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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의료사고는 배상 늘려야 줄일 수 있다

중앙일보 2014.11.06 00:07 종합 33면 지면보기
신현호
변호사·법학박사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다가 긴 여행을 끝내리.”

 가수 신해철이 떠났다. 자신이 부른 ‘민물장어의 꿈’처럼….

 그의 사인을 둘러싸고 의혹이 커지고 있다. 우리는 오래 살다가 편안하게 죽기를 바란다. 이런 꿈을 이루려면 아프기 전에 건강검진을 받고 병이 진단되면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이때 의사도 오진을 하거나 잘못 수술할 수 있다. 어느 의사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 천운이면 치료될 수도 있고 운 없으면 사고를 당해 유명(幽明)을 달리하기도 한다.

 연간 최소한 1만 건 이상의 의료분쟁이 발생하고 그중 10% 정도가 의료소송을 벌이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의료사고인지조차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훨씬 많다. 어느 사회나 갈등은 있다. 우리나라의 사회적 갈등 해소 비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둘째로 많다는 보고가 있다. 대표적인 곳이 의료 분야다. 신해철은 유명 가수이니 온 나라가 이렇게 관심을 갖지 일반 사람은 고소해도 수사기관에서 귀찮아한다.

 의사를 상대로 소송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패배의식이 깊게 배 있다. 의사와 환자는 신뢰가 형성돼야 제대로 치료된다. 서로 불신하면 병 고치러 갔다가 병을 얻을 수 있다. 의료행위는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이타적인 행위인데 환자가 의사를 믿지 못하게 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간다. 생명은 한번 손상을 당하면 회복되기 힘들다. 한 생명에 그치지 않는다. 에볼라 바이러스 사태처럼 한 사람의 감염병을 방치할 경우 사회 전체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의사와 환자의 신뢰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크게 문화 형성과 제도 마련이다. 안심하고 진료받을 수 있고 소신껏 치료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빨리 만들어가야 한다. 그 방법 중 하나가 설명 의무의 생활화와 법제화다. 법원에서 과실 책임의 요소로 인정하기 때문에 마지못해 부동문자로 인쇄된 수술동의서에 서명을 받는 형식적 수준을 넘어야 한다. 의사는 환자의 주체성을 인정하고 자기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의사 스스로도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 수술을 꼭 해야 하는지, 한다면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 한번 더 돌아볼 수 있게 되고, 그러면 의료사고를 좀 더 막을 수 있다. 오스트리아 형법처럼 환자의 동의 없이 수술하는 행위 자체를 형벌로 다스릴 수 있다면 의료사고는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의료사고가 발생한 경우 적절한 배상이 이루어져야 분쟁이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의료사고에 대비한 위험료(Risk Fee)를 건강보험료에 약 0.15% 포함시켜 국민이 부담하고 있다. 이 위험료는 의료기관의 진료 수익이 아니라 사회보험금이다. 그럼에도 의료기관의 진료비에 포함해 지불하고 있고 의료기관은 진료 수익으로 챙긴다. 이를 정부가 원천 징수해 의료분쟁배상기금으로 가지고 있다가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여기서 지불하는 방식으로 바꾸어야 한다. 독립된 기금으로 운영될 경우 의료기관에서 굳이 의료사고를 숨길 이유가 없다.

 의료사고 피해 구제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 재발 방지다. 예를 들어 병원감염은 어느 나라, 어느 병원에서나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내 병원은 감염이 없다고 우기기 바쁘다. 또 어떤 병원은 축소해 공개한다. 의료기관에서 의료사고의 원인을 밝히게 되면 진료체계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교육이나 시설·장비 보완 등을 보다 공개적이고 체계적으로 할 수 있다. 국가는 이런 정보와 통계를 토대로 보건의료정책을 수립하고 필요한 경우 비용을 지급함으로써 의료사고를 적극적으로 방지할 수 있다.

 ‘대한민국=성형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씻기 위해서라도 무분별한 미용성형수술로 인한 사고에 대해서는 엄격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법원은 치료를 위한 수술과 미용성형수술을 구별하지 않고 같은 잣대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의료기관은 이른바 ‘돈 되는’ 미용성형수술에 별 부담 없이 매달린다. 수가가 통제되는 치료형 수술에 비해 시장가격에 의해 움직이는 미용성형수술에 대해서는 미국처럼 징벌적 손해배상(가해자 연 수익의 10% 정도를 배상하는 제도)을 부과할 필요가 있다. 제도를 마련할 수 없다면 법원이 이런 판례를 만들 수도 있다.

 20여 년간의 논의 끝에 2012년부터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돼 의료사고 피해에 대한 구제를 쉽게 받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됐다. 그러나 막상 이 법을 운용해 보니 강제개시제도가 없어 의료기관이 응하지 않으면 조정 자체를 시작할 수 없다. 3년간 의료기관이 응하는 비율이 평균 42.2%에 그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법이 시행된 이후 의료소송은 오히려 늘었다. 지난해는 1102건을 기록해 처음으로 1000건을 넘었다. 환자와 의사, 정부가 이해와 양보로 지금 같은 소모적 갈등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신현호 변호사·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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