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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석의 시시각각] 반기문 대망론과 안철수 현상

중앙일보 2014.11.11 00:05 종합 34면 지면보기
강민석
정치부 부장대우
동물성 국회와 식물성 국회.



 선진화법 등장 이후 국회를 나누는 신종 분류법이다. 해머에 최루탄이 난무하던 18대 국회를 전자, 동물성을 조금 뺀 19대가 후자다.



 이 분류법에 따르면 안철수 의원은 어느 국회에 어울릴까. 누가 봐도 그는 식물형, 혹은 초식동물과다. 맹금류와는 거리가 멀다. 당 대표 시절 강경파 의원들이 들이받아도 그가 ‘버럭’했다는 얘긴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 안철수 의원이 어떤 자리에서 “국정감사 때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막말’을 했다”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막말이 이랬다. “장관은 기재부 보건복지국장 같아요.”



 복지부가 기재부에 휘둘린다는 비판이었다. 이 말을 전하며 이렇게 부연했다.



 “열심히 질의한 내용은 기사가 안 나오고, 결국은 막말을 해야 조금 나오더라고요.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막말이었습니다만….”



 장관더러 국장 같다고 한 게 최고의 막말? 어쨌거나 ‘자칭 막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기사가 별로 나지 않는 건 사실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를 쫓는 카메라 숫자도 확 줄었다. 정계입문 후 처음 겪는 일일 거다. ‘안철수 현상’도 ‘안철수’를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어느덧 보통명사화했다. 요즘은 그마저 ‘반기문 대망론’이 대체하려 한다.



 출입기자들이 그에게 반기문 대망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말할 처지가 아니다”고 답을 피했다. 다만 “어린이 위인전기에 반 총장과 함께 등장했는데 그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라는 동문서답을 덧붙였다.



 하지만 인연은 거기까지다. 현실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안 의원이 위인전 속으로 다시 들어갈 순 없는 노릇.



 반기문 대망론을 보면 안철수 현상이 새삼 아쉽다.



 안철수 현상을 만든 건 “정치를 좀 바꿨으면…” 하는 바람(希)이었다. 바람이 간절해지면서 강한 바람(風)이 불었다.



 그러나 바람이 제법 강하게 불 때, 그 에너지를 정치를 바꾸는 데 제대로 써먹지 못했다.



 ‘87년 체제’ 이후의 대한민국 정치는 어느덧 ‘앙시앵레짐’을 떠올릴 만큼 낡았고, 영·호남 정치재벌의 기득권은 마치 왕권신수설(王權神受設)을 연상케 한다.



 바람으로 쓰러뜨리기엔 너무 공고한 벽이긴 하지만 안철수 바람을 이런 구체제의 벽을 허무는 데 쓰려 하지 않고, 선거 이기는 데만 쓰려했다. 야권, 안 의원 모두 책임이 있다.



 반기문 대망론도 똑같은 전철을 밟을지 몰라 불길하다. 역시 바람(希)이 대망론을 만들고 있지만 정치권은 선거 도구화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 정치권 ‘세팅’을 새로 하는 기간인데도 말이다. 요즘 쇄신의제가 쏟아진다. 선거구제 문제도 그중 하나다.



 예전에 강삼재란 정치인이 있었다. 중선거구제하의 1985년 2·12 총선. 경남 마산엔 민정당 우병규, 민한당 김종준, 신민당 강삼재·백찬기 후보 등등이 출마했다. 신민당만 두 명 출마? 실제로 그랬다. 중선거구제하에선 ‘복수공천’이 가능하다. 선거법상 선거구에서 두 명 뽑으면 두 명 이내, 한 명 뽑으면 한 명만 공천할 수 있다. 복수공천을 할지 말지는 정당의 자유다. 결과는 강삼재 1등, 우병규 2등이었다. 강삼재는 매우 드문 복수공천 당선자였다. 신민당의 경우 딱 두 곳만 복수공천을 했다.



 중선거구제는 지금도 존재한다. 기초의원을 뽑을 때다. 예전 중선거구제하의 총선 땐 여러 정당이 당선자를 배출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2500명 이상 기초의원을 뽑지만 영남은 새누리, 호남은 새정치민주연합이 독식한다. ‘복수공천’ 때문이다. 과거와 달리 여야가 동시에 복수공천을 하니 기초의원의 경우 영·호남 독식구조가 깨지지 않고 있다. ‘복수공천 폐지’는 그래서 정의당 같은 군소정당의 숙원이다. 복수공천, 두는 게 옳을까 아닐까. 이런 현안이 한둘이 아니다.



 의제마다 허무한 결말이 뒤따르지 않으려면 한때 이름 뒤에 ‘현상’이란 단어가 붙었던 안 의원도 바람값을 해야 한다. 바람의 덕 좀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강민석 정치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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