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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진 수요일] 청춘리포트 - 가을에 떠난 젊은 날의 우상

중앙일보 2014.11.05 01:10 종합 16면 지면보기
쓸쓸한 마음으로 이 지면을 준비했다. 지난달 27일 우리 곁을 떠난 신해철 이야기다.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웅장한 음악당 하나가 무너진 듯한 막막함이 몰려왔다. 말하자면 그것은 우리가 아프게 건너온 청춘의 시간들이 느닷없이 끝나버린 허망함 같은 것이었다. 오늘(5일) 그의 시신이 화장될 거란 소식을 듣고서야, 겨우 그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일면식도 없는 어떤 이의 죽음에 지극한 슬픔을 느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이를테면 특정한 시기를 함께 통과해 온 연대감 같은 것일까.


당신은 내 청춘의 OST였다

 하필이면 늦가을이다. 우리 또래가 신해철의 죽음 앞에서 황망해할 때 선배 또래들은 같은 계절에 세상을 떠난 다른 이름들을 불러냈다. 지금의 30대가 신해철이라는 이름의 청춘을 공유한다면, 지금의 40대와 50대는 유재하와 김현식이라는 이름의 청춘을 함께 통과해온 세대다. 둘은 몇 해 간격을 두고 같은 날(11월 1일) 세상을 버렸다.



 오늘 청춘리포트는 서둘러 우리 곁을 떠나간 ‘청춘의 OST’를 재생하려 한다. 나와 팀원들은 저 세 명의 음악을 들으며 저들에게 띄우는 편지를 함께 적었다. 어떤 음악은 우리를 특정 시간, 특정 장소로 데려간다. 유재하와 김현식의 음악이 그랬고, 신해철의 음악이 그러할 것이다. 그들의 음악 속에서라면 누구라도 청춘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남기고 떠났지만 우리가 받은 것을 되돌려줄 길은 이제 없다.



정강현 청춘리포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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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 선배께.



 우선 호칭부터 정리해야겠습니다. 세간에 흔히 쓰는 말로 ‘마왕’이란 별칭도 있습니다만, 청춘리포트팀은 우리 마음대로 ‘선배’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당신을 떠올리면 곁에서 무심한 듯 시시콜콜 가르쳐주는 대학 선배의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선배는 1988년 대학가요제에서 ‘그대에게’란 곡으로 대상을 받으며 대중음악계에 들어왔지요. 이 음악은 확실히 대학생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것이어서 지금까지도 대학 축제마다 빠지지 않습니다.



 선배의 음악을 들으면 최소한 두 가지에 대해 깊게 고민하게 돼요. 우선은 ‘나’에 대해서. 청춘의 때에 우리는 누구나 이런 질문을 붙들게 되지요. ‘나는 누구인가.’ 선배는 1991년 발매된 솔로 2집에 ‘My Self’라는 타이틀을 붙였습니다. 그 앨범에 수록된 ‘나에게 쓰는 편지’는 이런 노랫말로 돼 있습니다.



 ‘난 잃어버린 나를 만나고 싶어/(…)/넌 아직도 너의 길을 두려워하고 있니.’ 이런 선배의 음악은 나와 마주하는 나를 만나게 했습니다.



 두 번째는 ‘우리’에 대해서. 언제부턴가 선배는 나를 넘어 우리에 대해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아픔들이 선배의 노래 속에 녹아들었습니다. 선배가 세상을 향해 독설을 쏟아낸 것도 우리의 문제들 때문이었죠.



 세상은 지금 선배의 사망 원인을 놓고 시끄럽습니다. 그것이 어떤 식으로 해결되든 선배가 다시 돌아올 순 없다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선배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 한 방송에서 꼭 선배 같은 말을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꿈을 이루면 모든 게 다 이뤄진 것처럼 생각되지만,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잃어버려서는 안 될 것도 있다.” 이 말이 마치 선배의 나지막한 노래처럼 들려서 가슴이 먹먹한 가을입니다.







김현식 선생님께.



 선생님이라 부르는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우리는 지금 요즘 20~30대의 입장에서 이 편지를 적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는 당신의 음악을 당대에 누렸던 세대는 아니에요. 초등학생이거나 그보다 더 어릴 때 형이나 오빠, 누나나 언니가 듣던 당신의 음악을 흘려 들었던 기억이 있는 정도지요. 하지만 이후 본격적으로 대중음악을 듣게 되면서 많은 뮤지션들이 당신을 “선생님”이라 부르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11월 초가 되면 들리던 당신을 추모하는 ‘사랑했어요’ ‘비처럼 음악처럼’ 같은 노래들도.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는 “땅 위에 가왕 조용필이 있었다면 땅 밑(언더그라운드)에는 가객 김현식이 있었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렇습니다. 선생님의 음악은 가객의 음악입니다. 결연한 예술가의 풍모가 선생님의 음악에 있습니다. 매끈하지 않고 탁한 선생님의 목소리는 그런 풍모를 더 풍성하게 했습니다. 1980년대 TV 출연을 거의 하지 않고도 선생님의 음악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주류에서 벗어나 있으면서도 주류를 넘어선 매혹적인 음악을 만들어낸 당신은, 어쩌면 성공보다는 실패에 가까운 삶을 견디고 있는 이 땅의 청춘들에게 꼭 필요한 선생님 같은 존재입니다. 선생님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긴 6집 앨범에는 이런 아름다운 노랫말로 된 음악이 실려 있습니다.



 ‘저 여린 가지 사이로 혼자인 날 느낄 때/이렇게 아픈 그대 기억이 날까/내 사랑 그대 내 곁에 있어줘.’(‘내 사랑 내 곁에’)



 선생님이 우리 곁에 살아 있다면 올해로 쉰여섯의 어른 모습일 겁니다. 그랬다면 우리는 또 얼마나 더 깊고 아름다운 음악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유재하 님께



 당신은 1987년 11월 1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교통사고였습니다. 겨우 스물다섯. 한 명민한 뮤지션이 그렇게 허망하게 사라졌습니다.



 당신이 세상에 남긴 앨범은 단 한 장입니다. 평단도 대중도 당신의 음악에 감전됐다는 간증을 쏟아냈습니다. 어떤 치들은 당신의 단명 덕분에 앨범이 과한 대접을 받았다고 시비를 걸기도 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세상을 떠난 이후의 대중음악사가 저 시비의 무논리를 격파합니다.



 지금 대중음악계에는 당신의 음악에 신앙 고백을 하는 뮤지션들이 적지 않습니다. 제 음악의 뿌리가 당신에게 있다는 고백 말입니다. 당신의 이름을 딴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는 올해로 벌써 25회째입니다. 유희열·조규찬·이한철·스윗소로우 등 이 대회 출신 뮤지션이 적지 않습니다. 이들과 같은 ‘싱어 송 라이터’ 계보의 맨 앞에 당신의 이름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당신의 이름은 대중음악의 한 장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이른바 ‘한국식 발라드’라는 장르의 기원이 당신의 음악이라는 데 이견을 낼 뮤지션은 없을 것입니다.



 편지를 적으면서 청춘리포트팀에 당신이 세상을 떠날 때보다 어린 기자가 아무도 없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당신보다 더 어른인 채로 당신의 음악에서 많은 것을 얻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당신의 노랫말 덕분인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노래.



 ‘다시 못 올 지난날을 난 꾸밈없이 영원히 간직하리/그리움을 가득 안은 채 가버린 지난날.’(‘지난날’)



 당신의 삶은 지난날에 사라졌지만 당신의 음악은 다가올 날에 영원할 것입니다. 당신의 음악들로 청춘의 시기를 견뎌냈듯, 당신의 음악 속에서 당신의 없음을 견뎌 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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