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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에 둥지 튼 이영돈 PD] 교양 접목한 예능 프로 기대하세요

온라인 중앙일보 2014.11.02 00:05



[이코노미스트] 방송계 ‘히트작 제조기’ JTBC에 정착 “33년의 도전적인 삶 후회한 적 없어”

이영돈 PD. 연예인도 아닌데 그의 이름 앞에 ‘스타’라는 단어가 붙는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PD다. 그가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에서 자주 썼던 ‘제가 한 번 먹어보겠습니다’는 말은 유행어로 자리잡았다. 그의 이력은 독특하다. 1981년 KBS에 입사했고, 1991년 SBS로 옮겼다가 1995년 KBS에 재입사했다. 그동안 ‘그것이 알고 싶다’ (1992~, SBS), ‘이영돈 PD의 소비자고발’(2007~2011년, KBS), ‘주병진쇼’(1993년, SBS) 등의 히트작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2011년 종합편성채널이 개국할 때 채널A로 옮겼다. 여기서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2012~2013년)과 ‘이영돈 PD 논리로 풀다’(2012~2013년) 등의 프로그램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고, 채널A 제작담당본부장과 상무까지 했다.



도전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지난 7월 채널A를 떠나 JTBC로 자리를 옮겼다. 탐사 고발 프로그램의 아이콘이 된 ‘이영돈 PD’라는 브랜드가 ‘예능 대세 채널’ JTBC에서 어떤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지 벌써부터 궁금증이 앞선다. 한창 새 프로그램 준비에 바쁜 이영돈 PD 를 10월 초 JTBC 제작실에서 만났다. 그는 58세(1956년 생)의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젊어 보인다. 단순히 방송에 얼굴을 자주 비치면서 ‘카메라 마사지’를 받았기 때문은 아닌 듯하다. 그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갈래다. 가장 성공한 PD라는 평가도 있지만 ‘책임 PD부터 진행자까지 모든걸 다 하겠다고 나서서 완벽을 추구하는 피곤한 사람’이란 현장의 평가도 있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방송사를 거친 PD가 아닐까 싶다.



“아마 그럴 것이다(웃음).”





1981년에 KBS에 입사했는데, 입사 동기들은 지금 뭘 하나?



“대부분 현직을 떠났다.”





아직도 현장에서 뛴다는 자부심이 클 것 같다.



“그렇게 구체적인 느낌보다는 일을 할 수 있으니까 하는 거다. 난 일을 일단 시작하면 열심히 한다. 그게 지금까지는 대충 좋은 성과를 낸 것이다. 이제 또 다른 도전이 내 앞에 놓여 있다.”





체력이 좋은 걸로 정평이 나 있다.



“일할때 한 번에 여러개를 하는 스타일이다. 예를 들어 2005년 가을부터 3 년간 KBS에서 프로그램을 맡은 채로 고려대 신문방송학과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했다. 그것도 야간이 아닌 주간으로. 2008년 5월부터는 학위논문 마무리 작업을 하면서 ‘이영돈 PD의 소비자 고발’을 했다. 그러면서 같은 시기에 책도 쓰고, 뭐 이런 식이다. 일이 잘 풀릴 때 운명적으로 일이 여러개막 몰린다. JTBC로 옮기고 나서 갑자기 강연 요청도 왕창 들어오고, 또 다른 외부 일도 몰려 들어왔다.”





왜 JTBC로 옮겼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은데.



“내가 그동안 고발·탐사 프로그램을 주로 했는데 과거에는 ‘주병진쇼’ ‘박중훈쇼’(2008~2009년, KBS) 같은 프로그램도 했다. 채널A에서 개그맨 신동엽이랑 같이 ‘젠틀맨’(2013~2014년)이란 프로그램도 했다. 교양과 예능을 반반 접목한 프로그램인데, JTBC는 예능이 강하지 않나? 지금 준비하는 건 교양과 예능을 접목하되 예능 부분이 더 크다.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나도 궁금하고, 나에게도 아주 도전적인 과제라 이쪽으로 옮기게 됐다. 지금 준비 중인 프로그램은 이르면 11월 초순쯤 방송을 시작할 예정이다.”





여러 방송국을 거쳐 JTBC까지 온 것도 인생의 반전인가?



“나더러 풍운아라고 하더라. 실제 사주에 역마살도 있다. 아마도 깊이 고민하고 이것저것 다 따졌으면 못 옮겼을 거다. 지상파에서 종편인 채널A로 옮긴 이유는 새로운 환경에서 일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다. JTBC로 옮길 때는 또 다른 조건이었다. 여기선 임원도 아니고, 완전히 미국식이다. 프리랜서라고 할 수도 없고, 계약된 PD다. 미국은 PD가 능력이 있으면 돈을 더 받고 옮기는 게 당연한 분위기다. 프로야구로 생각하면 FA 이적 같은 거다. JTBC엔 예능을 잘 아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에 나와 콜라보 작업을 하면 상승효과가 날 수 있는 터전이라고 생각했다.”





작년에 사회적으로 프로포폴 중독 문제가 이슈가 되니까 ‘이영돈 PD 논리로 풀다’에서 프로포폴을 직접 맞았다가 화제가 되지 않았나? 약에 취해서 중얼중얼하는 모습도 나오고. 혹시 이번에도 그런 걸 하게 되나?



“기획회의 분위기를 보니까 아무래도 또 뭔가 몸으로 부딪치며 할 것 같다(웃음).”





가장 좋아하는 ‘반전’이 새 프로그램에서도 등장하나?



“토크쇼에서도 반전은 충분히 나올 수 있다. 사람들의 기대를 깨뜨리거나, 새로운 뭔가를 넣어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것이다. 나는 모든 것에 반전이 있어야 시청자들의 이목을 끈다고 생각한다.”





일할 때는 무모할 정도로 저돌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예전에 KBS에 있을때 옛 소련에서 다큐멘터리를 찍다가 KGB(소련국가보안위원회)에 잡혀서 며칠간 발이 묶인 적도 있었다고 들었다. 그런 상황이 또 생겨도 떠날 생각인가?



“간다. 프로그램을 위해서니까. 그때가 1990년대에 막 KBS에 재입사했을 때다. ‘민스크노보르시스크, 북북서로 돌려라’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었다. 민스크노보르시스크라는 곳에 옛 소련 항공모함이 정박해 있었는 데, 소련이 무너지고 기름이 없어서 항공모함이 그냥 서 있는 걸 한국에서 사려고 했다. 바다에 정박해 있는 배를 촬영해야 되는데, 일단 그쪽 관계자들한테 거짓말을 하고 찍으러 가서 저 멀리 보이는 배를 카메라를 줌으로 당겨서 찍었다. 사실 거기까지만 해도 되지. 당시엔 우리가 처음 찍은 거니까. 그런데 문제는 내가 배 위에서 그 항공 모함이 어떻게 생겼는지 상태를 찍고 싶었던 거다. 그래서 더 들어갔다가 붙들렸다.”





PD 생활을 처음 시작한 33년 전과 비교해보면, 지금은 채널이 엄청나게 많이 늘었다. 웬만한 프로그램은 주목 받기 어려운 시절이다.



“앞으로는 결국 콘텐트만 남을 거다. 콘텐트를 실어나르는 지상파, 종편, 케이블, 위성 이런식의 개념이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한마디로 콘텐트 전성시대가 열릴 거라고 본다. 매체가 권력인 시대가 끝났고, 콘텐트가 권력인 시대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콘텐트만 살아 남는 시대가 될 것이다.”





글= 이은경 월간중앙 기자

사진= 지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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