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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와 은하계 사이 웜홀 지났더니 인간이 마주친 건

중앙선데이 2014.11.08 03:41 400호 30면 지면보기
SF영화가 미래 세계의 얘기를 그리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절대 그렇지가 않다. 앞날의 얘기를 하려는 척 사실은 현재에 대한 문제를 성찰하려 한다. 2시간 49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망망대해의 우주 이야기를 펼치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대작 ‘인터스텔라’ 또한 마찬가지다.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미래보다 현실의 고민이 더욱 깊어지게 된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새 영화 ‘인터스텔라’

영화는 어느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우리가 지금 전전긍긍하듯 그때쯤 세계경제는 붕괴한 지 오래다. 식량 위기도 도래한다. 군대 따위는 해체됐다. 전쟁할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 UN이니 하는 세계 기구도 유명무실하다. 하물며 NASA 따위는 존재를 감췄다. 자연환경은 급격하게 절망 선으로 접근해 간다. 지구는 곧 종말을 고할 듯 위태위태한 모습이다.

한때 전설적인 파일럿이었던 쿠퍼(매튜 매커너헤이)는 아내를 잃고 장인과 아들, 딸 그렇게 두 아이와 대규모의 옥수수 밭을 일구며 살아간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다. 시도 때도 없이 황사가 덮치고 불길한 징조가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진다. 그런 와중에 딸 아이 머피(멕켄지 포이)의 기이한 행동으로 쿠퍼는 좌표 하나를 발견하게 되고 그곳에서 비밀리에 작업중인 NASA 기지를 발견하게 된다. 한때 멘토였던 브랜드 박사(마이클 케인)는 현재 지구를 대체할 행성을 발견하기 위한 연구 작업이 진행중임을 실토하고 쿠퍼에게 다른 대원들에 이어 또 다시 은하계로 넘어갈 것을 제안한다. 쿠퍼는 가지 말라고 애원하는 딸 머피를 뒤로하고 아멜리에(앤 해서웨이) 등 다른 팀원들과 함께 인터-스텔라, 곧 은하계와 은하계의 사이에 있는 웜 홀을 넘어 전혀 예측이 불가능한 우주의 공간으로 날아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쿠퍼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경악에 가까운 그 무엇이다.

영화 ‘인터스텔라’는 12세관람가지만 18세 이하의 청소년들이 보기에는 이해가 쉽지 않은 작품이 될 것이다. 영화는 그래서 또 다른 갈래를 만들어서 보여주는데 그건 바로 광활하고 깊은 시각 디자인이다. 이 영화의 철학성을 짐작하기 힘들어 하는 관객들에게 어마어마한 비주얼을 제공함으로써 세속적 만족도를 주려 한다. 영화가 매우 철학적이면서 동시에 세속적이고 신파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 명백히 1억6500만 달러(1650억원) 짜리 영화를 만들면서 비평과 흥행, 양 쪽 모두를 가져 가려는 놀란 감독의 기지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인터스텔라’는 그래서 복합적이면서도 동시에 단순하고, 서구적이면서도 동양적이다. 세상과 우주는 물질적이지만 그 존재증명은, 지금의 인식론상, 상당히 초월적일 수 밖에 없음을 고백한다. 미래세계에서 온 존재는 결국 우리의 연장선상이어서 ‘외계인=나 자신’이며 ‘우주=자아 그 자체’임을 얘기한다. 같지 아니한 것은 같고, 같은 것은 같지 아니하다. 그 불일치의 일치라는 변증법적 사고가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

이 영화를 이해하는 키 워드는 어쩌면 환원이다. 우리는 현재 3차원에 살지만 언젠가 4차원과 5차원의 세계를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시공간을 뛰어 넘어 현재와 과거, 미래를 오가게 될 것이다. 미래가 과거가 되고 과거가 미래가 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곧 현재의 우리들은 미래 세계의 존재가 되고 미래에 갔던 우리는 다시 현재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 영화가 들려주는 환원과 환치(還置)의 얘기들은 궁극적으로는 구원의 문제로 다가서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지금 우리의 문제는 어쩌면 미래의 우리가 구해낼지 모르는 일이라는 것이다.

다른 은하계의 12행성 중 한 군데에서 쿠퍼와 아멜리에 등은 어마어마한 대양(大洋)과 그에 따른 파도를 만나 사고를 당한다. 그래도 허비한 시간은 단 몇 시간. 그러나 지구에서는 이미 26년이 흐른 뒤다. 우주 정거장으로 간신히 살아 돌아 온 쿠퍼가 이미 한참의 세월이 흐른 지구에서, 이제는 어엿한 30대 처녀로 자란 딸 머피(제시카 채스테인)의 통신 메시지를 보는 장면은 기이한 통곡을 속으로 삼키게 만든다. 아버지는 늙지 않는데 딸은 점점 자신보다 늙어 간다. 그것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진정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인터스텔라’는 결국 우리가, 거창하게 인류라고 얘기할 것도 없이, 이 험악한 세상살이에서 결국 생존해 낼 것인가를 묻는 작품이다. 그 생존의 방식은 결코 최첨단의 물리 방정식을 발견해 내는 것이 아니다. 그건 바로 사랑이다. 마음속으로 유레카를 외치게 되는 것은 바야흐로 그때쯤이다. 유레카는 무엇인가를 발견해 냈을 때 소리쳐 외치는 말이다. 영화 후반부에서 미래 세계의 아빠 쿠퍼로부터 메시지를 받은 머피가 지구를 구할 이론을 발견하고 나서 사람들의 머리 위로 연구자료를 뿌리며 외치는 말이기도 하다. 진정한 유레카를 위하여!


글 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hanmail.net 사진 워너브라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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