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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의 평양 오디세이] 장성택 몰락 1년 … 김정은 체제 굳히려다 외교 꼬였다

중앙일보 2014.11.11 00:10 종합 20면 지면보기
그날 새벽잠에서 미처 깨어나지도 못한 시각에 그의 부고(訃告)를 접했습니다. 오전 6시 북한 관영매체에서 “인민의 이름으로 사형에 처하기로 했다”는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대한 재판 결과를 들은 겁니다. 하루 전 열린 국가안전보위부 특별재판과 처형 소식을 전한 조선중앙방송의 지난해 12월 13일 보도입니다.


고모부도 가차없이 처형한 권력
얼어붙은 분위기 속 ‘절대충성’만
중국과 관계 악화 등 잇단 패착
강경파 득세로 남북관계 꽉 막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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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성택 처형은 전격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설마했는데 결국 29세(당시 나이) 조카 손에 67세 고모부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겁니다. 장 부위원장이 방심했을지 모릅니다. ‘정은이가 나를 죽이기까지야 하겠나’란 잘못된 판단을 한 거죠. 하지만 최고 권력을 거머쥔 김정은은 더 이상 고모부에게 용돈을 받아 챙기던 어린 조카가 아니었습니다.



 장성택 몰락의 신호탄이 쏘아 올려진 지 이번주 1년을 맞습니다. 휘하인 이용하 제1부부장과 장수길 부부장 등 노동당 행정부의 핵심이 전격 체포된 게 지난해 11월 중순인데요. 행정부는 공안기관을 총괄하는 당내 핵심부서지만 꼼짝하지 못했습니다. 은밀한 내사와 치밀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거세가 단행된 겁니다. 장성택도 동시에 연금에 처해졌죠.



 지난 1년 김정은 권력은 크게 요동쳤습니다. 기준은 장성택 반당·종파 사건에 대한 공과(功過)인 듯합니다. 장성택·김경희 부부와 함께 후견그룹의 세 축이던 최용해 당 정치국상무위원의 독주가 두드러집니다. 황병서 차수에게 군 총정치국장 자리를 내주는 등 한동안 주춤했지만 현재로선 견제세력이 없어 보입니다.



 장성택이 맡던 국가체육지도위원장 자리도 최용해의 몫이 됐죠. 체포·수사에서 재판과 사형 과정을 깔끔하게 처리한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도 승승장구합니다. 김정은의 스위스 조기유학 시절 대사로 뒷바라지를 했던 이수용은 4월 외무상을 맡아 날개를 달았습니다.



 남편을 잃은 김경희 당 비서는 1년 가까이 행적이 묘연합니다. 사망설까지 나돌지만 우리 정보 당국은 “신상에 문제는 없으며 다만 장성택 처형에 따라 공개활동을 자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판단합니다. 당 행정부는 아예 해체됐고, 멤버들은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장성택 직계로 분류된 문경덕 평양시당 책임비서가 숙청되는 등 피바람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자리엔 장성택 처형에 앞장선 군부실세 김수길 중장(우리의 소장에 해당)이 앉았죠.



 많은 화제와 유행어도 낳았습니다. 판결문에 김정은 제1위원장에게 ‘건성건성 박수를 쳤다’는 대목이 그중 하나죠. 장성택을 그 추종자들이 ‘1번동지’로 불렀다는 판결문 내용도 회자됐는데요. 앞뒤가 다르게 행동한다는, 면종복배(面從腹背)와 같은 뜻의 ‘양봉음위’(陽奉陰違)란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정은 지시 사항을 고개숙여 수첩에 꼼꼼히 받아적는 간부들을 두고 ‘적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의미의 ‘적자생존’이란 말이 나온 것도 이 때쯤입니다.



 이젠 북한에서 ‘장성택’이란 세 글자는 최고의 금기어가 됐습니다. 김정은 제1위원장도 흔적 지우기에 나선 듯합니다. 장성택의 돈줄이던 대동강타일공장의 이름을 최근에 천리마공장으로 바꿔버린 게 대표적입니다. 김정일 타일벽화를 세우라고 지시했는데 장성택이 공장 한귀퉁이에 건립토록 했다는 내용의 판결문에 등장하는 시설이다 보니 아예 개칭을 한 겁니다.



 장성택 처형사태는 잊혀져 가지만 여진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북한 권력 내부를 꽁꽁 얼어붙게 했죠. 고모부도 가차없이 형장으로 보내는 분위기에서 소신 있게 의견을 제시하거나 개혁·개방을 주장할 간부는 없을테니 말이죠. 오직 김정은을 ‘최고존엄’으로 떠받들고, 절대충성만 강조하는 강경노선만이 살길이란 얘기입니다. 지난달 초 황병서 총정치국장의 방남(訪南)으로 반짝했던 남북관계가 대북전단 등을 빌미로 파국을 맞은 것도 평양 권력 내부의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입니다.



 장성택 제거로 그를 후견하던 중국 지도부를 불편하게 한 것도 패착인 듯합니다. 중국을 겨냥해 “석탄 등 국자자원을 헐값에 팔아넘겼다”고 한 대목은 사실과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처형 이후에도 북한은 여전히 중국에 석탄을 팔아 외화를 챙긴다는 점에서죠. 국제사회가 북한인권 문제에 관심을 돌리게 한 측면도 있습니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COI)가 김정은 제1위원장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하는 방안을 추진하게 된 것도 결국 장성택 처형의 부메랑이란 지적입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선대 수령인 아버지가 하지 못한 몇 가지 일을 감행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여동생 김경희에 대한 각별한 애정 때문에 차마 장성택을 손보지 못했는데요. 김정은은 처형이란 극단적 결정을 내렸죠. 대남카드로 만지작거렸지만 끝내 결정 못한 개성공단 폐쇄도 그렇습니다. 앞으로 대남 접근이나 대외 정책에서 또 어떤 조치들이 나올지 우려됩니다.



 지난 1년을 돌이켜 보면 장성택 처형은 결국 권력기반을 다지려는 극단적 카드로 풀이됩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올 신년사에서 ‘종파 오물’을 제거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대세력을 척결해 권좌가 더욱 안정됐다는 얘기인데요. 하지만 평양과 서울뿐 아니라 국제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장성택 처형이 정말 권력 안착의 지름길인지는 아직 판단하기 일러 보입니다. 또 다른 권력 드라마를 예고한 건 아닌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이영종 외교안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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