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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라 기싸움'에 한 달 허송 … 남북 경색 장기화 우려

중앙일보 2014.10.30 00:54 종합 7면 지면보기
고위급 회담에 합의했던 남북이 전초전(前哨戰)에서 과도한 기싸움을 벌였다. 30일 판문점에서 고위급 접촉을 갖자는 남측 제안에 북한은 대북전단 살포 문제를 내세워 압박을 해 왔다. 이에 정부는 “부당한 요구까지 수용할 수 없다”(29일 통일부 대변인 논평)는 입장을 밝혀 끝내 접점을 찾지 못했다.


황병서 방문 뒤 화해 모드 찬물
북, 미·일과 관계 개선 전략 차질
남 ‘통일대박’ 구상도 난항 예상
"북 대화로 이끌 안보팀 경륜 필요"

 지난 4일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의 인천 방문 이후 경색됐던 남북 관계가 전기를 마련할 것처럼 보였으나 결국 대북전단이 문제가 돼 다시 훈풍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다.



 당시 황병서 일행은 8월 우리 정부가 제안한 고위급 접촉을 뒤늦게 수용하면서 북한이 대화국면을 원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10월 말~11월 초 언제든 남측이 원하는 시기에 회담장에 나오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부 안팎에선 당국 대화가 복원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특사’ 성격을 띠는 실세 그룹이 고위 접촉에 호응해 왔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이후 국면은 순탄치 않았다. 북한 함정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이남으로 넘어와 우리 군이 경고·대응사격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군 관계자는 “당시 김정은이 건강 이상으로 장기간(40일) 공개활동을 중단한 상황인 데다 황병서의 남한 방문이 있었는데 북한 함정이 우발적으로 침범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한편으로 북한은 우리 민간단체가 대북전단을 실어 날리는 풍선에 고사총 사격을 가하는 도발을 처음으로 감행했다. 이 때문에 해당 접경지역 주민과 단체들이 대북전단 살포를 놓고 충돌까지 벌였다.



 북한은 “남측이 ‘법적 근거와 관련 규정이 없다’며 삐라 살포를 방임한다”(29일 국방위 서기실 통지문)고 정부를 비난하며 당초의 약속은 언급하지 않았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황병서가 회담 날짜를 한 달 정도 뒤로 넉넉하게 제시한 건 대화 재개를 내세워 전단·NLL 문제 등의 이슈를 자기 쪽에 유리하게 만들려는 전형적인 시간 벌기 전술”이라고 분석했다. 통일 문제 전문가들은 남북이 입장을 급선회하지 않는 한 상당 기간 남북한이 대화의 단초를 마련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양쪽 모두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은 국면이다. 일단 대남 유화제스처로 미국은 물론 중국·일본 등과의 관계 개선에 속도를 내려 했던 평양 측 구상은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김 제1위원장은 황병서까지 방남(訪南)하게 했는데도 신년사에서 언급한 ‘북남 관계 개선’ 문제에 결실을 보기 어려워졌다.



 정부의 부담도 크다. 올해를 그냥 넘길 경우 경색국면의 장기화가 우려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제기한 ‘통일대박론’과 비무장지대(DMZ) 평화공원 건설 같은 구상도 차질을 빚을 공산이 커진다.



 정부가 대북 접근에 있어 좀 더 정교한 전략을 발휘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정세현(전 통일부 장관) 원광대 총장은 “원칙적 대응을 강조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북한을 회담장에 나오게 할 우리 안보팀의 수완과 경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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