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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칼럼] 박정희 시대 과학은 드라마였다

중앙일보 2014.10.30 00:10 종합 35면 지면보기
박보균
대기자
오원철씨는 뒤에 서 있었다. 10·26 ‘박정희 대통령 서거’ 35주기 추도식에서다. 26일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행사다. 추도사는 박정희 대통령의 치적을 기렸다. “후진국 한국을 중화학공업의 선진국 산업 형태로 구축하고, 방위산업을 육성했다”(김홍래 성우회 회장)는 부분도 있다.



 그 분야 핵심 참모는 당시 청와대 경제2수석비서관 오원철씨다. 그에게 35주기 감상을 물었다. 그는 “내 집이 이 근처라서 여기에 자주 온다”고 했다. 절제된 답변이다. 여운은 길다. 그 말 속에 박정희 시대가 녹아 있다.



 그 시대 과학은 드라마다. 과학과 애국이 묶였다. 그런 의기투합은 극적인 역사를 만든다. 드라마 시작은 해외 인재 스카우트다. 주제는 자주국방과 기술자립이다. 박정희는 귀국 요청 편지를 직접 썼다. 대상자 여러 명은 노벨상 후보감이다. 자주는 과학의 감수성을 자극했다. 자립은 애국의 열정을 불어넣었다.



 김완희(1926~2011) 박사는 한국 전자산업 선구자다. 그는 1967년 홀로 귀국했다. 미국에 가족을 남겼다. 대통령 편지는 세심했다. “모국 생활이 외국 생활하는 듯해 불편이 많은 것….” 대통령과 과학자 사이의 편지는 12년간 130여 통이다.



 과학 드라마는 극적 요소를 갖춘다. 유도탄 개발은 넘치는 긴박감이다.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도전이었다. 1978년 9월 백곰 유도탄 발사가 성공했다. 한국의 유도탄 시대가 열렸다. “그 역사적 순간 우리 연구원들은 서로 얼싸안고 울음을 터뜨렸다.”(홍재학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소장)



 드라마는 1급 비사(秘史)를 갖고 있다. 핵무기 만들기다. 오원철씨는 그 비밀을 간직했다. 노년의 그의 기억력은 비상하다. 하지만 그는 전모를 펼치지 않는다. “핵무기 개발의 기술력이 진척됐다”는 데서 그친다. 1970년대 후반 한·미 간 갈등은 거칠었다. 그 이면에 핵이 있었다. 미국은 박정희의 핵 집념 저지에 주력했다. 박정희 시대 종언의 한쪽에 핵 개발이 있다.



 과학기술은 지도력의 공간이다. 핵무기, 미사일, 인공위성은 리더십이 생산한다. 그것은 지도자 의지와 국가 역량의 집합체다. 지난 7월 북한 군수담당 비서였던 전병호가 숨졌다(88세). 장례위원장은 북한 지도자 김정은, 국장(國葬)으로 치러졌다. 조선중앙TV는 전병호를 이렇게 소개했다. “우리 조국을 인공지구위성 제작 및 발사국, 핵보유국으로 전변시키는 데 특출한 공헌을 하였다.”



 전병호는 북한 핵의 간판이다. 핵 개발은 김일성·김정일 집권기를 거쳤다. 북한은 파키스탄 압둘 카디르 칸 박사의 기술을 전수받았다. 칸은 죽음의 핵 상인으로 불린다. 칸은 북한의 전변(轉變)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 바탕에는 북한 리더십들의 집착과 열의가 깔렸다.



 전병호 장례식은 중국의 첸쉐썬(錢學森·1911~2009)을 떠올린다. 첸쉐썬 장례식에는 그 시절 주석 후진타오, 전 주석 장쩌민이 참석했다. 1955년 주석 마오쩌둥(毛澤東)은 미국에서 첸쉐썬을 데려왔다. 스파이 교환 형식이었다. 첸쉐썬은 중국의 양탄일성(兩彈一星, 원자·수소폭탄과 인공위성)을 주도했다. 리더십과 과학의 결합으로 이룩한 성취다.



 지난 21일은 북·미 제네바 합의 20주년이다. 당시 미국 측 협상 대표인 로버트 갈루치의 고백은 허망하다. “(합의)당시 우리는 북한에 대해 몰랐고 지금도 마찬가지다.”(SAIS, 존스홉킨스대학 국제대학원 세미나)-. 그 직설은 당혹스럽다.



 미국의 북핵 정책은 좌절했다. 정책책임자들은 평양 지도부의 핵 의지에 둔감했다. 북한의 과학 역량도 과소평가했다. 북한은 그런 무지(無知)를 틈탔다. 핵 기술을 키웠다. 대다수 한국 전문가들도 그 무지 속에 있다. 북한의 과학기술 축적과 우대는 오래됐다. 경제파탄으로 그 전통은 헝클어졌다. 하지만 명성은 살아 있다. 비날론을 만든 리승기 신화는 건재하다.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 사령관의 최근 발언은 심각하다. “북한은 핵탄두 소형화 기술을 가졌다.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북한이 ‘절대반지’를 확보했다는 뜻이다. 핵 미사일 보유국의 위상은 다르다. 그 체제의 격은 달라진다. 가난뱅이로 무시당하지 않는다. 핵은 협박과 공멸의 무기다. 그들이 받는 지원은 구호가 아니다. 칼부림하지 말라는 유화의 선물이다. 북한은 핵의 묘미를 터득했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북한의 핵 성취는 전작권 반환 연기의 이유다. 전작권 회복은 자주국방으로 완성된다. 그 자주는 좌파식 명분으로 달성할 수 없다. 실질로 이루어진다. 실질은 과학기술의 국방력이다. 70년대 중추 세대는 과학과 애국을 묶었다. 그 결속의 드라마가 진정한 자주다. 그런 드라마를 다듬어 재구성해야 한다.



박보균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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