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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2006년과 2014년, 중·일관계와 한·일관계

중앙일보 2014.11.11 00:05 종합 34면 지면보기
예영준
베이징 특파원
한 달여 전 베이징을 방문한 중진 정치인과 식사를 했다. 이런저런 대화 끝에 정치인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과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나줄까요?”



 기자는 이렇게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중국은 끝까지 가타부타 확답하지 않을 겁니다. 공개적으로는 ‘일본 하기에 달렸다’고 일관하면서도 물밑 창구를 열어두고 자신들의 목적을 최대한 관철시킬 겁니다.”



 기자가 그렇게 말한 건 8년 전의 기억 때문이다. 아베 1기 내각이 출범한 2006년 9월에도 중·일 관계는 극도로 나빴다. 전임자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5년 연속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한 결과였다. 고이즈미보다 훨씬 더 오른쪽으로 기운 아베가 집권했으니 중·일 관계는 한층 더 나빠질 일만 남은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중국은 아베 진영과 물밑 접촉을 텄다. 대신 참배 중단을 정상회담의 조건으로 집요하게 요구했다. 아베는 묘안을 냈다. “이미 참배했는지 여부는 물론 앞으로 참배할지 말지도 일절 언급하지 않겠다.” 자신의 입장을 절반쯤 굽힌 격이 됐다. 중국은 그 정도 선에서 목적을 달성했다고 판단했고, 아베는 미국보다 중국을 먼저 방문한 일본 총리가 됐다.



 복기를 해보면 2014년은 2006년의 재현이다. 가혹하다 싶을 정도의 ‘일본 때리기’와 관계 단절, 여기에 전국적인 규모의 반일 시위가 양념처럼 가미된다. 어느 날 중국 정부가 슬며시 빗장을 푼다. 민간→지자체→재계→전직 정치인→각료급 교류로 옮아가는 점층법 패턴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센카쿠 열도란 이슈가 하나 더 얹어진 것과, 2006년엔 아베가 고이즈미의 설거지를 한 반면 이번엔 자신이 벌인 일에 결자해지의 자세로 나섰다는 점이다.



 시 주석과 아베 총리가 10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만났다. 정식회담은 아니었지만 4개 항목의 공동인식 합의로 중·일 관계가 복원의 물꼬를 튼 건 분명해 보인다. 더불어 한국도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 일각에선 판세를 잘못 읽어 외교 고립을 자초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의도했건 아니건 중국의 일본 때리기에 공조하는 모양새로 비쳐진 것도 운신의 폭을 좁히는 측면이 있다. “보조를 맞추리라 믿었던 중국에 뒤통수를 맞았다”는 말을 이제와 한다면 그건 중국을 너무 몰랐다는 고백과 마찬가지다.



 한·일 관계는 반드시 복원돼야 한다. 하지만 고립을 탈피한답시고 일본과 정상회담을 서두를 일은 더더욱 아니라고 본다. 서두르는 쪽이 값비싼 대가를 치르는 건 도박판뿐 아니라 외교도 마찬가지다. 한·일 관계와 중·일 관계를 연동시켜야 한다는 법칙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랬다간 “중국과만 잘 하면 한국도 따라온다”는 오해를 일본에 심어줄 수 있다. 정부 당국자의 말대로 의연하게 대처하는 것 이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다만 의연함을 강경함과 혼동해서는 안 되며, 의연함과 유연함은 상충되는 개념이 아니란 점을 새겼으면 한다. 스스로 출구를 봉쇄하는 강경 일변도로는 얻을 게 그리 많지 않다. 강경한 듯하면서도 알고 보면 유연한 중국에 배워야 할 점이다.



예영준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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