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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착한 정부는 나쁜 정부다

중앙일보 2014.10.27 00:10 종합 30면 지면보기
김종윤
중앙SUNDAY 경제산업에디터
분명 착한 마음으로 시작했을 게다. 그렇게 믿는다. 눈치 빠른 고객은 재빨리 움직여 보조금을 확실히 챙겼다. 어수룩한 고객은 뭐가 뭔지도 모르고 달라는 대로 주었다. 누구는 단말기를 공짜로 구입했는데, 누구는 100만원 다 주고 샀다. 세상에 이렇게 불공평할 수가. 착한 정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은 정의를 추구했다. 소비자가 약삭빠르든 굼뜨든 차별 없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보조금을 지급하게 했다. 공평하다. 이제 불만이 사라져야 한다. 그런데 아니었다. 대부분의 고객은 전보다 비싼 값에 이동전화기를 사게 됐다. 시장에서 경쟁이 사라진 결과다. 모두가 호갱님(호구+고객)이 됐다.



 단통법 파동의 배경에는 ‘관(官)은 민(民)을 다스려야(治)한다’는 투철한 의식(?)으로 무장한 정부 관료들이 있다. 이 법은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국회의원을 앞세워 만들었다. ‘청부 입법’이다. 관료들은 자신을 정의의 사도로 생각했다. 문제는 여기서 생겼다. 그들은 국민보다 위에 있고 더 우수하다고 생각한다. 뭘 모르는 소비자를 가르치고 이끌어야 한다는 신념에 사로잡혀 있다. 자신들의 판단과 결정은 모두 국민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통신 과소비를 못하도록 법을 만드는 게 자신들의 임무라고 믿었다.



 여기에다 충성심까지 투철했다. 가계 통신비 절감은 대통령의 공약이다. 보스가 약속을 했으니 부하들은 물불 가리지 않고 약속을 지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 관이 민을 찍어 누르면 된다는 오만과 착각에 빠졌다. 보조금 규제라는 무리수는 이렇게 태어났다. 무리수는 협박으로 이어졌다.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이동통신사와 휴대전화제조사 대표들을 급하게 불러 모아 쏘아붙였다. “단통법을 기업의 이익만을 위해 이용한다면 정부는 극단적인 대책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 과거 독재시대 정부가 민간기업을 압박하는 수법과 똑같다.



 물론 이들은 억울하다고 볼멘소리다. 사익(私益)이 아니라 국익(國益)을 위해서 한 일이라는 항변이다. 그럼 생각을 바꿔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정부가 나서야 하나. 통신 과소비라는 개념이 뭔지 모르겠거니와 과소비한다고 정부가 나서 국민을 가르치겠다는 게 맞는 말인가. 단통법 도입으로 인해 미래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결과적으로 기존의 ‘요금 인가제’라는 채찍에다 ‘보조금 규제’라는 몽둥이까지 갖게 됐다. 자신들의 규제권만 더 키운 것이다. 시장에선 요금 경쟁, 보조금 경쟁이 사라졌다. 경쟁이 사라진 시장엔 소비자의 부담만 남았다. 대신 이득의 대부분은 통신사업자들의 몫이 됐다. 가격이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단지 정보일 뿐이다. 나쁜 건 가격을 조정하는 짓이다. 시장과 소비자를 속이기 때문이다. 착한 정부인 양 하지 마라. 오히려 소비자에게는 독이 됐다.



김종윤 중앙SUNDAY 경제산업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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