니 애벗 호주 총리,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 내외, 피터 오닐 파푸아뉴기니 총리 내외,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 내외, 샤오완창 전 대만 부총통 내외. [베이징=박종근 기자]


 이뿐만이 아니다. 전통적인 안보협력에서 실용과 국익이 앞선 경제협력의 시대로 옮아가는 건 세계적 현상이다.



 미국과 중국은 아시아·태평양지역 패권이나 사이버안보 분야에선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맞선다. 하지만 교역량은 갈수록 늘어 지난해 기준 5622억 달러를 달성했다. 역사·영토 문제로 다시는 얼굴을 안 볼 듯 서로를 비난했던 중·일 정상이 10일 얼굴을 맞댄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미 FTA가 한·미 관계가 기우뚱대던 진보 성향의 노무현 정부 때 타결되고, 한·중 FTA가 보수 성향의 박근혜 정부에서 마무리된 것도 이념과 국익은 별개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윤덕민 국립외교원장은 “지금까지 한국 외교는 미국이라는 틀 안의 외교였는데 중국과의 FTA 체결로 입지가 넓어졌다” 고 말했다.



중국 입장에서도 한·중 FTA는 전략적 의미가 크다. 아산정책연구원 김한권 지역연구센터장은 “중국은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역내 경제적 협력을 강조한 뒤 ▶중·일 정상회담에서 정치적 갈등을 해소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과 대등하게 국제 정세를 논하는 글로벌 리더십을 부각시키겠다는 각본 ”이라며 “중국 입장에선 한·중 FTA가 양자 간 경제적 이익 못지않게 글로벌 리더로 올라서겠다는 전략적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중 FTA는 경제 외적인 숙제도 던져주고 있다. 한국을 한발 더 끌어들였다는 판단을 한 중국으로선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참여를 압박하는 수순으로 갈 수도 있다. 고려대 김성한(국제정치학) 교수는 “중국은 역내 경제 영향력으로 외교·안보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포석을 가지고 있다”며 “우리 입장에선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미국·일본이 우려하지 않도록 전략적 균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북관계에 활용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광운대 신상진(국제협력학부) 교수는 “한·중 FTA 타결로 중국 의존도가 높은 북한이 한·중 경제권에 편입될 가능성이 커졌다”며 “한·중이 손잡고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끌어낼 여지가 커졌다는 점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유지혜·정원엽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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