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트북을 열며] '마왕'이 건넨 말들

중앙일보 2014.10.30 00:10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도은
중앙SUNDAY 기자
생각보다 슬픔이 컸다. 가수 신해철씨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동시대를 함께한 이들에게 충격이었다. 별세 소식이 전해진 직후부터 그를 애도하는 추모 물결이 일었다. 빈소가 마련되자 일반인 조문객 수가 열 명 중 여덟이나 됐다. 페이스북·트위터에서는 저마다 그의 음악을 다시 들을 수 있는 동영상 링크를 걸었고, 라디오 프로그램마다 그의 노래들을 연이어 선곡했다. 그러니까 요 며칠은 팬이 아니더라도 고인의 음악 전반을 한순간에 접한 기회가 됐다.



 다시 들어본 그의 노래는 특별했다. 지금 들어도 촌스럽지 않은 멜로디나 비트 때문만은 아니었다. 가사가 유독 빛났다. SNS에서는 저마다 마음에 꽂힌 구절을 옮겨 놓는 게 눈에 띄었다. ‘짧은 글’이 생명인 언론 보도 역시 긴 가사 구절들을 그대로 옮기는 경우를 종종 발견했다. 곡조 없이도 허투루 읽히지 않는 의미심장한 대목이 많아서였다.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나/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노라고’(‘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가 나지막한 고백 같다면, 생전 자신의 묘비명으로 쓰겠다던 노래 가사는 비장함을 줬다. ‘성난 파도 아래 깊이/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흐느껴 울고 웃으며/긴 여행을 끝내리/미련 없이.’(‘민물장어의 꿈’)



 그의 별명은 ‘마왕’이었다. 평소 사회 비판과 독설과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말투와 달리 그가 지은 노래 속 가사는 되레 서정적이고 정제된 것도 많았다. ‘해에게서 소년에게’라는 노래 말미엔 이런 구절이 있다. ‘소년아 저 모든 별들은/ 너보다 먼저 떠난/ 사람들이 흘린 눈물이란다/ 세상을 알게 된/ 두려움에 흘린 저 눈물이/ 이다음에 올 사람들을/ 인도하고 있는 것이지.’ 또 노래를 통해 낙관과 희망도 잃지 않았다. ‘눈물 흘리며 몸부림치며/ 어쨌든 사는 날까지 살고 싶어/그러다 보면 늙고 병들어/ 쓰러질 날이 오겠지/하지만 그냥 가보는 거야.’(‘절망에 관하여’)



 그가 떠나고서야 이 노래들을 찾아 들으며 대중가요가, 아니 대중가요의 가사가 중요한 이유를 새삼 깨닫게 됐다. 실연의 아픔을 위로하고 가슴 뛰는 남녀의 사랑을 노래해도 좋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한 박자를 늦춰 삶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 생각 없이 흥얼거리는 글자의 나열일지라도 어느 순간 마음에 와 닿는다면 그것이 가사의 역할일 터다.



 요즘 신곡이라 들리는 노래들에 ‘러브미’ ‘터치미’ 같은 영어 가사가 반복되는 건 대수롭지 않다. 동요와 선정적 코드를 엮은 가요도 등장했다. 그것이 시대상의 반영이라면 고까워할 일은 아니다. 다만 그 한편에서 누군가는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가사는 가수가 건네는 말이라면, ‘마왕’은 오래 기억에 남을 얘기들을 남기고 갔다.



이도은 중앙SUNDAY 기자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