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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선의 벌떼 하키, 희망을 맞혔다

중앙일보 2014.11.11 00:07 종합 28면 지면보기
성우제(왼쪽)·안정현(왼쪽 둘째)·오웬 스위프트(오른쪽), 세 명의 한국팀 선수들이 퍽을 가진 폴란드의 세바스찬 코발로브카를 둘러싸고 공격을 저지하고 있다. 세계 23위 한국은 ‘벌떼 하키’로 폴란드(24위)를 제압했다. [부다페스트 AP=뉴시스]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백지선(왼쪽) 감독과 박용수 코치. [사진 대한아이스하키협회]
“불가능은 가능을 위해 존재한다!” 백지선(47·영어이름 짐 팩) 한국 아이스하키 대표팀 감독은 석달 전 본지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포부대로 기적의 서막을 열고 있다. 백 감독이 이끄는 한국(세계랭킹 23위)은 10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유로 아이스하키 챌린지 3차전에서 폴란드를 6-3으로 제압했다. 전날 세계랭킹 18위 이탈리아를 꺾은 한국은 24위 폴란드까지 연파하고, 2승1패로 준우승을 차지했다.

유로 챌린지 폴란드·이탈리아 꺾어
4년 뒤 평창 겨울올림픽 전망 밝혀
백 감독, 전술·선수관리 ‘NHL급’
최약체팀 평가, 석 달만에 확 바꿔



 한국은 이번 대회 최약체로 꼽혔다. 출전국 폴란드·이탈리아·헝가리(19위)는 2015년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디비전1 A그룹 소속이다. 반면 한국은 지난 4월 IIHF 세계선수권 디비전1 A그룹에서 5전 전패를 해 B그룹(3부리그)으로 강등됐다.



 지난 9월 한국은 개최국 자격으로 2018 평창 겨울올림픽 본선 출전권을 따냈다. 하지만 한국이 당장 캐나다와 맞붙으면 0-20으로 대패할 만큼 세계의 벽이 높다. 자칫 홈에서 망신 당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지난 8월 위기에 빠진 아이스하키 대표팀을 맡은 백 감독은 3개월 만에 한국을 유럽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팀으로 바꿔놨다.



 백 감독의 네임 밸류(이름값)부터 통했다. 축구와 비교하면 백 감독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98골을 넣은 차범근(61) 급이다. 한 살 때 캐나다로 이민간 백 감독은 1991년 피츠버그 펭귄스 수비수로 동양인 최초로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무대를 밟았고, 1991년과 92년 NHL 우승컵인 스탠리컵을 안았다.



 그동안 한국 아이스하키는 부잣집 도련님이 하고, 헝그리 정신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김연아의 남자친구였던 김원중(30)을 포함한 국가대표 3명이 숙소를 무단이탈해 대표 자격을 박탈당하기도 했다. 대표팀 A선수는 “선수들은 전임 감독 시절 스스로 최고란 자만에 빠져 전술대로 경기에 임하지 않았다”며 “백 감독님 부임 후 공기가 달라졌다. 선수들 모두 전적으로 감독님을 신뢰한다”고 말했다.



 통제 불능이라던 캐나다 귀화 선수 마이클 스위프트(27·하이원)는 헝가리와 1차전에서 심판에게 욕을 해 퇴장당했다. 하지만 2,3차전에는 팀 플레이에 충실하며 어시스트를 3개 기록했다. 백 감독은 3차전 후 스위프트에게 베스트 플레이어상을 줬다. 백 감독의 길들이기가 통한 셈이다.



 백 감독은 선수 선발에는 네임 밸류를 따지지 않았다. 이번 대표팀에 30대는 한 명도 없다. 신상우(27·대명 상무)는 “선수들이 ‘여기서 살아남지 못하면 대표팀에 다시 못 온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늘 시험을 치르는 기분이라 긴장을 늦추지 못한다”고 말했다.



 백 감독은 NHL 선진 기술을 대표팀에 접목했다. 신상우는 “감독님 지시로 선수들이 NHL 영상을 돌려보고 있다. 감독님이 NHL에서 구사하는 약속된 플레이를 세세히 지정해줬다. 덕분에 템포 빠른 경기가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주장 박우상(29·대명 상무)도 “폴란드전 2골도 감독님이 주문한 전술에서 나왔다”고 놀라워했다. 백지선호는 축구의 ‘토털 사커(전원 공격 전원 수비)’처럼 ‘벌떼 하키’를 구사한다. 이탈리아전에서는 김혁(27·대명 상무), 브라이언 영(28·하이원) 등 수비수가 골을 넣기도 했다.



 백 감독은 선수들에게는 태극마크에 대한 무게를 강조했고, 스태프에게는 지원을 부탁했다. 김정민 대한아이스하키협회 홍보팀장은 “백 감독은 첫 미팅 때 대표팀 매뉴얼을 제작해 나눠줬다. 전술부터 선수단 복장까지 세밀한 지침을 내렸다”며 “스태프들에게는 선수들이 경기 외적인 부분에 신경쓰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줄 것을 부탁했다”고 말했다. 백 감독을 옆에서 지켜보면 ‘돌(石)’ 같다. 헝가리와 1차전 1-6 대패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선수들에게 “생각을 많이 하지 마. 하키를 즐겨”라고 서툰 한국어로 힘을 실어줬다.



 데뷔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친 백 감독은 담담했다. “매일 매일 발전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신조처럼 헝가리전보다 이탈리아전이, 이탈리아전보다 폴란드전이 나았다.



 백 감독은 자신의 하키 철학을 열정(Passion)·연습(Practice)·인내(Perseverance)의 ‘3P’라고 했다. 또 하나의 P가 추가됐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평창(Pyeongchang)이다.



부다페스트(헝가리)=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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