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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항공기·열차 제작업계의 제왕

온라인 중앙일보 2014.11.02 00:05
로랑 보두앵 캐나다 봄바르디에 회장. (사진=중앙포토)
로랑 보두앵(76) 봄바르디에 회장은 다른 글로벌 경영인에 비해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에어버스와 보잉에 이어 세계 3위의 항공기 제작업체인 봄바르디에 에어로스페이스의 회장 겸 이사회 의장으로서 항공 업계에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 글로벌 파워피플 (68) 로랑 보두앵 캐나다 봄바르디에 회장
장인이 세운 설상차 회사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다중 인수·합병으로 다각화

에어버스와 보잉은 사실상 주인이 없는 회사이지만 봄바르디에는 항공업계에서 드물게 오너가 있는 기업이라 그의 위력은 더욱 강해 보인다. 봄바르디에는 항공기는 물론 기차, 경전철, 레크리에이션 장비와 금융업 등 폭넓은 분야에 진출해 있다. 금융은 이 회사의 경전철 등을 구입할때 자금이 부족하면 이자를 받고 이를 대출하는데 집중되고 있다. 교통 인프라와 장비 분야에서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겸하고 있는 셈이다.



이 회사의 본사는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얼에 있다. 영어와 프랑스어가 공영어인 캐나다에서 프랑스어 사용자가 많이 사는 퀘벡주의 대표적인 기업으로 프랑스어 사용자의 자랑이기도 하다. 2012년 209억 8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려 19억 8000만 달러의 이익을 냈다. 직원수는 6만 5000명에 이른다.





캐나다의 대표 기업으로 떠올라



이 회사는 창업자 조제프 아르망 봄바르디에(1907~64)가 1942년 퀘벡주에 세운 ‘봄바르디에 설상차’가 모체다. 설상차를 발명해 특허를 얻은 봄바르디에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사업화할 수 있는 기업을 직접 창업한 것이다. 눈이 많고 국토의 상당수가 북극권인 캐나다의 특성상 설상차 사업은 번창했다. 게다가 극지대의 자원 개발이 촉진되면서 더욱 호황을 맞았다. 캐나다의 광업·임업이 발달할수록 매출은 더욱 증가했다.



봄바르디에 집안이 세운 이 회사가 지금 같은 거대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계기는 보두앵 회장의 영입이었다. 보두앵은 봄바르디에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쓰는 캐나다 퀘벡주 출신이다. 그는 공인회계사로 퀘벡시에서 개업해 활동하다 보두앵의 사위가 되면서 1963년 ‘봄바르디에 설상차’에 입사해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창업자인 장인이 엔지니어였으면 그는 전문경영인이었다. 그는 전문인 회계 분야를 넘어 회사의 미래를 직접 설계하기 시작했다. 보두앵은 비상했다. 감사와 영업본부장을 거쳐 1966년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다. 당시 이 회사는 창업자이자 장인인 조제프 아르망 봄바르디에 회장이 발명한 설상차 제작과 판매만 하고 있었다. 회사 운영을 맡게된 보두앵은 성장과 다양화에 주력했다. 그는 먼저 철도 분야에 진출한 뒤 힘을 축적해 항공기 제작업계에 발을 디뎠다.



결과적으로 보두앵 회장은 전 세계에서 항공기와 열차를 동시에 제작하는 유일한 기업으로 키웠다. 이 회사는 도시형 경전철부터 장거리 열차까지 다양한 종류의 철도 장비와 인프라를 공급하고 있다. 한국의 용인 경전철도 이 회사의 제품이다. 27개 국가에서 79개의 제조 및 엔지니어링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이다. 특히 민간항공 분야에서는 에어버스와 보잉에 이어 세계3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은 그의 업적과 힘을 잘 말해준다. 장인에게 물려받은 설상차 회사를 세계적인 항공기 제작회사, 철도·열차 제작사로 키워놓은 것이다. 수성을 넘어 제2창업을 이룬 셈이다.





개인 제트기 시장의 강자



봄바르디에 회장이 항공 분야에 본격 진출한 것은 하나의 도전이었다. 1986년 봄바르디에는 캐나다 국영 항공기 제작사이던 캐나데어(Canadair)를 인수했다. 캐나데어가 캐나다 역사상 최악의 적자를 낸 직후 정부가 매각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봄바르디에는 아무리 부채를 탕감받아도 부실 기업인 캐나데어만 인수해서는 미래가 없다고 봤다. 그는 단독 출격보다 함대 출격을 선호했다. 규모의 경제도 이루고 시너지 효과도 거두려는 의도였다. 그래서 군소 항공기 제작업체로 당시 보잉의 자회사였던 드아빌랑 캐나다와 쇼트 브러더스를 인수한 데 이어 미국의 비즈니스 제트 강자인 리어 제트를 인수했다. 미국 캔자스주 위치타에 위치한 이 회사는 한때 모기업이던 게이츠고무를 따라 게이츠리어제트로 불리면서 중형 비즈니스 제트인 리어제트 시리즈로 명성을 날렸으나 1990년 경영권을 넘겼다. 이후 이 회사는 봄바르디에 리어제트 패밀리로 불린다.



보두앵 회장은 대형 여객기 시장이 아닌 소형 제트기 시장에 승부를 걸었다. 그의 전략은 적중해 봄바르디에는 현재 이 분야의 강자다. 글로벌 시장에선 비즈니스 제트(줄여서 비즈제트) 또는 개인 제트기로 불리는 성장 분야다. 현재 이 회사는 비즈니스 제트 분야에선 2~10인승의 봄바르디에 리어젯 시리즈, 2~19인승인 봄바르디에 챌린저 시리즈, 8~19인의 글로벌 시리세 종류를 생산하고 있다. 국내선을 운항하는 중형 항공기로는 50~100인승의 CRJ시리즈와 100~145인승의 봄바르디에 CS 시리즈를 내놓고 있다. 드아빌랑이 생산하던 터보 프롭 여객기 대시 시리즈를 Q시리즈로 이름을 바꿔서 내놓고 있기도 하다. 33~78인승의 항공기다. 터보 프롭은 가스터빈 엔진으로 팽창된 공기를 분사하는 제트 엔진과 달리 엔진으로 프로펠러를 돌려 항공기 추력을 얻는다. 안정적으로 진화한 프로펠러기다. 특히 리어제트는 미국 제너럴 다이내믹스의 걸프스트림, 프랑스 다소의 팔콘 등과 함께 비즈니스 제트의 명품으로 통한다.



보두앵은 비즈니스 제트 시장의 개척자의 하나로 꼽힌다. 게다가 그가 평생 주력해온 비즈니스 제트 시장이 2000년 이후 끝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비즈니스 제트는 대규모 승객을 운송하는 여객기 대신 개인이나 소규모 집단을 실어 나르는 자가용 또는 전세 제트기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정착됐다. 비즈니스 제트는 단순한 인원 운송을 넘어 기능이 확대되고 있다. 분쟁이나 재난, 또는 질병 유행 과정에서 피해자 등을 신속하게 철수시키거나 긴급한 소포를 배달하는 데도 이용된다. 정부 인사나 군 병력을 은밀하고 신속하게 이동시킬 때도 이용된다.



앰뷸런스 비행기로 개조해 환자를 신속하게 적절한 병원으로 이동시킬 수도 있다. 특수 시설을 갖춰 중환자나 감염성이 큰 전염병 환자를 안전하게 운송할 수 있기도 하다. 최근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에볼라에 감염된 자국 출신 의료진을 이 앰뷸런스 비즈니스 제트를 보내 본국으로 이 동시키기도 했다. 비즈니스 제트의 다양한 활용도가 전 세계에 대대적으로 홍보된 사례다. 한국도 2011년 1월 총상을 입고 예멘에서 치료를 받던 삼호주얼리호의 석해균 선장을 외국에서 비즈니스 제트 앰뷸런스를 대여해 한국의 아주대 응급외상센터로 옮겨 치료했다.



비즈니스 제트의 최대 고객은 아무래도 기업인이다. 운항 스케줄에 맞춰야 하는 민간항공과는 달리 필요할 때 신속하게 가동할 수 있는데다 민항기가 운항하지 않는 목적지까지 갈 수가 있어 시간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은밀한 용도가 있다. 출장지에서의 비즈니스 활동으로 술에 취하거나 잠이 부족한 상황에서 일반인의 눈에 띄지 않고 은밀하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글로벌화하고 해외 출장이 일상화하면서 1등석으로 출장 다니는 것보다 비즈니스 제트를 이용하는 것이 비용 대비 효율이 더욱 좋다는 판단을 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전체 임원이 나눠 쓰는 경우는 일상화했다. 거래 상대방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진다는 장점도 있다.



게다가 비즈니스 제트를 소유하거나 운용하는 방식이 다양화하면서 비용 부담도 줄고 있다. 비즈니스 제트기를 구입하지 않아도 전세 내거나 공유하거나 콘도나 택시처럼 필요할 때 불러 쓰는 등 다양한 이용 서비스 상품이 등장한 것이다. 1996년부터 ‘분할 제트’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여러 회사가 컨소시엄을 형성해 한 두 대의 비즈니스 제트를 공동 소유하고 조정사 급여, 격납고 비용, 공항 사용 비용, 유지 운용 비용을 서로 나누는 개념이다. 운용 비용이 줄면서 이를 이용하려는 기업인이 늘고 이에 따라 비즈니스 제트 시장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2010년 미국의 국립 비즈니스 항공기 협회에 따르면 비즈니스 제트를 이용하는 기업은 일반 여객기를 이용하는 기업 보다 이익 상승률이 219%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비즈니스 제트의 활용이 기업에 큰 도움을 준다는 이야기다. 수행원이나 취재기자들을 동행한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의 이용도 늘고 있다. 이에 따라 항공사들이 비즈니스 제트를 구입해 에어택시라고 불리는 프라이비트 운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에어택시 서비스가 늘면서 초소형기(very light jet, VLJ) 시장이 폭발적으로 놀고 있다. 소형기의 명가인 세스나는 255만 달러 정도의 6인승 머스탱을 내놓고 있다. 승무원 2명에 승객 4명이 타는 그야말로 하늘의 택시다. 에클립스 에어로스페이스는 150만 달러짜리에 클립스 500을 시장에 내놔 큰 인기를 끌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2만대 가까운 비즈니스 제트가 운항 중이다. 시장의 70%가 북미대륙에 집중돼 있고 나머지는 유럽·중동·아시아·중남미 순이다. 한국도 도전해볼 만한 미래 성장사업 분야다.



소형기와 함께 중형기 시장도 뜨겁다. 최근에는 일본도 중형 제트 여객기 시장에 동참했다.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의 자회사인 미쓰비시항공기는 10월 18일 아이치현 고마키미나미 공장에서 소형 제트 여객기 ‘미쓰비시 리저널 제트(MRJ)’의 시험 비행용 기체를 공개했다. 일본이 사실상 처음 개발한 중형 제트 여객기다. 78~92명의 승객을 태우고 최대 3400㎞를 비행할 수 있다. 미쓰비시항공기는 2008년 여객기 개발 계획을 밝힌 뒤 1800억엔(약 1조8006억 원)의 개발비를 투입했다. 내년 4월 첫 비행을 한 뒤 2017년부터 일본항공 등 항공사에 납품할 예정이다. 하지만 일본 외의 시장에 진출할 가능성은 아직 모호하다.



소형기나 중형기 시장에 진출하려면 이 분야에서 탄탄한 기반을 다져놓은 봄바르디에와 한판 승부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소형기나 중형기는 연료효율이 생명이다. 미쓰비시항공기는 MRJ에 최첨단 엔진을 탑재해 해외의 동급 모델에 비해 연비를 20% 가량 개선했다. 앞으로 연비가 높은 항공기 엔진 개발이 중소형 항공기 시장의 승부처가 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보두앵 회장에겐 하나의 새로운 도전이다.





로랑 보두앵 회장의 아들인 피에르 보두앵. 보두앵 회장은 봄바르디에의 경영은 아들에게 맡기고 로봇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중형기 제작 시장의 경쟁도 뜨거워



보두앵 회장은 노년에 접어들면서 봄바르디에의 경영은 아들인 피에르(52)에게 대부분 넘기고 자신은 미래산업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로봇 분야에 새롭게 몰두하고 있다. 그는 2010년 ‘퍼스트로보틱스 퀘벡’이라는 회사를 세워 대표이사를 맡았다.



연료 효율이 높은 엔진 제작 등 환경 분야에도 관심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분야는 봄바르디에 미래 경쟁력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그가 노년에 새롭게 시작하거나 관심을 보이고 있는 분야에서 설상차 제작사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경영능력이 새롭게 발휘될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노장 경영인은 물러나지 않고 다만 새롭게 도전할 뿐이다.





글=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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