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담대한 희망서 햄릿 리더십으로 추락

중앙일보 2014.11.05 18:50
2008년 ‘담대한 희망’을 기치로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당선됐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 그러나 6년 만에 받아 든 성적표는 초라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개표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민주당의 영웅에서 정치적 부담이 됐다”고 보도했다.



5일 중간선거 개표 결과는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에겐 심각하다.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일리노이는 물론 민주당 아성인 동부 벨트가 무너졌다. 대통령 오바마의 출발점인 ‘오바마 상원의원’을 만든 일리노이에선 정치 초년병인 공화당 브루스 라우너 후보가 현역인 민주당 팻 퀸 주지사에 승리했다. ‘블루 스테이트(민주당 지지 주)’인 메릴랜드 주지사를 놓곤 공화당 래리 호갠 후보가 앤서니 브라운 민주당 후보에 승리했다.



접전 속에서도 민주당의 수성이 예상됐던 노스캐롤라이나 상원의원 선거는 공화당의 톰 틸리스 후보가 민주당의 케이 헤이건 상원의원을 막판에 뒤집었다. 뉴욕타임스(NYT)는 “가장 놀라운 결과”라고 전했다. 민주당의 완승이 예상됐던 버지니아도 마크 워너 상원의원을 공화당의 에드 길리스피 후보가 개표 막판까지 초박빙으로 따라 붙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두 차례 승리했던 ‘안전 지대’인 콜로라도는 정치 명문가인 우달 가문의 민주당 마크 우달 상원의원이 공화당의 코리 가드너 후보에 개표 초반 무너졌다.



NYT는 “경제적 불만과 대통령을 향한 분노가 공화당의 상원 장악을 가져왔다”고 진단했다. 분노의 근원엔 대외적으로 결단 대신 고민하는 ‘유약한 햄릿’ 외교에 대한 누적된 불만과, 대내적으로 공화당과 대치 상태를 이어가며 정치적 불능 상태를 해소하지 못한 오바마 대통령의 리더십 위기가 자리하고 있다. WP는 유라시아그룹의 이언 브레머 회장을 인용,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생각하기 싫어하는 리더였고, 오바마 대통령은 이끌기를 싫어하는 사상가”라고 전했다.



민항기 격추로까지 번졌던 우크라이나 사태를 놓고 오바마 대통령은 뚜렷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며 보수파로부터 저자세 외교 논란을 불렀다. 오바마 대통령은 시리아의 알 아사드 정권에 대한 공습을 주저하다가 결국 이슬람국가(IS)가 등장하자 시리아 내 IS 공습으로 방향을 바꿔야 했다.



내치에서도 오바마 대통령의 총기 규제, 의료보험 개혁 등이 공화당의 반대에 막힌 데 이어 연방정부 셧다운까지 벌어졌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야당을 설득할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대신 의회의 간섭을 받지 않는 각종 행정명령으로 야당과 대치를 이어갔다. 이런 가운데 오바마 대통령은 시리아 아사드 정부에 대한 대책에 로버트 게이츠, 리언 패네타 전 국방장관은 물론 척 헤이글 국방장관까지 반발하며 ‘외로운 대통령’이 됐다.



일각에선 오바마 대통령의 리더십 위기가 흑인 대통령으로서 미국의 보수적인 백인 주류 사회를 돌파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민 개혁에 미국 남부의 백인 보수 유권층은 히스패닉의 침투를 부른다며 강경 반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제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과 타협과 대치 중 무엇을 선택할지를 놓고 기로에 섰다. 온실가스 규제, 최저임금 인상 등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 과제에 대해 공화당은 저지를 선언했던 만큼 긴장감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오바마 대통령이 막판 업적 만들기를 위해 대타협에 나설 수도 있다고 기대한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