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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의 사람 풍경] ‘죽음학’전도사 서울대 의대 정현채 교수

중앙일보 2014.11.08 00:25 종합 16면 지면보기
“죽음을 알게 되면 누구를 미워할 시간도 없어진다”고 말하는 정현채 교수. 그는 의사의 기본 조건 중 하나가 인간에 대한 이해라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서울대 의대 소화기내과 정현채(59) 교수는 신문 읽는 법이 남다르다. 매일 아침 부음(訃音)부터 챙겨 본다. 그가 죽음학을 강의하기 시작한 7년 전부터 붙은 습관이다.

죽음은 새 삶 향한 시작,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문이죠



“한 사람이 일생을 어떻게 마무리하며 떠나는지에 관심이 커요. 롤모델을 삼을 만한 인물이 있는지 찾아봅니다. ”



 정 교수는 내과의 생활 34년째다. 위암 등 소화기 계통 난치병을 진료한다. 헬리코박터균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많은 의사가 그렇듯 생과 사의 경계를 목격하며 산다. 그런데 그는 좀 특이한 의사다. 요청하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가 “죽음을 준비하라”고 얘기한다. 지난 7년간 강연 횟수만 230여 회에 이른다. 『의사들, 죽음을 말하다』(북성재)라는 책도 최근 냈다.



 지난 3일 서울대병원에 있는 정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다. 죽음 관련 인문학 책이 빼곡하다.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죽음을 강의하는 이유는 뭘까. 연구실 메모판에 붙어 있는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이 눈에 띄었다. 중국 명나라 때 묘협 스님이 사람의 마음가짐을 10가지로 간추린 글이다.



국내에 존엄사 문제를 처음 제기한 김건열 전 서울대 의대 교수(왼쪽)와 국내 의대에 죽음학 특강을 처음 개설한 울산대 의대 유은실 교수. 정현채 교수와 함께 단행본 .의사들, 죽음을 말하다.를 냈다.
 - 의사 연구실에선 흔치 않은 풍경입니다.



 “법륜 스님이 향린교회 강연에서 나눠 준 것을 나중에 구했어요.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등이죠. 매일 한 번씩 정독합니다. 환자에게도 나눠 주고요. 사실 병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인간이 늘 그렇게 바라며 산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거죠.”



 - 불교 등 특정 종교를 믿나요.



 “아닙니다. 10년 전쯤 갑자기 죽음에 대한 공포가 밀려들었습니다. 절이나 교회를 다녀 볼까 생각했었는데, 죽음은 교리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봤어요. 죽음의 불안을 풀려면 과학적 팩트를 알아야 하죠. 그때부터 죽음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 죽음을 꺼내 든 의사는 드뭅니다.



 “‘먹고살기도 바쁜데 죽음 타령이냐’ ‘장의사가 되려는 거냐’라는 비아냥도 들었죠. 그런데 일반인보다 의사가 죽음을 더 공포스럽게 여긴다고 해요. 말기암 환자에게 무리한 연명치료를 하는 것도 그런 두려움 때문입니다. 의사의 패배, 의료의 실패로 보는 거죠. 모두 교육이 부족한 탓입니다. 의대생 중 임종 현장에 참여한 비율은 10~20%밖에 안 돼요.”



 - 일반인도 평소 죽음을 잊고 삽니다.



 “저도 10년 전에는 똑같았죠. 누구나 죽음은 나와 관계없는 일로 생각합니다. 문제는 아무런 준비 없이 살다가 황당하게 가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자신이 살아온 소중한 시간을 돌아보는 과정 없이 말이죠.”



 - 그래서 준비가 필요하다는 건가요.



 “제 경험을 들어 볼게요. 5년 전쯤 40대 중반 남성이 구급차에 실려 제 진료실로 왔어요. 응급실이 아니고 진료실로요. 지방에서 수술을 받은 십이지장암 환자였는데, 암세포가 온몸으로 전이돼 손을 쓸 수 없었습니다. 환자의 누나가 동생을 위해 서울까지 무리를 해 온 거죠. 마지막 순간까지 숨을 헐떡이며 병원을 찾은 환자의 고통이 어땠을까요. 그래도 걱정돼 사흘 후 연락을 했더니 또 다른 병원에 있더군요. 그리고 5시간 뒤 ‘동생이 죽었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정말 안타까웠죠.”



 - 가족이라면 희망을 놓지 않습니다.



 “치료를 그만두자는 얘기가 아니에요. 물에 빠진 사람이나 사고로 심장이 멎은 사람은 반드시 심폐소생술을 해야 합니다. 다만 죽음이 임박한 말기 암 환자의 경우 그런 조치는 큰 의미가 없어요. 환자도, 가족도, 의사도 고통스럽습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죽음에 대한 혐오와 부정이 큰 것이죠. 죽음을 터부시하는 문화 때문입니다.”



 - 죽음을 수용하면 허무해지지 않나요.



 “정반대입니다. 되레 현재를 더 충실하게 살 수 있어요. 오늘 본 아름다운 단풍이나 노을을 내일은 누릴 수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지금이 얼마나 축복된 순간인지 깨닫게 됩니다. 저도 죽음을 공부한 뒤 부부싸움이 줄었어요. 싸움을 해도 바로 화해하고요. 지금 두 눈으로 보고, 두 발로 걷는다는 건 대단한 기적입니다. 배변도 마찬가지죠. 병원에 와 보세요. 항문이 없는 환자도 많습니다.”



 -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한 심리학자가 이런 실험을 했어요. 공동묘지 안에 있는 사람과 밖에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각각 노트북을 떨어뜨렸는데, 묘지 안의 사람이 다른 공간의 사람보다 40%나 더 많이 도와줬다고 해요. 묘지 안에 있으면 배려심이 더 커진다는 증거죠. 이렇듯 죽음에 대한 자각은 타인에 대한 공감과 연민을 키워 줍니다. 세상을 보는 안경이 달라지는 겁니다.”



 - 일상에서는 어떤 변화가 오나요.



 “자기 몸을 사랑하게 되니 만취하는 일이 줄어들겠죠. 담배도 끊게 될 겁니다. 자살을 하는 일도 없을 테고요. 삶이란 학교로 치면 한 학기와 같습니다. 한 학기 열심히 공부하면 방학에 들어가죠. 방학 다음에는 새 학기가 시작되고요.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 삶을 향한 시작입니다. 꽉 막힌 벽이 아니라 또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문이죠.”



 - 영혼불멸설을 주장하는 건가요.



 “그것보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게 다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저명 의학학술지에도 근사(近死) 체험을 다룬 논문이 예전보다 자주 게재됩니다. 세계 3대 의학잡지로 꼽히는 ‘랜싯(Lancet)’에 실린 논문을 보면 네덜란드 여러 병원에서 심폐소생술로 다시 살아난 344명을 조사한 결과 그 18%인 62명이 근사 체험을 했다고 합니다.”



 - 신비주의 느낌이 듭니다.



 “제 전공인 소화기질환을 볼까요. 속이 더부룩하거나 쓰린 증상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습니다. 주관적 체험이기 때문이죠. 헬리코박터균만 해도 그래요. 1979년 병리학자 워런이 학계에 처음 보고했죠. 하지만 철저하게 외면받았어요. 염산이 분비된 위장에선 균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게 그때 통념이었죠. 그런데 2005년 노벨 의학상을 받게 됩니다. 이렇듯 현재 우리의 감각이나 의식으로 파악할 수 있는 세계는 우주의 극히 작은 일부분일 수 있습니다.”



 - 영성가의 말을 듣는 것 같습니다.



 “다른 의사들의 반응도 극과 극입니다. 지난달 26일 코엑스에서 열린 세계내과학회에서도 ‘좋은 죽음과 존엄하게 죽는 법(Good Death & Dying with Dignity)’을 발표했죠. 5000~6000명의 내과의가 모였어요. 아직 소수이긴 하지만 국제의학대회에 보고될 만큼 죽음을 보는 눈이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 존엄사가 요즘 세계적 논란입니다.



 “찬성과 반대, 어느 쪽을 선뜻 지지할 수 없지만 고통스러운 죽음이 더는 없어야 할 것입니다. 일본만 해도 존엄사협회 회원이 12만 명이 넘을 만큼 죽음문화가 성숙했습니다. 문제는 환자의 의지입니다. 평소 자신의 뜻을 분명히 밝혀야 해요. 또 암에 걸린 사실을 환자에게 숨기면 안 됩니다. 올해 국립암센터 연구에 따르면 환자의 96%가 진실을 알기를 원했거든요.”



 - 본인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요.



 “4년 전부터 각종 자료를 정리해 의학박물관에 보내고 있습니다. 헌혈도 1년에 5번 합니다. 장기기증서약서, 연명치료를 거부한다는 사전의료의향서, 유언장도 작성했고요. 가장 큰 소망은 가족의 배웅을 받으며 이승을 떠나는 거죠. 평소 좋아했던 평상복 차림으로 장례를 치르고 인천 앞바다에 유골을 뿌려 달라고 부탁했어요. 기일에도 제사를 지내지 말고 같이 살았던 때를 기억해 달라고 두 딸에게 얘기해 놓았어요.”





[S BOX] 죽음에 대한 성찰 ‘메멘토 모리’ 추천 영화 5편



정현채 교수의 연구실에는 영화 DVD가 수북이 쌓여 있다.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룬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 작품이 많다. 정 교수는 환자를 진료하거나 죽음학을 강의할 때 영화를 즐겨 인용한다. ‘의료인에 대한 죽음 교육으로서 영화의 활용’이란 논문을 대한소화기학회지에 싣기도 했다. 그에게 영화 다섯 편을 추천해 달라고 청했다.



 ① 이끼루(生きる)=일본 영화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1910~98)의 걸작. 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시청 말단 과장의 얘기다. 버려진 공터를 어린이공원으로 만들어 달라는 마을 주민의 숙원사업을 해결해 간다.



 ② 말하는 건축가=‘사람을 위한 건축’을 설파해온 건축가 정기용(1945~2011)의 마지막을 담은 다큐멘터리. 대장암 투병 중이던 고인이 남긴 말은 이렇다. “하늘도 고맙고, 공기도 고맙고,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③ 굿’바이=도쿄의 첼리스트가 생계를 위해 납관(納棺) 일을 하게 되면서 인생을 깨달아 간다. 용서와 화해에 대한 대목이 많다. 말기암 판정을 받은 아버지의 행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엔딩 노트’도 권한다.



 ④ 위트(wit)=현대인이라면 꼭 보기를 원한다. ‘병원에서 죽으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는 할리우드 영화다. 말기 난소암 판정을 받은 영문학 교수로 나오는 에마 톰슨의 연기를 쉽게 잊을 수 없다.



 ⑤ 내 사랑 내 곁에=김명민·하지원 주연으로 화제가 됐다. 루게릭 병에 걸린 젊은 남자 주인공이 사지가 마비되며 맞게 되는 임종을 그리고 있다. 여자 주인공은 장례지도사다.





글=박정호 문화.스포츠.섹션 에디터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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