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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뉴스 인 뉴스 <253> 신문 기사로 본 서태지 22년

중앙일보 2014.10.27 00:05 경제 10면 지면보기
김효은 기자
가수 서태지(42)가 9집 앨범을 발매하며 5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1990년대 서태지는 ‘문화대통령’으로 불리며 음악뿐만 아니라 대중문화 전반에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98년 첫 솔로 앨범 발표 후 3~4년마다 새 앨범을 내면서 음악적 실험도 거듭했습니다. 서태지의 화려했던 지난 22년을 본지에 실렸던 과거 기사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신문 한 장으로 읽는 전설의 일대기입니다.


가요계 일대 반란 → 은퇴 선언 충격파 → 솔로 변신 → 공백 & 컴백
대중음악계 변화의 선두
앨범마다 새로운 장르 시도
‘문화대통령’ 내려놓았지만
여전히 화제의 한가운데



1990년대 양현석·이주노와 함께 ‘서태지와 아이들’로 활동하던 모습. [사진 서태지컴퍼니, 중앙포토]


① 서태지와 아이들, 랩 음악 “바람몰이”



 잔잔한 발라드풍의 노래들이 대종을 이루는 대중음악계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랩 음악이 일대 반란을 시도하고 있다. 서태지의 자작곡 ‘난 알아요’ ‘환상 속의 그대’는 데뷔 2개월 만에 차트 1위를 차지했다. 그들이 지칠 줄 모르고 내뱉는 언어와 폭발적인 율동은 누구라도 순간적인 환각을 경험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서태지는 한국어로도 ‘랩’이라는 기이한 대중음악이 가능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1992년 6월 23일자 본지 기사)



 →서태지는 이주노·양현석과 함께 ‘서태지와 아이들’로 92년 3월 데뷔했다. 당시 신문은 “서태지는 강렬한 랩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고, 컴퓨터와 신시사이저에 의한 기계적 연주에 심취한다거나 포스트모더니즘적인 뮤직비디오에 빠져들고 있는 90년대식 신세대를 대표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랩은 너무 낯설고 어려워 장사가 안 된다는 불문율도 있었지만, 서태지가 들고 나온 ‘난 알아요’는 그런 편견을 불식시켰다. 데뷔 앨범은 발매 석 달 만에 100만 장이 팔려나갔다. 콘서트장엔 소녀팬들이 몰려들었고, 서태지 패션까지 유행했다. 헐렁한 티셔츠에 통 넓은 반바지를 입고 벙거지 모자를 쓴 10~20대들이 거리를 활보하기 시작했다. 10대들의 우상, 서태지의 등장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② 신세대론-서태지 신드롬



 서태지는 중학생 때부터 혼자 작곡 습작을 시작했다. 고교 2학년 때는 헤비메탈 그룹 ‘시나위’의 베이스 연주자로 발탁돼 데뷔하기 전까지 3년간 무대경험을 쌓았다. 이때 그는 이미 작사·작곡·편곡·노래·춤·믹싱작업까지 혼자 해내는 실력을 쌓고 있었다. 서태지·이주노·양현석의 공통점은 또래들이 대학입시에 파묻혀 있을 때 학업을 작파하고 자신의 진로를 찾아나섰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분야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굳혔다. 고교 때 성적이 바닥을 기었던 서태지는 “대중음악을 가르치는 대학이 없어 갈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다”고 한다. 신세대들은 이들의 이러한 행동을 프로 기질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1994년 2월 18일자)



 →93년 ‘하여가’가 수록된 2집이 1집에 이어 밀리언셀러를 달성하면서 서태지는 하나의 신드롬으로 명명된다. 서태지는 음악판의 여러 관례를 바꿔놓았다. 공백기간을 갖고 앨범 작업에 몰두한 것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처음이었다. 이들은 2집을 미국·일본·필리핀 등지에서 녹음했고 제작비만 3억원을 투자했다. 콘서트·뮤직비디오까지 꼼꼼하게 준비하는 전문성은 70~80년대 스타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게다가 고교 중퇴라는 학력은 자유로운 X세대에게 지지를 받았다. 물론 인기의 반대급부도 있었다. 당시 ‘발해를 꿈꾸며’ ‘교실 이데아’ 등이 수록된 3집 앨범은 테이프를 거꾸로 돌리면 사탄의 언어가 들린다는 괴소문이 돌았다. 기성세대로부터 견제를 받기도 했는데 그것은 바로 검열이었다.



③ 칼럼-공륜 수정 요구, 신곡 ‘시대유감’



 공연윤리위원회(공륜) 심리를 통과하지 못해 이미 녹음이 끝난 가사를 삭제한 채 연주로만 발표된 ‘시대유감’이란 곡은 말 그대로 유감으로 남는다. 공륜은 “가사내용이 전반적으로 부정적”이라는 지적과 함께 수정을 요구했지만 서태지는 노랫말을 전면 삭제, 간접적으로 항의의 뜻을 나타냈다. 서태지는 “많은 청소년들이 희생된 삼풍백화점 붕괴 등 일련의 대형참사를 보면서 기성세대의 가식과 무책임을 질타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참사 자체에 대한 분노는 차치하더라도 변명과 책임회피에만 급급한 어른들의 행태를 보면서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라고 느낀 이가 비단 서태지 뿐이었을까. (1995년 10월 11일자)



 →90년대 서태지가 우리 사회에 던진 충격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검열이다. 4집 수록곡 ‘시대유감’은 가사 내용 때문에 사전 검열을 당했다. 서태지는 당시 본지 인터뷰에서 “‘교실이데아’보다 심하지 않은 가사들인데 수정지시 통보가 왔어요. 가사를 바꾼다면 원래 의도가 훼손되기 때문에 빼버리기로 했어요. 제목 그대로 ‘시대유감’이 된 셈이죠”라고 말했다. ‘컴백홈’은 그 사회적 여파가 더 컸다. 가출 청소년들이 이 노래를 듣고 집으로 돌아온다는 내용의 다큐멘터리가 제작될 정도였다. 하지만 이 곡 때문에 음반사는 공륜으로부터 고발을 당했다. ‘또다시 제압은 시작되었지’란 가사를 사전 심의 때와 달리 ‘부모의 제압’으로 수정해 앨범을 발매했다는 이유였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던 사전심의제도는 같은 해 11월 완전히 폐지됐다.



④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



96년 서울 성균관대 유림회관에서 은퇴 발표를 하고 있는 서태지와 아이들. 이들은 “오늘로 음악생활을 마감하고 평범한 젊은이로 돌아가겠다”며 눈물의 기자회견을 했다. [사진 서태지컴퍼니, 중앙포토]


 은퇴선언과 잠적으로 팬들을 충격 속에 몰아넣었던 ‘서태지와 아이들’이 96년 1월 31일 오전 11시 서울 성균관대 유림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오늘자로 4년 동안의 음악생활을 마감하고 대한민국의 평범한 젊은이로 돌아가겠다”고 밝혔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새로운 음반을 만드는 과정은 뼈를 깎는 고통의 연속이었다”며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지금 춤을 소화하기에도 체력적인 한계를 느낀다”고 은퇴 이유를 설명했다. (1996년 2월 1일자)



 →서태지와 아이들은 정상의 자리에 있을 때 은퇴를 선언했다. 서태지는 보도자료를 통해 “우리를 질책한 어르신들께 걱정 끼쳐드린 점을 사죄한다”며 “저희들은 몸과 마음의 쉼터가 부족한 청소년들에게 보다 자유롭고 넓은 세계를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어르신들이 걱정하신 많은 부분이 저희 방식의 미숙함에서 비롯됐음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당시 이 고해성사는 신문 사설에서 다뤄질 정도로 파장이 컸다. 기성세대에 저항하려던 서태지도 결국 자본의 손아귀와 기성 대중문화에 의해 굴복됐다는 것이다. “청소년을 옴짝달싹 못하게 옭아매는 어른들에 대항해 누가 항변과 위로를 해줄 것인가”라는 통탄이 이어졌다. 2년 후 서태지는 솔로 앨범을 들고 가요계로 돌아온다.



⑤ 새 앨범 연주서 프로듀싱까지 ‘원맨 밴드’



2008집 솔로 8집 앨범 발매 기념 콘서트. [사진 서태지컴퍼니, 중앙포토]
 서태지의 신화는 계속될 것인가. 일단 다시금 ‘서태지 태풍’이 몰아칠 것으로 예상하는 쪽이 다수다. 워낙 ‘선구자’의 이미지가 강한데다 그의 음악적 재능에 기대를 거는 대중이 많기에 그렇다. 특히 여기에 댄스음악의 침체 속에서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하기 위해 고심해온 가요계 전반의 이해와 맞아떨어진다는 시의성도 있다. 하지만 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서태지 공백 이후 H.O.T 같은 새로운 스타들이 10대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1998년 6월 25일자)



 →96~99년은 ‘포스트 서태지 시대’로 기록된다. IMF 체제 이후 가요계는 전반적으로 하강국면에 접어들면서 대중음악도 기존 장르의 흥행 문법을 재생산하기 바빴다. 당시 음악평론가 강헌씨는 “80년대 조용필, 90년대 초반 서태지가 보여준 아티스트적인 카리스마가 무너지고 주류 가요계는 흥행 논리에만 빠져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서태지의 컴백은 초미의 관심사였다. 당시 솔로로 나선 서태지는 ‘서태지와 아이들’ 때의 댄스, 힙합 음악과 달리, 록이나 일렉트로닉 장르에 집중한다. 3~4년마다 깜짝 등장해 앨범을 발표하고 사라졌지만 인기는 꺾이지 않았다.



⑥ 서태지 또 변신



 음반시장에 서태지 바람이 뜨겁다. 교보문고 음반매장의 1일 최고 판매기록은 H.O.T의 1300여 장. 이날 출시된 서태지 6집은 72만 장이었다. 서태지의 새 음반은 예상대로 헤비메탈과 랩을 결합한 하드코어 장르였다. “미친 매니아들의 세상 밝은 미친 세상”이란 가사가 눈에 띄는 ‘울트라맨이야’는 그가 줄곧 노래를 통해 드러내 온 사회 비판정신을 그대로 잇고 있다. (2000년 9월 29일자)



 →서태지는 항상 변화의 선두에 있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앨범부터 5장의 솔로 앨범까지 늘 새로운 장르를 시도했다. 서태지는 최근 9집 앨범 발매 기자간담회에서 “가요계 최초의 수입업자로 불리면 좋겠다”라며 “해외에 다양한 장르를 들여와 팬들에게 들려주는 게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반면 여러 노래를 ‘레퍼런스(참고)’로 삼다 보니 표절 논란도 끊이질 않았다. 이에 대해 서태지는 “표절은 절대 아니다”라며 “제 앨범이 나오면 팬과 안티의 논쟁이 시작된다. 음악에 대해서 다양한 논쟁이 벌어지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말한 바 있다.



⑦ 서태지 9집 ‘콰이어트 나이트’로 컴백



지난 18일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9집 ‘콰이어트 나이트’ 발매 기념 콘서트. 이날 서태지는 신곡 ‘크리스말로윈’부터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히트곡 ‘하여가’ ‘컴백홈’까지 18곡을 소화했다. [사진 서태지컴퍼니, 중앙포토]


 →8집과 9집 사이 5년이란 공백은 서태지의 신비감이 걷히던 시기다. 과거 비밀 결혼과 이혼 사실이 대중에게 알려졌고, 지난해엔 배우 이은성씨와 재혼했다. 9집 앨범 발매와 함께 그는 각종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앨범 홍보에 나섰다. 올해 태어난 딸 아이에 대한 이야기도 서슴없이 밝혔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새 앨범의 뮤즈는 딸”이라며 “딸 아이가 세상을 여행하면서 보고 듣는다는 컨셉트로 동화적으로 구성했다”고 말했다. 신곡 ‘소격동’과 ‘크리스말로윈’은 음원차트에서도 괜찮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과거 ‘문화대통령’급의 신드롬은 아니지만 서태지는 여전히 화제의 중심에 있다. (2014년 10월 20일)



김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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