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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노트] 매매와 월세 갈림길에 선 전세

중앙일보 2014.11.08 13:45
2월 16일자에서 필자는 ‘120살 전세, 월세에 밀려 수명 다하나’라는 제목으로 전세의 퇴조에 대해 썼다. 9개월가량 지난 지금 전세는 ‘사망선고’를 받은 듯하다. 임대차시장에서 전세가 더욱 빠르게 줄고 있고 정부도 올 들어 전세 지원에서 손을 뗀 분위기다. 세입자 대책과 관련해 나온 2월 말 ‘서민·중산층 주거안정을 위한 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 10월 말 ‘서민 주거비 부담 완화 대책’은 모두 월세에 방점을 두고 있다.


저금리로 전세의 월세 전환 가속도
매수 거주비용이 장기적으로 저렴
집값 전망이 매수·월세 선택 결정

올 들어 10월 말까지 서울에서 이뤄진 전·월세 계약 35만여 건 중 월세가 13만4000여건으로 전체의 38%다. 단독·다가구주택은 월세 계약이 전세보다 더 많다(50.7%). 2012년만 해도 같은 기간 계약된 월세가 10만여 건으로 31.1%였다. 2년 새 7%포인트 뛰었다.



월세 성장의 1등 공신은 단연 저금리다. 기준금리가 올 들어서 두 번이나 총 0.5%포인트 내려 현재 2%로 ‘바닥금리’다. 뭉칫돈 전세보증금이 있어봐야 ‘돈’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보증금을 월세로 돌리면 연 7% 정도의 월세가 나온다. 집주인들이 은행대출을 받아서라도 보증금 일부를 돌려주고 월세로 돌리는 게 ‘경제적’인 셈이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연 4% 정도다. 빚을 내서 보증금 일부를 세입자에게 돌려주고 월세로 전환해도 은행에 묻어둘 때의 이자(연 2.6%)보다 많은 연 3%가 남는다.



월세 비중 2년 새 7%포인트 올라



빠른 월세 전환은 전세시장에 직격탄을 날렸다. 전세가 월세로 간판을 바꿔 달면서 전셋집 구하기는 어려워졌다. 1000가구가 넘는 아파트에서 전세로 나온 물량이 한 손으로 꼽을 정도다. 올 들어 아파트 전셋값이 전국적으로 4.3%, 서울·수도권에서 5.91% 올랐다. 지난해 말 2억여원이던 서울·수도권 아파트 평균 전셋값이 지난달 말 2억2000만원 선으로 10개월새 2000만원가량 뛰었다. 지난해보다 상승폭은 조금 줄어들었어도 오름세가 꺾이지 않았다. ‘최경환 효과’ 등으로 매매거래가 크게 늘었지만 워낙 전셋집이 적어 전셋값 상승세에 브레이크가 없다. 전세에서 매매로 돌아서 줄어드는 전세수요보다 전세공급량이 더 빠르게 줄고 있다.



이쯤 되면 전세 세입자는 전세시장에서 내몰려 집을 사느냐, 보증금의 일부를 월세로 내는 반전세(보증부월세)로 들어가느냐의 갈림길에 놓였다. 거주비용 등을 따져 어느 게 유리할지 저울질이 한창이다.



우선 세금·중개수수료·이자 등 거주하는 데 필요한 거주비용을 기준으로 주택 매수와 전세·반전세를 비교하면 전세가 가장 저렴하다. 전셋값이 집값의 60~70%여서 전셋값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받아야 하는 금액이 적다. 금리는 연 4% 정도로 비슷하다. 매수에는 취득세·재산세 등 전세에 없는 각종 세금이 뒤따른다.



반전세는 전체 전세 보증금의 일부를 월세로 받는데 전세의 월세 전환 이율이 전세금대출보다 훨씬 높다(서울시 평균 7.2%). 전세대출금 이자보다 주인에게 주는 반전세 월세가 더 많다.



주택수요자들이 전세를 고집하는 이유가 이해된다.



그러면 매수와 반전세는 어떻게 될까.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얼마 전 주택 매수와 반전세의 거주비용을 분석했다. 단기적으로 반전세가 유리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매수의 거주비용이 적게 드는 것으로 추정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매수는 초기의 구입비용 부담이 줄어드는데 반전세의 경우 임대료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자기자본이 많아 집을 사기 위해 대출 받는 금액이 적을수록 매수가 반전세보다 불리한 기간이 짧다. 대개 거주기간이 4년 이상이면 매수가 낫다.



집을 사는 게 이득이라는 것인데 꼭 그렇다고 할 수 없다. 저울의 움직임을 결정짓는 주요 변수가 장래 집값 전망이다. 집값 상승분은 수익이 되기 때문에 내 집을 장만하는 데 실제로 드는 비용은 거주비용에서 집값 시세차익을 뺀 금액이다. 집값이 오를 수록 매수자의 비용부담이 줄어든다. 거주비용보다 많이 오르면 돈이 드는 게 아니라 돈을 버는 게 된다.



집값이 하락하면 거주비용이 하락분만큼 늘어난다.



월세 증가가 집값 상승 막을 수도



근래 매매거래가 늘어난 것을 보면 전세 세입자들의 마음이 매수 쪽으로 기운 것 같다. 가깝게 보면 반전세보다 자금 부담이 많아도 멀리 보면 집값 상승에 따른 시세차익이 생길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매수를 대세로 단정짓기 이르다. 주택시장에서 비수기인 11월의 계절적인 요인을 감안하더라도 최근 주택거래 증가세와 집값 상승 분위기가 다소 식었다.



월세 공급 증가로 월세이율이 떨어지고 있어 월세 거주비용은 줄어든다. 자꾸 월세로 눈이 가는 이유다.



임대차시장에서 전세가 대부분을 차지하던 2000년대 초·중반, 전셋값이 치솟으면 피난처가 주택 구입 외에 없었다. 집값이 상승세였으니 고민할 필요 없이 전세의 매매 전환이 빠르게 일어났다.



요즘은 사정이 다르다. 집값을 밀어 올리던 2000년대 초반 수준까지 전셋값이 상승했지만 그때만큼 매수세가 늘지 않고 있다. 월세라는 다른 길이 있어서다. 집값 전망에 불안한 구석이 있기 때문에 비싼 월세를 감수하고서라도 집을 사지 않는다.



주택시장의 신규 수요인 젊은층은 가진 돈이 많지 않아 매수를 포기하고 월세를 선택하기도 한다.



집값 상승에 원심력과 구심력을 모두 행사는 월세시장. 어느 쪽의 힘이 더 셀까.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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