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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원수도 한배에 타면 돕는다

중앙일보 2014.10.27 00:10 종합 29면 지면보기
김현장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
언론은 대중의 신뢰를 먹고산다.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흐르는 약자의 눈물을 닦아 주고, 부조리를 고발해 우리 사회가 보다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는 믿음이 있어서다. 법원이 발부한 압수수색영장이 없더라도, 기자의 집요함에 설사 언짢더라도 당연히 협조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은 이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언론의 사회적 책임’도 이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호 사고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을 다룬 일본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의 글에서 언론의 존재 이유를 다시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언론에 보내는 대중의 믿음을 무참히 저버렸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공인 중의 공인이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공익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므로 뉴스의 초점이 된다. 사생활 역시 예외는 아니다. 대통령은 당선된 순간부터 모든 것을 공개하고, 검증받고, 역사에 기록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대통령의 사생활을 다룰 때는 정보가 제한적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최소한의 요건은 갖춰야 한다. 확인된 사실을 6하원칙을 지켜 보도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가토 전 지국장의 글은 최소한의 요건도 갖추지 않았다. 저잣거리 필부조차 입에 올리기 주저할 헛소문을 기사로 사칭해 내놓은 것이다. 이미 검찰 조사로 가토 전 지국장의 주장이 사실무근으로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기자와 언론사는 문제의 기사를 취소하지도, 정정하지도, 사과하지도 않고 있다.



 입장을 바꿔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해 보라고 그에게 묻고 싶다. 만약 일본 총리나 일왕에 대해 대한민국의 한 언론인이 헛소문이나 근거 없는 이야기들을 기사화한다면 가토 전 지국장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이러한 점에서 가토 전 지국장의 행동과 그 뒤를 이은 처신들은 언론인으로서 최소한의 도의도 갖추지 못한 행동이며, 이웃 나라의 국민과 국가원수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조차 없는 행동이라고 할 것이다.



 더 개탄스러운 것은 이 기사에 대응하는 우리 내부의 태도다. 해외의 한 언론인이 근거 없는 풍문과 유언비어를 바탕으로 우리 대통령에 대해 차마 입에 담기조차 불편한 기사를 게재했는데, 이에 대해 잘못을 지적하고 대응하려 하기는커녕 오히려 동조하고 있다. 오보의 피해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순식간에 끓어오르는 잘못된 여론은 설사 그것이 오보라고 밝혀지더라도 쉽게 식지 않은 채 제2, 제3의 헛소문을 재생산한다. 그리고 오보를 내놓은 언론사의 명예는 땅에 떨어진다. 무엇보다 오보 당사자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야 한다. 대부분의 언론사가 오보에 대해 엄중히 대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산케이신문의 보도로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 조롱거리가 됐고, 순식간에 언론 탄압국이 돼 버렸다. 그리고 그 이후 지금까지의 행동으로 봤을 때 그들에게서 더 이상 언론의 양심을 기대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이웃 나라의 한 언론인으로부터 모욕적인 대접을 받았다. 세월호 사고로 힘든 시기를 겪고 이를 추스르고 있는 이웃 국가의 원수를 상대로 사실이 아닌 보도를 했고, 이로 인해 국론이 분열돼 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물론 민주사회에서 내부적으로는 다양한 주장을 개진할 수 있고, 또 의견 차를 좁혀 나가는 과정에서 당연히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하지만 이번 사태와 같이 외국 언론의 무책임한 오보로 인해 불필요한 논란만 가중되는 상황에서는 단호하게 하나의 목소리로 이를 지적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국민대통합의 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돌아보면 우리 역사에서 국민대통합을 통해 국가적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 나간 사례는 많았다.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많은 다른 국가들이 대한민국호가 침몰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지만 우리는 금 모으기 운동 등을 통해 온 국민이 함께 힘을 합쳐 세계 어느 다른 나라보다 이른 시일 내에 금융위기를 극복해 냈다.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사고로 서해가 오염되고 주민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온 국민이 함께 힘을 모아 이겨 낸 경험이 있다. 또 세월호가 침몰해 온 국민이 아파하고 가족들을 잃은 슬픔에 빠져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 국민은 함께 아픔을 나누고 다시 일어서려 애쓰고 있다.



 이러한 중요한 시기에 우리는 가토라는 한 외국 언론인의 근거 없는 비방으로 인해 국론이 분열되고 있다. 이에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가치는 바로 서로 마음을 모아 외부의 어려움에 대응하고 내부적으로 갈등을 치유하는 국민대통합이라고 할 것이다. ‘원수도 한배에 타면 서로 돕는다’고 했다. 작금의 참담한 사태에 우리는 서로 돕고 있는가. 우리를 깔보는 모독에 우리는 왜 뭉치지 못하는가.



 옛말에 죽어 봐야 지옥 맛을 안다는 속된말이 있는데, 우리는 경술국치(庚戌國恥)와 같은 불행을 당한 후에야 정신을 차리려는가.



김현장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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