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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장진에겐 드라마가 필요해

중앙일보 2014.11.11 00:05



[매거진M] ‘우리는 형제입니다’가 아쉬운 이유

















장진 감독의 신작 ‘우리는 형제입니다’(10월 23일 개봉)가 개봉 첫 주에 53만 관객을 모았다. 최근 몇 년간 장진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는 가장 좋은 성과다. 이 영화를 두고 혹자는 장진의 부활을 이야기했지만 장진의 휴식을 요구하는 이들도 있다. ‘기막힌 사내들’(1998)로 데뷔 이래 거의 매해 거르지 않고 영화를 만들어 온 그는 스무 편에 육박한 필모그래피로 굴곡의 역사를 기록 중이다. 2010년을 기점으로 내리막에 들어선 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진의 다음 영화를 기다리기로 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형제입니다’는 30년 만에 극적으로 만난 형제가 30분 만에 엄마를 잃어버린다는 설정의 소동극이다. 게다가 형제의 직업을 목사와 무당으로 설정해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동안 장진 영화에서 습관적으로 등장해 온 ‘엇박자’ 기질이 그대로 반영된 셈이다. 장진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있어 쭉 뻗은 고속도로보단 굴곡진 국도를 선호한다. 잘못된 표지판을 만나 헤매거나 예상치 못한 풍경을 만나 한눈팔기를 즐긴다. 그의 이런 기질은 호불호가 분명히 갈리는데, 이번에는 일단 좋은 반응이 수적으로 우세한 듯 보인다. 첫 주 개봉 성적으로 볼 때 ‘퀴즈왕’(2010, 58만) ‘로맨틱 헤븐’(2011, 7만) ‘하이힐’(6월 18일 개봉, 34만)의 흥행 성적에 비교하면 감격스러운 수준이다. 그러나 흥행 곡선의 반전만으로 ‘우리는 형제입니다’의 선전을 지지하기엔, 단점이 여실히 보인다.



장진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재치와 감각은 월등하지만 드라마가 허약하다. 말(유머)의 원심력은 강한 데 비해 구심력이 약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의 골자가 허술해 산만한 순간이 생기고 그때마다 카메오를 기용해 틈을 메우거나 기껏 센스 있게 구축해 놓은 인물을 버리는 경우가 발생한다. ‘우리는 형제입니다’에서는 여일(윤진이)이 그렇다. 여일은 기면증이란 설정으로 영화를 관통하는 소동의 원인을 제공하지만 이후에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한 채 엔드 크레딧을 장식한다. 소위 장진 사단으로 묶이는 김민교를 비롯한 이한위, 김원해 등 카메오 배우들도 같은 목적으로 소비된다. 이런 단점은 ‘굿모닝 프레지던트’(2009)를 기점으로 내놓은 장진의 최근 영화들에서 반복되고 두드러진다. 그나마 장진의 연극적 에너지가 돋보였던 ‘퀴즈왕’도 엉성한 이야기를 대체하려는 배우의 개인기 퍼레이드로 끝나 버린 영화였다. 소위 ‘장진식 코미디’라 일컫는 장점이 단점으로 상쇄되면서 관객이 점점 흥미를 잃고 있다. 웃음이 터지긴 하지만 그 웃음이 전처럼 마냥 즐겁지 않은 것이다. 왜일까.





너무 빨리 성취한 ‘장진식 코미디’



장진은 그의 영화에 빈번히 등장하는 어설픈 사내들과 다르게 일찍이 확고한 경력을 쌓았다. ‘기막힌 사내들’을 시작으로 ‘간첩 리철진’(1999) ‘킬러들의 수다’(2001)를 연달아 내놓으며 엇박자 유머를 터뜨렸고 ‘아는 여자’(2004)에 이르러는 두터운 지지층을 확보했다. 현실적인 상황에서 살짝 빗나간 다소 어수룩한 인물들이 벌이는 소동은 묘한 이질감을 던지며 아이러니를 형성하고, 인물들의 엇박자 대화는 타이밍을 확보하며 웃음을 자아낸다. ‘기막힌 사내들’에서 서울 지리를 몰라 헤매는 택시 기사와 ‘간첩 리철진’에서 택시 강도를 만난 간첩, ‘킬러들의 수다’의 어수룩한 킬러 형제들처럼 자신의 존재 조건에 구멍이 난 인물들이 일으키는 소동은 삶을 경건하고 지루한 궤도에서 밀어낸다. 엉뚱한 사건들이 뛰어들면서 겹겹이 쌓이는 촌극의 연속, 어수룩한 인물들이 비장한 상황에서 삐끗할 때 터지는 웃음이 장진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이는 ‘아는 여자’를 기점으로 ‘장진식 코미디’로 규정됐다. 여기에 ‘I Never Miss You’를 ‘나는 절대 미스 유가 아니다’로 해석하는 말장난은 장진식 코미디에 힘을 보탰다. 자체로는 유치할지언정 영화 안에서 수다의 꽃을 피운 것이다. 장진의 영화는 기존의 장르를 슬그머니 거스르며 그렇게 한국 영화판에 터를 잡았다.



문제는 이러한 장점에만 기대어 ‘장진식 코미디’가 너무 일찍 고유명사화되었단 것이다. 장진 감독도 그에 대한 부담을 드러낸다. “나도 사람들이 흔히 얘기하는 ‘장진식 코미디’란 말의 정체를 모르겠다. 장엄하고 비장한 상황에서 살짝 삐끗해주는 거? 그건 나란 인간의 성향이 그렇다. 일련의 작품을 훑어보고 통일된 뭔가가 좀 잡혔을 때 ‘~식’ 하고 붙이는 거지, 너무 빠르다. 벌써 너무 쉽게 단정 짓고 말하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 나는 아직 하고 싶은 영화가 많다.” 그의 말마따나 어린 나이에 대학로 무대의 한 축을 장악하고 충무로까지 입성한 이야기꾼의 부지런한 행보에 너무 이른 훈장이 달렸다. 그가 ‘장진식 코미디’란 족쇄에 묶인 시점부터 장진이 품고 있는 삐끗한 정서가 총기를 잃더니 ‘퀴즈왕’ ‘로맨틱 헤븐’의 연이은 흥행 실패는 장진도 한물갔다는 말로 이어졌다. 그리고 한동안 장진은 영화를 멀리했다.





‘하이힐’로 증명한 새로운 긴장감… 그런데?



장진은 손이 빠르고 부지런한 사람이다. 감독이기 이전에 이야기의 구조를 짜는 대신 말의 타이밍을 계산하는 유희의 작가다. 그는 감독 데뷔 이래 일 년에 평균 한 작품 꼴로 영화를 찍어왔다. 그런 그가 ‘로맨틱 헤븐’ 이후 3년의 침묵을 끝내고 돌아왔다(물론 그 사이 ‘SNL코리아’(tvN)를 비롯한 몇몇 방송 프로그램과 연극과 뮤지컬을 넘나들며 장진이란 브랜드의 건재함을 뽐내기도 했다). 기존의 그의 영화와는 다른 선로에 놓인 작품이 ‘하이힐’이었다. ‘아들’(2007) 이후 오랜만에 차승원과 합을 맞춘 ‘하이힐’에서는 확실히 독기가 느껴졌다. 누아르 장르라는 외피만으로 변화를 말하는 건 아니다. 이전까지의 장진의 영화가 설렁설렁 딴짓을 하며 달렸다면 ‘하이힐’은 오로지 앞만 보며 달리는 영화다.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의 마음이 영화의 가장 우위에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자신의 정체성을 죽이고 살아온 남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영화이고, 이 남자의 목소리는 그동안 ‘장진식 코미디’에 갇혀 헤매던 장진 감독의 고백인 셈이다.



‘하이힐’의 지욱(차승원)은 오해의 대상이다. 범죄 조직의 2인자 허곤(오정세)의 동경, 형사 후배 진우(고경표)의 존경, 그의 수사를 돕는 바텐더 장미(이솜)의 흠모는 모두 가짜로 그들 스스로가 만든 것이다. 오히려 지욱의 진짜 모습을 알아채는 건 짐승 같은 변태 성범죄자다. 아이러니다. 그러나 그동안 장진이 빚어낸 아이러니와는 다른 것이다. 어수룩한 인물의 소동이 아니라 정체성을 찾고 싶은 인물의 드라마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 드라마는 차승원의 몸을 통해 발현되는데 강도 높은 액션을 소화하는 지욱의 몸과 가발을 쓰고 짙은 화장을 한 지욱의 얼굴을 오가는 긴장이 팽팽하다. 한껏 여자로 치장한 그가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평범한 가족과 마주치며 벌어지는 커밍아웃이 던지는 웃음은 장진 영화 특유의 소동을 기반으로 하지만 드라마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캐릭터에 기대지 않고 드라마에 힘을 실은 성과다. 12㎝ 하이힐에 올라선 지욱은 변화를 선언한 장진의 분신인 것으로 보인다. ‘하이힐’ 이후의 행보는 의미로 충전된 드라마이길 바랐던 이유다.



한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형제입니다’는 슬쩍 퇴행의 분위기를 풍긴다. 30년 만에 재회한 형제가 목사와 무당으로 만난다는 캐릭터 설정에 고스란히 기대어 가는 것이다. 이것은 장진에겐 너무나 손쉽고 익숙한 방식이다. 이런 장진의 해묵은 전략은 어떤 배우를 만나 궁합을 맞추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도박이다. 신인 시절 그의 재기발랄한 베팅은 관객의 마음을 훔치기에 충분했지만 어느새 유효기간이 끝나간다. 그에겐 더는 숨겨둔 카드가 남아 있지 않다. 장진은 ‘하이힐’을 찍으며 “영화가 어려워졌다. 쉽고 습관적으로 갈 수 없는 것이 영화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의 고백대로 더는 캐릭터 영화에 머물러선 안 된다. 장진의 캐릭터 놀이는 뛰어나지만 그것만으로 버틸 순 없다. 장진에게 필요한 건 새로운 모험이나 특별한 소재가 아니다. 오히려 그의 캐릭터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드라마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하이힐’로 드라마의 가능성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머뭇거리고 있다. 엄살 부리지 말고, 작정하고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 드라마의 정공법을 처음 신은 그가 휘청거리는 건 당연하다. 아직 장진은 하이힐을 벗으면 안 된다.





글= 이유진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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