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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의 'Big Questions'] 야성과 바꾼 먹이·잠자리 … 가축이 된 동물은 행복할까

중앙선데이 2014.11.02 02:00 399호 25면 지면보기
네덜란드의 화가 피터 에르젠(Pieter Aertsen)의 1551년 작품. ‘도살장’
“5m 정도 너비의 미끄럼틀로 소들이 밀려 들어왔다. 끝없이 들어오는 동물들의 광경은 신기하기까지 했다. 곧 벌어질 자신들의 운명을 모르는, 죽음의 강 같은 그런 모습 말이다. …다리가 부러지거나 배가 찢어진 소는 물론이고 이미 죽은 소들도 섞여 있었다. 어떻게 죽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병든 소도 마구 도살한다. 썩은 냄새를 없애려고 화학약품을 쓴다. …쥐떼가 득실거리며 쥐약과 쥐똥이 널려 있다. 쥐도, 쥐약도, 쥐똥도 고깃덩어리에 쓸려 가공기계로 빨려 들어간다.”

<33> 인간과 가축

미국의 기자이자 소설가였던 업턴 싱클레어(Upton Sinclair)의 유명 소설 『정글』에 등장하는 도축공장 장면이다. 1906년 미국에서 출판된 『정글』은 충격 그 자체였다. 비인간적이고 비위생적인 조건 아래 일해야만 하는 이주 노동자들의 삶을 그리려 했던 싱클레어. 사회주의자로서 그는 자본의 행패, 노동자 탄압, 뭐 그런 걸 폭로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이 가져온 결과는 뜻밖이었다. 영국 보수당 정치인이자 나중에 총리가 된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은 극찬의 서평을 썼다. 당시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는 작가를 백악관으로 초대하기까지 했다. 책이 출판된 지 4개월 만에 식품의약품위생법과 육류검역법이 제정됐다.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식품의약국(FDA)이 설립됐다. 하지만 막상 싱클레어 본인은 절망하며 말한다.

대중의 머리를 자극하고 싶었는데, 결국 대중의 비위만 건드렸다고. 자신이 원하던 건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었는데, 결국 스테이크의 품질만 높이게 됐다고.

오록스 무리. 약 1만7000년 전 그려진 라스코(Lascaux) 동굴의 벽화.
동굴 벽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오록스
노동자의 삶, 스테이크의 품질. 사회주의 혁명, 보수당 정치인. 뭐 다 좋다. 그런데 막상 쥐똥과 함께 가공기계로 빨려 들어간 장본인은 소들이다. 쥐똥과 함께 가공되면 분노하지만,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깔끔한 미끄럼틀에 밀려 비명도 아픔도 없이 최고급 고기로 재탄생하면 열광하는 우리. 이제는 더 이상 우리 얘기만이 아닌, ‘그들’의 입장에서도 한 번쯤 서 볼 때다.

성은 ‘보스’요, 이름은 ‘타우’. 보스 타우루스(Bos Taurus). 소·황소·젖소·송아지·불고기·등심·안심의 본명이다. 그들은 언제부터 햄버거 빵 사이의 패티로 변신한 것일까?

현재 지구에 살고 있는 13억 마리 소 대부분은 1만 년 전 터키 동남쪽 지역에서 길들여진 소들의 후손이라고 한다. 소 유전자의 다양성을 고려하면 처음 길들여진 소는 많아야 80마리 정도였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 오늘날 ‘이슬람국가’(IS)라 불리는 원리주의 이슬람 테러단들이 인질의 목을 잘라 처형하는 바로 그곳에서 인류의 조상들은 길들여진 소의 목을 자르기 시작했다. 소의 가축화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오록스’(Aurochs)라 불리는 소의 조상. 그들은 거칠고 강했다. 3m 길이에 180㎝의 신장. 그들은 석기시대 동굴 벽화에 단골로 등장할 정도로 인간의 로망이며 꿈이며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송아지 가죽으로 만든 최고급 양피지에 쓰인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 영국의 대헌장, 1225년 버전)
정확히 누가, 어떻게 사나운 오록스들의 목에 쟁기를 채웠으며 젖을 짜고 가죽을 벗겨 옷을 만들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고고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신석기시대 첫 농부들의 업적이라고 가설해 볼 수 있다. 가축화된 소는 ‘대박’ 그 자체였다. 수백㎏의 고기뿐만이 아니었다. 맨손으로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물을 길러야 했던 농부에게 트럭과 트랙터를 능가하는 소의 힘은 하늘에서 내린 선물 같았을 것이다. 거기다 매일 수십㎏씩 만들어지는 거름. 처음엔 우연한 발견이었을 것이다. 소의 배설물이 고여 있는 땅에서 더 많고, 더 큰 곡식이 자란다는 사실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위대한’ 발견. 송아지들이 마시는 엄마소의 젖을 인간 성인도 소화해낼 수 있다는 사실. 모든 인간이 처음부터 우유를 마실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선천성 유당불내증(Lactose intolerance). 우유의 탄수화물인 유당(乳糖)을 소화시키기 위한 필수 효소(enzyme)인 락타아제(Lactase)의 생산이 인간의 몸에선 보통 젖을 떼는 순간부터 줄어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약 1만 년 전부터 락타아제 생산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인간이 늘기 시작한다. 소와 생활하고, 소의 젖을 먹기 시작한 인류에게 유전적 변화가 생겼다는 의미다.

맛있고 영양가 있는 소의 젖. 그러나 젖소는 출산 직후 동안만 우유를 만들어낸다. 결국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그날까지 젖소는 끝없이 임신해야만 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하나 생긴다. 바로 여전히 엄마의 젖을 먹으려는 송아지들의 존재다. 송아지가 있어야 어미는 우유를 만들지만 송아지가 다 마시면 인간은 마실 수 없다. 창조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유럽의 중세기 목동들은 갓 태어난 송아지를 죽여 고기는 먹고, 껍질에 지푸라기를 채워 다시 송아지 모양을 만든 후 어미 근처에 세워놓곤 했다. ‘살아 있는’ 자식을 위해 어미 소가 우유를 계속 열심히 만들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아프리카 수단(Sudan)에 거주하는 누어(Nuer)족은 지푸라기 송아지에 송아지 소변까지 뿌려 어미를 안심시키기도 한다. 송아지뿐이 아니다. 사하라 사막에 사는 투아렉(Tuareg)족은 새끼 낙타의 코와 입술을 칼로 잘라 더 이상 젖을 못 먹게 한다. 뉴기니 섬의 일부 사람들은 돼지의 코를 절단해 더 이상 도망가지도, 반항하지도 못하게 한다.

어젯밤 먹은 치킨은 티라노 공룡의 친척
태어나 평균 여섯 달 정도만 세상에 살아남을 수 있는 13억 마리의 소. 초원을 뛰어다니던 오록스의 후손들. 하지만 가축화돼 버린 그들의 유전자 어딘가에 여전히 남아 있을 본능. 차가운 바람을 얼굴로 느끼며 달리고, 친구들과 놀고, 암컷과 사랑하고, 무리의 두목이 되고 싶은 본능. 그러나 대부분의 소들은 태어난 직후 어미에게서 떨어져 겨우 자신의 몸 크기만 한 우리 안에서 산다. 앞으로도, 뒤로도,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움직일 수 없는. 그리고 어느 날. 드디어 발을 쭉 펴고 평생 처음 당당하게 걸을 수 있는 바로 그날. 소는 죽음의 강물을 타고 이유도 모른 채 도살장의 미끄럼틀을 타게 될 것이다. 살과 지방은 소시지와 비누가 되고, 가죽은 소파·구두로 재탄생한다. 그리고 가끔 갓 태어난 송아지의 잘 가공된 가죽은 최고급 양피지로 변신한다. 사나운 오록스 후손의 매끄러운 가죽에 겁 많고 나약한 영장류 한 마리의 후손은 펜과 잉크로 이렇게 쓰기 시작할 것이다. 행복은 절대적이며 누구나 행복할 권리를 가졌다고. 자유·생명·행복권을 빼앗아선 안 된다고….

‘Gallus gallus domesticus’란 거창한 이름을 가진 평범한 닭. 그들의 사연 역시 소의 얘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들닭’이라 불리는 꿩과(Phasianidae) 소속 동물들이 길들여져 만들어진 오늘날의 닭. 약 8000년 전 동남아시아에서 가축으로 키워지기 시작한 그들의 수는 압도적이다. 현재 지구엔 약 200억 마리의 닭이 살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인간이 준비한 좁은 철장 안에서 인간을 위해 알을 낳고, 인간이 사랑하는 치킨으로 변신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들의 먼 조상이 누구였던가! 2003년 미국 몬태나주에서 발견된 티라노사우루스(Tyrannosaurus) 공룡의 거대한 다리 뼈. 다른 화석들과 달리 공룡의 다리 뼈에선 소수의 콜라겐 섬유를 얻어내는 데 성공한다. 섬유에서 추출한 DNA 조각들을 통해 밝혀진 티라노사우루스 단백질 7개의 구조는 놀랍게도 어제 저녁 시원한 맥주와 함께 시켜 먹은 치킨의 단백질과 가장 유사했다. 양념치킨·백숙·깐풍기·닭갈비. 이들이 공룡 티라노사우루스의 살아 있는, 가장 가까운 친척들이란 뜻이다.

10억 마리의 돼지, 10억 마리의 양, 13억 마리의 소, 그리고 200억 마리의 닭. 70억 명의 호모 사피엔스와 함께 살고 있는 가축들이다. 거기에 비해 4만 마리도 남지 못한 사자, 65만 마리의 코끼리, 1000마리만 남은 판다, 그리고 단 한 마리도 남지 않은 오록스. 요컨대 가축이 되면 수가 더 늘어나고, 길들여지지 않으면 멸종한다. 그렇다면 이런 주장을 해볼 수 있겠다. 인간에게 길들여진 것은 가축에겐 행운이었다고. 가축으로 진화한 덕분에 소와 돼지와 닭의 유전자들은 인간과 함께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태어나자마자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송아지. 쉴 틈 없이 임신해야 하는 젖소. 공장화된 양계장에서 키워지는 닭. 그들에게 자신들 유전자의 세계 정복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동물 고통 알아도 스테이크 찾는 인간
약 1만 년 전 수렵과 채집을 포기하기 시작한 인류. 농부가 된 영장류는 더 많은 식량을 만들어냈기에 더 많은 아이를 가졌다. 더 많은 아이들이 살아남기에 더욱더 많은 식량이 필요했다. 노동과 번식, 번식과 더 많은 노동이란 악순환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길들여진 동물들 역시 인간과 함께 악순환의 길에 들어선다. 동의도, 이해도, 생각도 없이 말이다. 앞으로 50년, 100년 후. 어쩌면 최첨단 유전공학과 식품공학 덕분에 알약 하나와 시험관에서 수확된 단백질 덩어리를 먹으며 살게 될 우리의 후손. 그들은 얼굴을 찡그리며 물어볼 수 있겠다. 어떻게 햄버거 하나 만들기 위해 느끼고, 슬퍼하고, 엄마를 그리워하는 송아지를 죽일 수 있었냐고. 마치 오늘날 우리가 사람을 사람의 노예로 삼던 과거 인류의 미개함을 이해할 수 없듯 말이다.

『논리철학 논고(Tractatus Logico-Philosophicus)』에서 “문제를 이해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보여준다던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instein). 역시 그의 말이 맞았던 것일까? 1만 년 전부터 인간의 포로로 살고 있는 가축들. 그들의 고통과 무의미한 삶을 잘 이해하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오늘 저녁 먹을 맛있는 스테이크를 포기할 수 없으니 말이다.



김대식 독일 막스-플랑크 뇌과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미국 MIT와 일본 이화학연구소에서 박사후 과정을 거쳤다. 이후 보스턴대 부교수를 지낸 뒤 2009년 말 KAIST 전기 및 전자과 정교수로 부임했다. 뇌과학·인공지능·물리학뿐 아니라 르네상스 미술과 비잔틴 역사에도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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