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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여총리 비르기트’와 한국정치

중앙선데이 2014.11.02 02:39 399호 30면 지면보기
개헌 논쟁이 치열하다. 정치권과 언론에서 찬반 양론의 다양한 견해들이 표출됐다. 반대 논지는 대통령의 ‘블랙홀’론과 국민의 미요청론이 대표적이다. 정치 영역과 경제 영역이 서로 상호작용을 한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개헌 논의가 블랙홀이 되어 경제 활성화에 막대한 지장을 준다는 주장은 지나친 우려다. 오히려 개헌 내용에 따라서는 개헌이 새 정치의 ‘빅뱅’이 되어 경제 회복에 기여할 수도 있다. 국민의 미요청론에 대해선 잠룡 김문수의 발언이 주목할 만하다. 그는 최근 “헌법을 바꿔 달라고 하는 국민은 아직 못 봤고, 국민이 바라는 것은 정치 좀 바꿔라”고 말했다고 한다. 얼핏 보면 옳은 지적같이 보인다.

찬성론은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비판론과 새 정치 기대론이다. 전자는 대통령제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 분권형 대통령제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국회를 비판하는 국민 입장에서 보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다. 정치 난맥을 다른 각도에서 보면 개헌의 주요 대상은 대통령보다는 국회와 관련된 항목인 것이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회해산제 도입에 국민의 70% 이상이 찬성했다고 한다. 국회해산제 도입을 요청하는 국민은 아마도 정치가 좋은 방향으로 변화되길 바라기 때문에 그런 요구를 할 것이다. 국회해산제는 개헌이 전제돼야 한다. 물론 현행 대통령제에서 국회해산제 도입은 권력의 권위주의화 때문에 위험하고, 분권형 대통령제 또는 내각책임제로 헌법이 개정돼야 한다.

그럼 분권형 대통령제의 개헌이 타당한가. 아니다! 선거제도 개혁 없이 정부 형태만 바뀌는 개헌이 되면 지금보다 더 심각한 정치 불안이 올 수 있다. 제2공화국에서 구파 윤보선 대통령과 신파 장면 총리의 갈등을 연상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유럽연합(EU) 국가 중에서 9개국이 분권형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가장 오래되고 안정적인 정치를 보여주는 오스트리아가 모범적인 사례다. 오스트리아의 선거제도는 의원 전부를 비례대표 원리로 선출하는 완전한 비례대표제다.

한국의 선거제도는 엄밀한 의미에서 지역·비례 혼합형이 아니다. 비례대표로 선출되는 의원의 비중이 낮아 분절화된 선거제도에 불과하다. 완전한 비례대표제가 결여된 분권형 대통령제는 가히 ‘앙꼬 없는 찐빵’이 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 국회의원 다수는 비례대표의 확대에 시큰둥하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지역구에서 제왕에 버금가는 ‘제후’의 권력을 발휘하고 있는 국회의원이 선거제 개혁에 의해 자기의 권력 기반이 사라지는 것을 좌시하진 않을 것이다.

더구나 헌법재판소가 선거구 획정의 법 조항이 헌법불합치이기 때문에 선거구별 인구편차를 시정하도록 결정했다. 이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선 벌써부터 중대선거구제를 거론하고 있지만, 이는 다수대표제의 하위 유형에 불과하다. 중대선거구의 획정은 당 지도부와 중진의 영향력을 받아 게리맨더링이 될 공산이 크고, 양대 지역패권 정당의 제2중대나 소지역주의 정당이 중대선거구제에서 창궐할 것이다.

현재 선거법 개정은 국회에서도 가능하지만 완전한 비례대표제의 도입이나 대폭 확대에는 ‘제후적’ 국회의원이 결사적으로 저항할 것이다. 그래서 선거제도의 개혁을 위해서도 개헌이 필수적이다.

‘비례대표의 확대’란 표현도 애매모호하다. 따라서 새 헌법에는 선거제도를 완전한 비례대표제로 확정하는 규정을 도입해야 한다. 비례대표제와 결합된 정부 형태의 개헌이 이뤄지면 새 정치의 빅뱅이 시작될 것이다. EU 국가 중에서 선거제도를 헌법에 규정하고 있는 국가는 오스트리아·덴마크 등 13개국에 달한다.

물론 완전한 비례대표제는 단기적으로는 군소 정당의 난립을 초래할 수 있지만, 서구의 경험을 보면 중장기적으로는 정치 안정에 기여한다. 완전한 비례대표제와 결합된 내각책임제가 작동되는 방식은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국내에선 JTBC가 방영했던 덴마크의 정치 드라마 ‘여총리 비르기트’를 보면 충분히 이해될 것이다.


이국영 성균관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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