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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역사 퀴즈왕] 고종 강제 퇴위의 빌미가 된 사건은

온라인 중앙일보 2014.11.02 00:01
소년중앙과 함께 ‘소중 시간탐험대’를 진행하는 문화유산국민신탁(www.nationaltrustkorea.org, 02-752-9296·7)이 ‘청소년 역사 퀴즈 대회’를 11월 16일 오후 1시 서울 덕수궁 중명전에서 엽니다. 숱한 외침을 이겨낸 우리나라의 역사를 잘 알고, 어렵게 지켜온 문화유산을 잘 간직하고 보호하자는 취지에서입니다.


족집게 예상 문제 (끝)

문화유산국민신탁은 시민의 힘으로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설립된 단체입니다. 지면에 다 싣지 못한 심화 학습내용은 문화유산국민신탁 홈페이지 ‘청소년 역사 공부방’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그동안 소중과 함께 열심히 공부한 역사 지식을 대회 당일 마음껏 펼치시길 바랍니다.



출제=문화유산국민신탁 손주희·송도영, 자료=『한국사능력검정시험』 『중학교 역사(하) 해설과 평가』 『한국사를 움직인 100대 사건』



배경 학습   을사늑약



경복궁 궐내에서 명성황후가 일본인들의 손에 죽임을 당한 을미사변(1895년) 이후 고종은 러시아·미국 공사관에서 요리한 음식이나 외국인 선교사가 주는 캔 음식만 먹을 정도로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친미·친러파들이 친위대를 동원해 고종을 경복궁에서 구출하고 미국 공사관으로 피신시키려 한 춘생문 사건은 사전에 발각돼 실패로 돌아갔다. 이에 참여했던 사람들까지 교수형·유배형 등을 받으며 고종은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됐다.



결국 고종과 순종은 궁녀의 가마를 타고 몰래 경복궁을 빠져나가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한다. 일본군이 궁녀의 가마는 검문하지 않는다는 허점을 이용한 엄상궁(마지막 황태자 이은의 생모)의 기지였다. 이 사건을 아관파천이라 한다.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 머무는 동안 조선은 여러모로 많이 러시아의 영향을 받았다.



아관파천 후 1년여 만에 경운궁(현 덕수궁)으로 환궁한 고종은 1897년 중국의 연호 대신 독자적인 연호인 ‘광무’를 선포한다. 9월에는 환구단을 세우고 10월 12일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여 대한제국을 세웠으니 이를 광무개혁이라고 한다. 그러던 중 1904년 경운궁에 큰 화재가 일어나 황실 도서관으로 쓰이던 중명전(옛 수옥헌)으로 거처를 옮긴다.



고종이 1년간 피신했던 옛 러시아공사관 실내.
을사년인 1905년 일본은 군사력을 동원해 대한제국과 보호조약을 체결한다는 방침을 세운다. 총괄 지휘를 맡은 이토 히로부미는 11월 17일 일본 군대를 이끌고 중명전에 들어가 고종과 대신들을 위협하며 조약에 서명할 것을 강요한다. 고종은 끝까지 서명을 거부했으나, 일본은 외부대신 박제순의 직인을 가져와 문서에 찍게 했다. 참정대신 한규설, 탁지부대신 민영기, 법부대신 이하영은 반대 의사를 표했다. 그러나 내부대신 이지용, 군부대신 이근택, 외부대신 박제순, 학부대신 이완용, 농상공부대신 권중현 등 5명은 조약 체결에 동의했다 이 다섯 명을 을사년의 적이라 하여 ‘을사오적(乙巳五賊)’이라 부른다.



이른바 을사늑약(제2차 한일협약, 을사보호조약)으로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뺏겼다. 하지만 조약의 명칭도, 황제의 서명이나 위임장도 없었다. 일본이 총칼을 앞세워 위협하며 강제적으로 체결했기에 ‘늑약(勒約)’이라 부르는 것이다.



고종은 조약이 무효임을 알리기 위한 외교 활동을 전개한다.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다. 전 의정부 참판이자 서전서숙에서 교육을 담당한 이상설, 평리원(재판을 보는 중앙관청) 검사 출신 이준, 전 러시아 주재 공사관 참서관 이위종이 그들이다. 이준은 고종이 준 특사 신임장을 갖고 서울을 떠나 블라디보스톡에서 이상설과 만나고, 러시아에서 이위종과 합류했다.



이들은 러시아 황제에게 대한제국 특사들이 평화회의에서 나라의 실정을 설명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내용의 친서를 전달하고 6월 25일 헤이그에 도착했다. 당시 헤이그에는 고종을 돕던 미국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가 미리 도착해 특사들의 회의 참석을 주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의 방해 공작으로 회의 참석은 끝내 무산되고 말았다. 게다가 만국평화회의는 사실상 일본을 비롯한 제국주의 열강들이 서로 불필요한 충돌이나 마찰 없이 관할구역을 나누기 위한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위종은 회의장 밖에서 유창한 프랑스어로 ‘조선을 위해 호소한다’는 제목의 연설을 한다. 대한제국의 주권 회복을 위한 국제 사회의 지지를 당부하고 일본의 잔인성과 포악함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연설문은 만국평화회의보에 실리는 등 각국 기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특사 일행이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일본은 피고도 없는 상태에서 신속히 재판을 열어 이들에게 사형과 종신형을 선고했다. 이준은 울분을 참지 못해 음식을 끊고 순국했고, 이상설과 이위종은 러시아에서 항일 운동을 벌이다 병들어 죽었다.



일본은 헤이그특사를 빌미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을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자리에 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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