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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매력적인 자기소개

중앙일보 2014.10.27 00:10 종합 31면 지면보기
커피전문점이 붐빈다. 30대 초반 여성이 카운터 쪽으로 다가오더니 반갑게 인사한다. “선생님, 저 은주예요.” 기억의 실타래가 풀린다. 7~8명이 듣는 소규모 강좌여서 강의실이 아니라 연구실에서 수업을 했다.



 오리엔테이션을 겸한 신입생 교양강좌였다. 격주로 출석만 하면 학점을 주니 사제 간에 부담 없는 수업이었다. 내가 정한 강의 제목은 ‘매력적인 자기소개’였다. “연애하는 법 가르쳐주는 수업인 줄 알고 신청했어요.” 제자는 내가 시킨 커피를 들고 일행 옆자리에 앉는다.



 이제부턴 기억의 퍼즐 맞추기다. 첫 수업 때 한 말. “지금까진 부모님이 키우셨지만 이제부턴 자기가 자기를 키워야 합니다. 키워서 작품, 상품이 되어야 합니다. 완성도를 높여야 하고 매출도 올려야 합니다. 그래야 명품이 되죠.” 인품과 기품 대신 작품과 상품이라니. 의아한 표정을 일단 가라앉혀야 한다. “자아실현이 먼저지만 원하는 일터에 들어가려면 말과 글, 표정으로 남들을 끌어당겨야 합니다.”



 수업은 3단계로 진행됐다. 첫째로 내 인생의 10대 뉴스를 뽑고 그것이 자신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쓰도록 한다. 추상적인 단어는 빨간 펜으로 지워주고 흔한 표현은 생동감 있는 단어로 바꿔준다. 둘째로 자기가 일하고 싶은 직장을 구체적으로 선정한 후 자기소개서를 쓰게 한다. 영상을 보듯 시나리오처럼 쓰는 게 요령이다. 셋째로 서류가 통과되었다고 가정한 후 ‘문 열고 들어간 후 첫 번째 질문’(“간단히 자기소개해 보세요”)에 대한 답을 3세트로 준비한다. 1분, 2분, 3분 단위로 자기를 입체적으로 소개하고 그걸 동영상으로 찍어서 함께 시청한다. 이 과정을 몇 차례 연습하다 보면 학기 말엔 부쩍 ‘커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때 익힌 기술(?)로 회사에 취직했죠. 늘 강조하셨잖아요. 당당하지만 교만하지 않게, 겸손하지만 비굴하지 않게.” 명함을 내미는 손에 자신감이 넘친다. 보람찬 순간이다. 맹자가 따로 있나.



 “소개할 땐 소 3마리 그리라고도 하셨죠.” 이른바 3소는 소질, 소양, 그리고 소신이다. “소망을 희망으로 바꾸라고 하신 말씀도 기억나요.” 소망은 혼자 간직하는 것이지만 희망은 남에게 나눠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소망이 희망이 될 때 세상은 넓어지고 밝아진다는 얘기도 했었다. 별 걸 다 기억하는 제자와 즐겁게 복습하다 보니 커피가 식는 줄도 몰랐다. 커피는 미지근해졌어도 추억이 달아오르니 오늘은 찻값이 아깝지 않다.



주철환 아주대 교수·문화콘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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