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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철의 차이 나는 차이나] 유행어 된 '마오덩시'… 부패와 전쟁 후 시진핑 위상 치솟아

중앙일보 2014.10.27 00:37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치술(治術)은 ‘등체모용(鄧體毛用)’으로 표현된다. 경제적으론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정책을 계승하고 정치적으론 마오쩌둥(毛澤東)의 권위주의를 차용하고 있다는 뜻에서다. 그래서인지 시진핑의 말에선 마오의 냄새가 많이 난다. 시진핑이 마오가 즐겨 썼던 정풍(整風)운동을 전개하자 마오 시대로의 회귀란 해석도 나왔다. 그러나 이는 고도로 계산된 시진핑의 치국(治國) 책략이다.



 중국의 정치모델은 독특하다. 공산당 일당(一黨)에 의한 전정(專政)이다. 따라서 치국에 앞서 공산당부터 제대로 다스려야 하는 치당(治黨)이 필요하다. 시진핑 스스로 말하기를 ‘쇠를 두드리려면 자신부터 먼저 단련해야 한다(打鐵還需自身硬)’고 했다. 중국 공산당이 국가를 이끌려면 자신의 몸가짐부터 바로 해야 하는 것이다.



 왜 특히 시진핑 시기 들어 공산당부터 손을 봐야 하나. 마오 시대의 중국 인민은 배부르지 못하고 따뜻하게 입지도 못했다. 그래도 사회는 안정되고 관료는 청렴했다. 그러나 덩샤오핑 이후의 시대엔 등 따습고 배는 불러도 빈부격차는 확대되고 관리는 부패했다.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은 ‘망당망국(亡黨亡國)’ 운운의 걱정을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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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든 파리든 … ”고위층부터 시작



 이는 시진핑이 집권하자마자 공산당 쇄신을 위한 정풍운동을 기획한 배경이다. 총서기가 된 지 한 달도 안된 2012년 12월 초 고위 공산당원의 업무태도 개선을 위한 8항 규정, 즉 ‘당8조’를 제정했다. 회의 간소화, 근검 절약 등의 내용이다. 군부 고위층을 상대로 형식주의와 관료주의, 군대부패를 일소하라는 ‘군10조’도 하달했다. 금주령까지 내렸다.



 눈에 띄는 건 시진핑의 정풍운동이 고위층부터 시작한다는 점이다. 당8조는 당 서열 1~25위에 해당하는 중앙 정치국 위원들부터 솔선수범하라고 촉구했다. ‘장인이 일을 잘 하려면 연장부터 잘 다듬어야 하듯이’ 시진핑은 함께 일할 동료들의 의지부터 다졌다. 그리고 정풍운동의 주요 수단으로 정신교육과 부패척결이란 두 가지 수단을 택했다.



 2013년 새해 벽두부터 반(反)부패의 기치가 올랐다. 중앙기율검사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시진핑은 ‘호랑이든 파리든 다 때려잡겠다’고 포효했다. 중국 관료사회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4월엔 형식주의, 관료주의 향락주의 사치풍조 타파의 4풍 척결 운동을 일으켰다. 시진핑은 ‘거울 보고 옷 매무새를 똑바로 하며 몸을 씻어 병을 다스리라’는 주문까지 내놔 중국이 마오 시대로 복귀하고 있다는 말을 낳았다.



 본격적인 정풍운동은 그 해 6월 시진핑이 “민심의 향배가 당의 생사존망을 가를 것”이라며 군중노선교육실천활동을 전개하며 시작됐다. 모든 것을 군중에 의지해 처리한다는 군중노선은 민중의 정서를 이용해 자신의 정치목표를 이루려는 성격이 강하다. 시진핑은 전체 정치국원들과 함께 엿새 동안의 자아비판 활동을 하며 군중노선의 포문을 열었다. 석 달 후엔 허베이(河北)성으로 달려가 성 간부들의 자아비판을 독려했다. 당 중앙 차원에서 이뤄지던 정풍운동이 지방 고위 간부들로 확대됐다.



 올해 초엔 시진핑을 포함한 7명의 정치국 상무위원이 각자 맡은 현(縣)을 찾아 말단 행정 조직에까지 정풍운동의 바람을 일으켰다. 그 바람이 워낙 거센데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펼쳐지자 급기야 시진핑의 발걸음이 너무 빠르다는 지적이 원로들로부터 나왔다. 시진핑은 아랑곳 하지 않고 인터넷 유언비어와 학술부패 단속 등 정풍운동을 민간 차원으로까지 확대했다. 중앙기율위가 파견한 208개의 순시조는 전국을 훑었다. 그 결과 7만 4000여 명의 관료가 낙마했다.



관용차 등 관료 특혜 없애 9조원 아껴



 2년 가까이 전개되던 정풍운동은 지난 8일 시진핑이 그 종료를 선언하며 일단락됐다. 어떤 결과를 얻었나. 백성들은 우선 돈을 절약할 수 있었다. 관료들의 대표적 특혜로 꼽히던 3공 경비인 접대비, 관용차 운영비, 출장비 등에서 530억 2000만위안(약 9조 2336억원)의 비용을 절감했다. 근무하지도 않으면서 국가가 지급하는 각종 급료와 수당을 챙기던 이른바 놀고 먹던 관료만도 16만 2629명을 적발해 퇴출시켰다. 뇌물인 훙바오(紅包)를 받았다고 자진 신고한 공직자만 10만여 명에 이를 정도로 관가에 청렴 풍토를 조성했다는 긍정적 평가가 나온다. 또 불필요한 행정심의 절차를 없앤 것만 13만 7000건, 공문서는 190만 8000건이 줄었고 공무회의는 58만 6000건이 감소했다. 행정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면서 부패가 자랄 토양을 없앤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성과는 시진핑이 자신의 위상을 확고히 한 점이다. 중국에서 ‘마오덩시(毛鄧習)’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시진핑은 이미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과 같은 반열에 올랐다. 군사적으론 중국군 수뇌부 18명이 이례적으로 시진핑에게 충성 서약을 했고 조직적으론 다양한 소조를 만든 뒤 자신이 수장을 맡았다. 이론적으론 중국의 꿈(中國夢)을 내세워 중국의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이 시대의 진정한 리더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4중전회서 ‘법치’ 선언, 또 다른 도전





 정풍운동을 성공리에 끝낸 시진핑이 이제 추구하는 건 법치(法治)다. 정풍운동을 통해 겉에 드러난 썩은 부위를 도려냈으니 향후 제도화를 통해 부패의 싹이 자라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 공산당이 그 동안 강조해 온 ‘먼저 말단을 치료하고 나중에 근원을 다스린다’는 이야기와 맥을 같이 한다.



 지난주 열린 중국 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4중전회)의 주제가 ‘의법치국(依法治國)’을 내세운 건 우연이 아니다. 앞으론 부패척결과 정풍운동을 법과 제도의 틀에서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산당은 국가에 우선하고 공산당 당장(黨章·당헌)은 헌법(憲法)에 앞서는 게 현실이다. 공산당이 헌법의 범위 내에서 활동해야 한다고 중국 학자들은 말하지만 헌법에 대한 해석 권한은 여전히 공산당의 수중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전망이다. 중국은 이런 법치를 중국 특색의 법치라고 부르지 않을까 싶다. 공산당 일당제를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시진핑표 정풍운동의 궁극적 목적도 결국엔 ‘공산당이 장악한 붉은 강산의 색깔이 영원히 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귀결된다고 하겠다.



유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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