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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의 마이웨이] 일어 못해 야유받던 ‘알바’ 가수, 일본 무대 신데렐라로

중앙선데이 2014.11.02 01:45 399호 24면 지면보기
서울의 김미경 대표 사무실에서 일본에서의 성공담을 들려주고 있는 김지현씨. [사진작가 김도형]
살다 보면 알게 된다. ‘받아들이는 힘’이 이겨내는 힘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인생은 그야말로 랜덤(random)이니까. 당장 어떤 일이 무작위로 내게 떨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을 수도 있고,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가난의 늪에 빠질 수도 있다. 언제 어디서 불어올지 모르는 고난의 바람을 맞는 우리의 자세는 제각각이다. 두 손바닥으로 바람을 막으려는 이도 있고, 태풍을 향해 주먹을 뻗는 이도 있다. 누군가는 필사적으로 숨을 곳을 찾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가만히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읽고 몸을 맡긴다. 나를 밀어내는 역풍을 뒤에서 밀어주는 순풍으로 바꿔버리는 것이다.

<8>일본서 성공한 뮤지컬 배우 김지현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뮤지컬 배우 김지현(41)씨. 그녀 역시 바람을 타는 데 도가 튼 이다. 인생의 굵직굵직한 마디마다 선택이라는 것을 별로 해본 적이 없다. 운명의 거센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맞서는 대신 온몸으로 감싸 안고 읽어낼 수 있을 때까지 버텼다.

‘라이언킹’ 800회 공연 … 구름팬 몰고 다녀
어렸을 적 딸만 넷인 ‘딸 부잣집’ 둘째였던 그녀의 집은 실제로도 부잣집이었다. 아버지는 모 일간지 LA 특파원이었고 압구정동에서 미용실을 했던 어머니는 미용협회 부회장을 할 정도로 재력가였다. 어렸을 때부터 예술을 사랑했던 부모 덕분에 발레·피아노·가야금·장구·무용 등을 배우느라 코피가 날 정도였다. 특히 음악을 사랑했던 아버지는 다섯 살 난 딸에게 매일같이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여줬다. 어린 지현은 칭찬받는 재미에 음악에 대사를 붙여 말하곤 했다. 10여 년 후 그녀는 서울예대 연극과에 들어갔고 뮤지컬 배우가 됐다. ‘명성황후’ 오디션에도 합격하고, 이제 막 신인배우로 주목 받기 시작하던 그때였다. 운명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기 시작한 것은.

아버지가 시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막대한 빚을 지고 낙선했다. 선거에 필요한 자금을 책임졌던 어머니는 일본으로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어를 못하고 비자도 없는 어머니를 혼자 놔둘 수 없었던 지현씨는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녀 역시 일본어를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졸지에 가장이 된 그녀는 결국 엄마의 지인이 경영하는 클럽에서 노래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저는 그 전까지 술 먹는 사람을 제일 싫어했는데 갑자기 클럽에서 노래를 하게 된 거예요. 일본어도 못하니까 팝송만 불렀는데 일본 손님들이 호텔에서나 부르라며 야유하기도 했죠. 덕분에 생전 불러보지도 않은 가요를 엄청 연습해야 했어요. 만약 그곳에서 노래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제 음악 장르의 스케일이 매우 작았을 거예요.”

그 무렵, 우연히 일본의 극단 ‘사계’ 오디션을 보게 됐다. 다른 참가자들의 노래가 몇 소절 만에 뚝뚝 끊길 때, 유독 지현씨만 세 곡이나 부를 수 있었다. 결국 ‘1800대 1’이라는 무시무시한 경쟁을 뚫고 한국인 최초로 정식 단원이 됐다. 나중에 들은 합격 이유는 그녀의 독특한 음색 덕분이었다. 대부분 성악 전공 출신인 지원자들 사이에서 허스키한 육성으로 노래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러나 뮤지컬 배우라는 본업으로 돌아가 기뻐했던 것도 잠시, 지현씨는 살벌한 폭풍과 정면으로 맞닥뜨려야 했다. 올해로 창단 62년을 맞은 극단 사계는 소속 배우만 700여 명에 달하고 10개 이상의 뮤지컬을 전용극장에 올리는 아시아 최대 극단이다. 그곳에서 그녀가 입단하자마자 처음으로 맡은 역할은 ‘캣츠’의 여주인공 그리자벨라. 당장 익숙지 않은 일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것부터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게다가 특유의 텃세에 생소한 문화 차이도 그녀를 힘들게 했다.

“그리자벨라 역은 혼자 분장실에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럴 때면 다른 배우들의 필요한 부분을 챙겨주는 게 당연한 문화였던 거예요. 그런데 저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가만히 있었더니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나중에 회의에까지 올라가더라고요. 그때는 아무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죠.”

무엇보다 그녀를 흔들어놓은 것은 노래에 대한 부담감이었다. 그녀가 부르는 ‘메모리(memory)’는 노래 한 곡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 ‘캣츠’의 대표곡이었기 때문이다. 하도 연습을 많이 해 목 근육이 기억할 정도였지만 스물다섯의 그녀가 인생의 희로애락이 진하게 담긴 곡을 소화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같은 노래를 매일 2년 이상 부르면서 기계가 되는 느낌에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았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는 대신 가사의 의미를 분석하는 데 매달렸다. 노래에 담긴 향기와 맛, 냄새까지 몸으로 느끼고 부를 수 있을 때까지. 그렇게 완성된 김지현의 ‘메모리’는 수많은 일본 사람의 가슴에 꽂혔다. 가장 힘들게 했던 노래가 결국 그녀를 빛내 준 것이다. 그렇게 지현씨는 ‘캣츠’ 공연만 700회, ‘라이언킹’에서 라피키 역으로 800회 공연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사계의 간판 여배우가 됐다. 공연 때마다 열성팬들을 구름같이 몰고 다닐 정도였다.

당시 맡은 배역들은 얄궂게도 ‘저 역만은 피하고 싶다’라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때로는 한 주 동안 하루에 한 작품씩 네 작품에 동시 출연하라는 무리한 요구를 받기도 했다. 나름대로 하소연도 해봤지만 사계에서 대표의 지시는 곧 ‘법’이었다. 열정과 의욕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상황을 수없이 맞닥뜨린 것이다. 상당수의 사람은 이럴 때 ‘욕 먹지 않을 만큼 적당히’를 택한다. 그러나 지현씨의 놀라운 점은 그때마다 책임감에 창의성까지 보탠다는 점이다. ‘어떻게 하면 이 일을 더 재미있게 할까’를 신나게 연구한다. 남들이 요구하지 않는 수준의 노력까지 추가시키는 것이다. 1년에 200회 이상 공연으로 10년 동안 여섯 차례나 성대결절이 오고, 스트레스에 원형탈모와 위궤양을 달고 산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임계점을 넘어가는 순간 남과 다른 차별성이 생긴다. 이는 고스란히 그녀의 소중한 자산이 됐다. ‘적당히’는 그 순간은 편하지만 막상 조직을 나오면 갖고 나올 게 없다.

“너무 싫어, 나는 할 수 없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에게 온 이 사건이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했어요. 때로는 ‘나밖에 할 수 없으니까’라는 자부심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시련을 통해 겸손해지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기도 했지요. 뜻을 이해하면 제가 스스로 길을 찾더라고요. 결과적으로 그 수많았던 싫은 일 덕분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일본에 가스펠 힐링센터 세우는 게 꿈
그녀는 랜덤으로 오는 인생의 폭풍을 해석하는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남들이 거부하고 몸부림칠 때 그녀는 오히려 끌어안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조용히 잠재웠다. 그 힘의 대부분은 신앙이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지현씨는 고난을 하나님의 뜻으로 해석하고 이면에 숨겨진 희망을 기어이 찾아냈다. 사람은 누구나 어딘가에서 폭풍을 해석하는 힘을 빌려야 한다. 기왕이면 바깥의 멘토나 점집이 아니라 내 마음에서 가져오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그녀는 성숙한 신앙인으로서 마음의 힘을 잘 활용해 온 것 같다.

지현씨는 사계에서 나온 뒤 일본과 한국의 무대에서 활동함과 동시에 일본 내 가스펠 합창단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감정을 억누르는 게 일상인 일본인들이 가스펠을 부르면서 우울증을 극복해가는 경우가 적지 않단다. 더 나아가 그녀의 꿈은 일본에 ‘가스펠 힐링센터’를 만드는 것이다. 노래는 물론 요가·카운슬링·댄스까지 뮤지컬 배우로서 갈고 닦은 모든 것으로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고 싶다는 그녀. 가을바람이 스쳐가는 여배우의 뒷모습은 여전히 아름답기만 하다.


김미경 더블유인사이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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