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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 장수(長壽)군주의 어머니

중앙일보 2014.10.27 11:42
사람의 건강은 선천적인 체질로부터 나온다고 한다. 어머니로부터 건강한 체질을 물려받으면 그만큼 장수 인생을 살 수 있다. 역사에서 보면 군주와 정실부인은 신분은 고귀하지만 신체적으로 나약하다. 군주가 신분은 미천하지만 건강한 여자와 사이에서 낳은 자식은 질병에도 강하고 장수한 예가 중국이나 일본 우리 역사에 자주 보인다.



17세기 동아시아의 군주(君主) 중에서 장수하여 재위기간이 가장 긴 세 명의 군주를 꼽으라고 하면 조선조의 영조(英祖)대왕, 중국(淸)의 첸룽(乾隆)황제 그리고 일본 에도(江戶)시대의 최고 실권자 8대 쇼군(將軍) 요시무네(吉宗)를 이야기할 수 있다.



세 사람의 공통점은 거의 동시대 인물이면서 신분은 미천하나 건강한 어머니(生母)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의 영조대왕의 아버지는 숙종이지만 어머니는 궁중의 우물에서 물을 긷고 궁내에서 사슴처럼 뛰어 다니던 무수리 출신이다. 무수리는 본래 궁중에서 일하는 궁녀의 하인을 말한다.



첸룽 황제의 아버지는 옹정제이지만 어머니는 만주족으로 옹정제가 왕자시절 후궁의 시녀출신이다. 일본의 쇼군 요시무네의 아버지는 에도(江戶)시대를 연 도꾸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세 아들 가문(御三家)의 하나인 기슈(紀州)가문의 영주(大名)이고 어머니는 기슈 가문의 욕실담당 하녀였다. 자랄 때는 어머니의 낮은 신분으로 신노스케(新之助)라는 이름으로 다른 왕자와 달리 성 밖에서 자랐다.



세 사람은 왕자 시절 어머니의 천한 신분으로 다른 이복형제로부터 멸시를 받는 등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세 사람 모두 어머니의 신분은 미천하지만 육체노동으로 맑은 공기를 마시고 단련된 몸을 움직이는 건강한 어머니를 가졌기에 건강한 체질을 물려받을 수 있었다. 그들은 개혁 군주로서 역사에서 평가받고 있다. 탕평책 등 조선조의 개혁군주였던 영조대왕(1694-1776)은 82세의 장수에 52년간의 재위를 하였다. 첸룽황제(1711-1799)는 88세의 장수에다 재위를 60년간 하였다. 더 재위할 수도 있었지만 할아버지 강희제의 재위기간을 넘을 수 없다면서 60년만 재위하겠다는 본인과의 약속을 지켜 아들에게 제위를 물려준다. 자신은 죽을 때까지 3년간 태상황제가 된다. 첸룽황제가 미복(微服)으로 잠행을 좋아하고 열 번의 소수민족 정벌원정(十全武功), 여섯 번의 강남순행(南巡)도 첸룽황제의 뛰어난 건강과 관련된다고 볼 수 있다.



쇼군 요시무네(1684-1751)는 67세까지 장수하고 재위를 30년간 하였다. 요시무네의 경우 당시 일본을 휩쓴 전염병으로 쇼군을 계승할 수 있는 선순위의 이복형제들이 모두 전염병에 희생되자 계승순위가 비교적 낮은 요시무네가 전염병을 극복 쇼군이 되었다. 요시무네는 전염병이 만들어 준 쇼군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요시무네는 에도막부를 개혁하여 중흥을 일으킨 군주로 전염병으로 피폐해진 나라를 바로세우기 위해 의료개혁을 시작했다. 허준의 ‘동의보감’이 일본에서 제대로 소개되기는 쇼군 요시무네 시대부터이다. 요시무네는 ‘동의보감’을 복사 간행하여 전국 관서에 필독서로 비치케 하고 막부 직영으로 약초원을 만들어 허준의 처방에 나오는 조선인삼등 조선의 약초를 재배토록 하였다.



영조 첸룽 그리고 요시무네 등 세 군주는 어머니의 신분에 의한 어느 정도의 열등의식(컴플렉스)을 숨기지 않았으며 이러한 열등의식이 겸손으로 승화되었다. 그들은 백성들의 어려움을 더 적극적으로 보살피는 서민정책의 시행으로 역사에서 성군(聖君)으로 칭송받고 있다.



유주열 전 베이징 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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