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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의 늪인가, 기회인가? 대한민국 병영문화의 명암

온라인 중앙일보 2014.11.05 00:05
지난 8월 6일 충남 논산시 연무읍 육군훈련소에서 5주 기초 군사훈련을 마친 장병들이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료식에 참여하고 있다.



[월간중앙] 기획특집 - 상명하복 문화가 창의성 억누른다는 평가도 있지만 국가 번영의 1등공신이라는 평가도 비등… 비계급적 원리로 운용되는 이스라엘처럼 병영문화의 긍정적 에너지 재점화해야

일선 사단장과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지낸 차기문 평택 대 교수는 요즘 얼굴을 들고 다니기가 민망하다. 육사 23기로 임관해 중장으로 예편한 그는 평생을 군인으로 살아 왔다. 예편 후에도 국민과 군에 대한 무한한 책임을 진 당당한 군인으로 살아온 점을 늘 자랑스럽게 여겨온 그다. 그런데 요즘은 어디 가서 군 출신이라는 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럽다는 것이다. 최근 22사단 임 병장 총기난사 사건과 28사단 윤 일병 폭행 사망사건, 여군을 성추행한 일선 사단장의 구속 등이 연달아 벌어지면서 군에 대한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진 탓이다.



군대생활은 집단으로 이뤄지다 보니 무사안일이 지배하고 그릇된 분위기에 휩쓸리기 쉽다. 경직된 부대일수록 권위주의와 이분법적 사고가 지배한다. 사병들 사이에서는 불법 구타와 가혹행위가 자행된다. 이런 환경에서는 구성원들의 사고가 정지되고 모든 행동도 맹목적으로 흐르게 된다. 총기 난사나 폭행 사망사건은 이런 그릇된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군을 보는 국민의 시선이 차갑게 얼어붙을 만하다. 차 교수는 “전에 없이 군에 대한 여론이 악화된 것 같아 걱정”이라며 “이참에 일과 생활이 확실히 구분되는 병영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그는 방법론으로 “사병들에게 일과 중에는 엄정한 군기를 세우고 일과 후에는 자유스러운 개인 생활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문을 내놓았다.



차 교수는 최근 일련의 사건·사고가 난 뒤 군 당국이 내놓은 ‘후속조치’에 대해서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정부는 윤 일병 폭행 사망 및 총기난사 사건의 책임을 물어 육군참모총장을 경질했고, 후임 총장은 입대 동기끼리 분대와 소대를 구성하는 방안 등을 시사했다. 차 교수는 “과거에는 유사한 사건 사고가 더 많았다”면서 총장 경질조치에는 수긍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나아가 동기 소대, 동기 내무반을 만 들겠다는 국방부의 입장에 대해서도 “군대는 계급별 병력이 골고루 포진해야 한다”면서 “지금 내놓는 동기 소대, 동기 내무반은 전력에 공백을 가져올 수 있는 잘못된 발상”이라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과거에는 보도되지 않았던 군대의 일들이 요즘 들어서는 더 많이 공개된다. 그것은 바람직하지만 드러난 문제점을 고친다고 하면서 안보를 책임지는 군대의 근간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



군 당국, 대책 없이 임기응변으로 상황 모면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하는 긴급 전군 지휘관 회의가 8월 13일 서울 용산 국방부에서 열렸다. 대통령의 전군 지휘관 회의 주재는 2010년 천안함 폭침사고 이후 처음이다.




이는 비단 차 교수만의 생각은 아닌 듯하다. 군 출신의 한 원로급 인사는 일련의 정부 대책이 변죽만 울리고 문제의 핵심은 피해간다고 지적했다. 그는 “반(反)인권적이고 엽기적인 행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부대 등은 해체라는 특단의 조치를 불사하겠다”는 김요환 육군참모총장의 발언에 혀를 찼다. 이 원로는 “한국의 부대는 저마다 역사와 역할을 가지고 있어 함부로 없애고 할 대상이 아니다”면서 “군 수뇌부의 부대해체 발언은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임기응변식 발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탄식했다.



전임 참모총장 경질에 대해서도 근시안적인 처방이라고 질책했다. 이 원로는 “일선 소총병 한 명의 사고로 참모총장이 물러서는 나라는 지구상에 한국 말고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참모총장 경질은 오랜 세월 참모총장을 길러내기 위해 투자한 국가 예산을 한 방에 날려버리는 행위와도 같다고 그는 말했다. “정부와 군 당국이 격앙된 국민여론을 달래는 데에만 급급하다. 빗발치는 비판에 군 수뇌부의 대 응도 일관되지 못하고 여론에 따라 춤을 추는 인상을 줬다. 대책이라는 게 걱정을 더하게 한다”며 그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군의 무능을 탓함에 앞서 언론의 비판과 정치권의 압력 등 격앙된 여론 공세가 문제 해결을 어렵고 더디게 한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원태재 전 국방부 대변인은 “병영문제가 발생 할 때마다 우리 군은 ‘획기적인 방안’을 통해 ‘발본색원’하겠다고 다짐해왔다”면서 “하지만 과도하고 성급한 요구에 ‘뾰족한 대책’ 없이 임기응변으로 상황을 모면하는 식이었다”고 했다. 60만 명에 달하는 군대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사고를 근본적으로 없애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원 전 대변인은 “어느 장관이나 참모총장도 임기중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서 “다만 제도적 장치 마련과 철저한 시행, 효과적이고도 끊임없는 교육을 통해 사고 빈도를 줄여나가는 방법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요즘 한국 군대는 말 그대로 동네북 신세가 됐다. 국민의 눈총도 쏟아지지만 정치권에서도 매를 맞는 신세다. 각종 가혹행위 등 인권의 사각지대라는 불명예에서부터 혐오와 거부의 대상으로까지 전락해가는 느낌을 준다.



국군의 생일이라 할 10월 1일에는 대통령의 쓴소리를 들어 야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군인에게 기강은 생명과도 같은 것”이라며 “진정한 군의 기강은 전우의 인격을 존중하고, 인권이 보장되는 병영을 만드는 데서 출발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기념사와 경축연에서 행한 박 대통령의 발언 요지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이제 우리 군은 과거의 잘못된 관행과 적폐를 바로 잡아서 새로운 정예강군으로 거듭나야 한다. 병영문화 혁신은 단순히 사건·사고를 예방하는 차원이 아니다. 구성원의 의식과 제도, 시설 등 모든 요소를 완벽하게 변화시켜 군의 하부구조를 튼튼하게 하고, 궁극적으로 충성심과 애국심으로 단결된 선진 정예강군을 육성해 나가기 위한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단면만 봐서는 한국의 군대와 병영문화는 참으로 암울한 지경에 처해 있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우리 군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던 시절이 있었다. 군대가 갖는 순기능은 국가 경제와 근대화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이는 과거의 기록들이 증언한다.



군에서 양성된 기술인력은 개발도상국 대한민국의 산업의 기초를 다지는데 큰 기여를 했다. 손수태 전 육군3사관학교장은 1998년 저서 <선진 민주주의 국가의 군대화 사회>에서 1960년대 이후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이뤄낸 댐 건설 공사를 비롯한 각종 토목전기공사, 간척사업, 농촌 기계화, 항공, 자동차 산업 등 전 분야에서 군이 배출한 기술인력이 주력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그는 “군 기술교육은 전장에서 전투효율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국민 경제 발전에도 긴요한 산업 기술을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병영이 청년에게 기회의 땅이던 시절



1970년대 한국 근로자들이 건설한 바레인 아랍 수리조선소 전경. 군대식 노무관리가 공기(工期)를 단축하고 사고를 줄이는 효과를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故) 이한빈 전 부총리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마무리될 즈음인 1968년 펴낸 저서 <사회변동과 행정(Korea: Time, Change and Administration)>에서 “군대식 제도 및 경영의 도입이 국가의 정책입안과 수행 능력을 크게 제고 시켰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한 결과 한국 경제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는 것이 이 전 부총리의 지론이다.



한국 사회에서 군대는 개인에게도 도약의 기회를 주기도 한다. 변변한 산업기반 시설이 없던 1960년대의 군대는 젊은이들로 하여금 기계·건설·통신· 항공·함정 등 최신 장비와 선진 기술을 접하는 교육기관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1966년까지만 해도 해외 유학생 수에서 군이 민간을 앞질렀다. 그전까지는 군은 거의 매년 1천 명 정도의 인재를 선발해 해외유학을 시켰고, 그 비중이 전체 유학생 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선진국의 군사교육기관과 기술학교에 유학하는 인력들이었다. 병영이 한국의 청년들에게 기회의 땅이 됐던 시절이다.



해외 진출 붐이 일던 1970년대에는 기업들이 장교 출신을 앞다퉈 데려가고자 했다. 리더십·책임감·애사심이 뛰어나고, 조직 적응도 빠르다는 이유에서다. 기업들은 ROTC(학생군사훈련단) 출신 장교전역 예정자들을 대상으로 특별채용 제도를 시행하기도 했다. 특히 건설 현장은 특히 남성 중심의 문화가 지배한다. 군에서 사병들을 인솔하면서 부대껴본 장교 출신이야말로 이들 기업이 가장 필요로 하는 관리 요원이었다.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장교 대상 특별채용이 최근 부활하는 것도 이 같은 병영문화 경쟁력을 인정한 것이라는 평가다.



군대는 구성원에게 엄격한 규율과 절제, 집단 생활을 요구한다. 일사불란한 명령 계통과 효율성이 지배하는 세계는 합리적 토론과 다원적 가치관이 숨쉴 공간을 좀처럼 허용하지 않는다. 또 합당한 절차와 과정도 효율성이라는 미명아래 억압당하기 쉽다. 그래서 상명하복 문화가 창의성을 억누르고 부정과 부패의 온상이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이 같은 가치가 한국 기업이 후발 주자로 세계 시장에 진출할 때는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정공법이 막히면 변칙으로 가야 하는데 병영문화가 거기에 한몫을 했다는 말이다. 1970∼80년대 중동 건설붐이 일 때도 그런 경우다. 바레인 아랍 수리조선소 공사는 현대건설 이 중동지역에서 수행한 첫 번째 대규모 사업으로 70년대 중동 건설붐의 신호탄과도 같았다. 현대건설 전무를 지낸 박규직 경기학원 이사장은 1973년 바레인 조선소 사업 선발대를 이끌고 열사의 땅에 첫 발을 내디뎠던 인물이다.



ROTC 1기 장교 출신인 박 이사장은 “당시 내가 아는 조직 이론이란 게 군대 조직이론밖에 없었다”고 돌이켰다. 그때는 근로자들의 먹고 자는 방식이 병영과 다를바 없었다. 내무반 같은 숙소를 공동으로 쓰고, 단체 급식으로 끼니를 때웠다. 모든 게 집단행동으로 돌아갔다. 군대식 노무관리에 근로자들도 잘 따라와줬다. 대부분의 근로자가 군대를 경험한 젊은이들이라 열악한 작업 환경과 빡빡한 작업공정에서도 큰 불평이 나오지 않았다고 박 이사장은 전했다.



“그 더운 나라에서 우리 근로자들은 군대식으로 일도 뚝딱 해내고 야간 작업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열사의 나라에서 공기(工期)를 단축하면서도 사고발생률은 다른 사업장보다 훨씬 낮았다. 군대 문화가 주는 규율의 힘이다. 바레인 현지 사람들이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는 경찰이 우리를 감시하는 일까지 있었다. 이런 조직이라면 무기만 손에 쥐어지면 언제든지 무장 세력으로 돌변하리라고 우려한 듯했다.”



중동 건설붐 당시 현장 책임자 중 상당수는 장교 출신으로 채워졌다. 정세가 불안한 중동에서는 돌발사태도 잦았다. 전쟁이 일어나거나 종교 간 분쟁이 터지면 위험 요소를 제거하면서 인력을 안전 지대로 대피시켜야 한다.이런 일은 군대에서 철수 루트와 적의 가상 접근로 판단 훈련을 받은 장교 출신이 적임자다. 박 이사장은 “중동 건설신화는 장교 출신들의 리더십과 근로자들의 인내가 맞물려 빚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단언했다.



생산라인 군대 편제로 바꿔 흑자 일군 경영자



대우그룹의 김우중 전 회장도 아프리카에서 세계경영의 첫 단추를 꿰었다. 그는 최근 발간된 대화록에서 선진국은 시스템이 이미 갖춰져 있고, 신흥시장은 일본, 화교 자본이 진을 치고 있어 진입이 어려웠다고 했다. 하지만 아프리카 같은 곳은 장벽이 없었다. 선진국 사람들은 몸이 고급화돼서 어려운 걸 못 참고, 먼저 들어간 일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군대에서 단련되고 헝그리정신으로 무장한 한국인이었기에 아프리카에서도 버틸 수 있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장교시절의 경험이 막다른 골목에서 유용하게 쓰인 사례도 있다. ROTC 9회 출신인 이재찬 씨는 중국에서 제조업체 경영자로서 현지 직원들의 생산라인에 병영문화를 도입해 어려워진 회사를 흑자경영으로 되살린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는 1997년 6월, 한국 기업이 중국 청두에 설립한 신발공장의 CEO로 취임했다. 처우에 불만을 품고 파업을 일으킨 1만 명에 가까운 중국인 근로자들로 인해 공장이 존폐의 기로에 선 시점이었다. 월 75만 켤레를 생산하던 라인에서 고작 25만 켤레를 생산하게 돼 한 해 적자가 1천만 달러에 육박했다.



중국 근로자들은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을 낯설어 했을 뿐만 아니라 기율에도 익숙지 않았다. 근로자 대부분은 기숙사 생활을 했다. 정리정돈이 생활화되지 않은 데다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는 통에 기숙사는 불결하기 짝이 없었다. 공장은 공장대로 파업의 분위기를 타면서 어수선하게 돌아갔다. 이 씨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공장 근로자 1만 명 편제를 군대식으로 바꾸는 작업에 돌입했다.



기숙사를 1개 사단으로 간주하고 대대장·중대장·소대장·내무반장을 임명하듯 동장-권역장-층장-방장으로 서열화 해 직책을 부여했다. 그리고 단위별로 청결 경쟁을 붙여 우수 팀에는 공용 TV 등을 제공하는 등 인센티브를 내걸었다. 이 과정에서 직원들 사이에 팀워크가 생겨나고 경쟁심에도 불이 붙었다. 정리정돈과 역할분담도 가능해졌다. 지방 출신 근로자의 부모를 초청해 공장의 생활 환경을 직접 보여주는 등 근로자들에게 회사의 소속감과 안정감을 불어넣었다. 기숙사 방을 배정할 때도 같은 생산 라인의 동료들을 한데 묶어 공동체 의식을 높였다. 같은 공정에 있는 근로자들이 기숙사와 생산 라인에서 함께 호흡하게 됨으로써 업무 효율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고 이씨는 말한다. 24시간 함께 생활하는 군대 모델을 연상케 한다. 6개월이 지나자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공장은 흑자로 돌아섰고, 그 뒤로 매년 1천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내는 우량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이씨는 “옆에 있는 동료와 생사고락을 같이한다는 일체감을 불어넣는 데 주안점을 뒀다”면서 “군대 장교로 복무한 경험이 기업경영에도 큰 밑천이 됐다”고 말했다.



병영 문화의 순기능이 경제의 자극제가 된다는 면에서는 이스라엘이 한국과 여러모로 닮았다. 이스라엘 병영문화는 한국보다 더 세련되게 국가 경영과 경제 성장에 녹아든다는 점에서 타산지석이 된다. 이스라엘의 도전과 혁신 DNA를 규명한 <창업국가(START -UP NATION)>(댄 세노, 솔 싱어저)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안보 위기에 노출된 이스라엘 군대가 어떻게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슬람 국가로 둘러싸인 이스라엘은 남녀 공히 병역 의무를 진다. 남자는 3년, 여자는 2년을 복무한다. 이스라엘 방위군(IDF, Israel Defense Forces)의 주력은 예비군이다. 정규군만으로는 주변의 침략을 막을 수 없기에 의무 복무를 마친 후 모든 군인은 예비군으로 등록된다. 남자는 40~45세까지 매년 1개월가량 복무한다. 예비군에는 상하 서열을 두지 않는다. 일등병이 장성에게도 “지금 잘못하고 있다”고 직언할 수 있는 구조다. 택시 운전자가 백만장자를 거리낌없이 대하고, 20대 청년이 삼촌뻘 되는 어른을 훈련시킬 때는 자연스럽게 연공서열이 희석된다.



하버드·예일대 필적하는 이스라엘 엘리트 부대



지중해에서 실시된 합동군사훈련 중 자국의 군함 사르- 5호에 탑승한 이스라엘 군인들. 이스라엘은 군대의 혁신이 사회 전반의 혁신을 이끈다.




군대는 수평적 문화와 권한을 분산하는 구조다. 사병의 재량권을 확대하고자 장교 수를 최소화한다. 장교를 줄여 말단 사병에게까지 책임감을 부여하는 것이다. 군대라고 해서 무조건 복종하기보다는 상급자의 의견에 아무런 제약 없이 반론하고 토론하는 문화가 일반화돼 있다. 그런데도 작전 수행에서는 현장에서 판단하는 지휘관에게 권한을 부여하기 때문에 실패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들은 이스라엘 방위군(IDF)의 엘리트부대에 선발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치른다.



몇몇 정보부대와 특수부대는 이스라엘 일류 대학의 입학만큼이나 입대 문이 좁다. 이스라엘은 최상위 군 엘리트 군대 자원을 모집할 때는 능력·적성·심리 검사는 물론이고 혹독하고 엄격한 정신적, 육체적 시험을 치른다. 엘리트 부대일수록 일반적인 대학 수준을 뛰어넘는 학문적 훈련을 실시하며 임무 수행자로서 리더십과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도록 한다. 방법도 최소한의 지시사항과 함께 끊임없는 미션을 줘서 과업을 스스로 달성케 한다. 이스라엘 군대는 기업 실무 교육장 역할을 하는 셈이다.



기업은 엘리트 부대에서 복무한 이들에게서 혁신, 융통성, 수평적 마인드를 기대한다. 이스라엘에서는 군사 경력이 학문 경력보다 더 중요시되기도 한다. 구직자 인터뷰에서 빠지지 않 는 것이 ‘어느 부대에서 근무했느냐’는 질문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심지어 하버드·예일·프린스턴 등과 견줄 수 있는 곳은 대학이 아니라 엘리트 부대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스라엘 구직 전단과 인터넷 모집 공고를 보면 ‘????부대 출신들을 원함’이라는 문구가 곧잘 등장하는 이유다. 엘리트 정보 부대로 꼽히는 8200부대는 전국적인 친목회를 가지고 있으며, 진취적인 비즈니스 네트워킹을 형성해 경쟁력을 인정받는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비군 제도를 통해서도 다양한 친구와 인연을 맺는다. “야영장에서 함께 자고, 맛 없는 군급식을 먹고 며칠 동안 샤워도 못한 채 함께 지내면서 환경과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 대등한 관계를 쌓게 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회가 계층 차별이 덜한 것도 바로 이 예비군 제도의 영향이라는 게 <창업국가>의 결론이다. 이런 서열 타파는 학교와 회의실 등 사회 곳곳으로 번져 나갔다. “국가 혁신의 한 예일 뿐만 아니라 다른 혁신을 가져오는 촉매 역할을 한다”고 <창업국가>의 저자는 설명한다. 개인과 군대, 기업이 부가가치를 높이는 선순환 구조를 이룬다.



병영문화 폐쇄성 걷어내는 대대적인 수술



한국은 이스라엘과 또 다른 의미에서 자랑스런 전통을 가진 나라다. 단기간 내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냈다. 개발연대의 청년들은 병영생활을 통해 단련되고 산업화 역군으로 거듭났다. 젊은 신세대들도 군 복무 2년을 허송세월할 게 아니라 보다 성숙해지고 뭔가를 배워나가는 시간과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런 여건이 하나둘씩 갖춰지고 있다. 조명을 잘 받지 않았을 뿐이지 군은 병사 복지차원에서 자기 능력계발 기회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개인 노력 여하에 따라 군 복무가 새로운 기회가 된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군 복무 중 원격 강좌를 수강하면 학점을 인정해주는 ‘원격 강좌 학점 이수제에 참여하는 대학이 대폭 증가한다. 2007년 참여대학 6개에서 지난해에는 99개 대학으로 늘어났다. 올해도 10개 대학이 추가돼 총 109개 대학에 이를 전망이다. 학점 취득 사병도 2007년 135명에서 지난해에는 1만 297명으로 크게 늘었다. 전체 사병(43만 8천 명)의 2%를 넘는 규모로 50명 중 1명이 온라인 학점을 취득한다는 말이다.



병영 내에 PC 보급이 획기적으로 증가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2005년 7천 대 선에 그쳤던 PC가 2014년에는 4만 8600 대로 증가했다. 병사 71명에 한 대꼴로 돌아가던 PC가 올해엔 9명 중 한 대꼴로 흔하다. 그러다 보니 기술 분야에 복무 하는 장교·부사관·사병 중 국가기술자격증을 취득하는 인원도 크게 늘어났다. 2003년 7849명이던 취득 인원이 2012 년엔 1만 7905명으로 두 배 이상 불어났다. 지난 8월 출범한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의 김선호 준장은 “군 복무 기간 중 자신의 적성과 능력을 개발해 제대 후 사회에 연착륙하는 사례가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병영문화혁신위(위원장 심대평)는 이와 더불어 병영문화 폐쇄성을 걷어내는 대대적인 수술을 주도한다. 인권이 존중되고, 법과 규정을 준수하여 국민과 소통하는 병영문화를 만든다는 취지에서다.



그 첫 단추로 8월 25일 혁신위는 개선이 필요한 우선조치 과제 4가지를 발표했다. 부대와 부모, 병사 간 24시간 소통을 보장키로 하고, 사병의 휴가를 자율적으로 선택하도록 했다. 또 과밀하고 열악한 생활관을 개선함과 동시에 일반전초(GOP) 근무기간 동안 제한을 두었던 면회를 허용했다. 주말로만 한정됐던 일반 부대의 면회 시간도 평일 일과 후로 확대해 제도 개선을 추진하도록 했다. 이런 조치들이 하나둘씩 성과를 낸다면 이스라엘마냥 혁신적인 기업가 정신이 병영생활에서 태동하는 사례가 더욱 늘어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병영문화혁신위의 활동이 더욱 주목받는다.



박성현 월간중앙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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