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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도 반했답니다, 반짝반짝 이 느낌

중앙일보 2014.10.27 00:05 경제 2면 지면보기
위그코리아 서성인 대표가 보는 각도에 따라 다채롭게 색상이 변하는 특수소재 루비올레로 만든 구두 샘플을 들어올리며 활짝 웃고 있다. [부산=송봉근 기자]

20일 오후 부산 사상구 괘법동의 특수섬유업체 위그코리아. 임대료가 싼 2층에 제작 공장과 붙어있는 사무실은 작고 허름했다. 직원은 4명 뿐. 부산사상공업단지에 있는 수많은 영세업체 중 하나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곳은 샤넬의 원단 담당 수석 디자이너가 팀원 5명을 대동해 찾아오고, 루이비통·겐조 같은 글로벌 명품업체가 거래하는 곳이다. 사무실에는 샤넬·나이키·아디다스·꼼데가르송·아쉬처럼 세계적인 브랜드에서 위그코리아의 ‘루비올레’ 소재를 이용해 만든 제품이 여기저기 놓여있었다.

 “이렇게 다채롭고 고급스러운 색감을 아직은 우리 밖에 못만드니까 글로벌 브랜드에서 손을 내미는 거지요.”

 위그코리아 서성인(45) 대표가 코치·아크리스·빅토리아시크릿·룰루레몬 같은 고객 목록을 보여주며 말했다.

 루비올레는 보는 각도에 따라 보랏빛·분홍빛·연두빛 등으로 색상이 바뀌면서 반짝거리는 특수 소재다. 원천 기술은 미국 3M이 개발한 ‘래디언트 라이트 필름(radiant light film)’이다. 밀도가 다른 256겹의 필름층을 머리카락보다 얇은 두께로 정밀하게 결합해 빛이 굴절을 반복하면서 다채로운 색을 내게 만들었다.

 “제가 한국3M의 부산지역 영업·마케팅 담당 과장이었어요. 2006년에 3M 필름이 나왔는데, 이듬해에 회사 차리겠다고 사표를 냈죠. 이걸로 응용 제품을 만들면 되겠다 싶었어요.”

세계적인 브랜드 샤넬이 반짝이는 루비올레 소재로 만든 각종 의류와 액세서리, 구두로 패션쇼를 열면서 위그코리아가 주목을 받았다. [사진 샤넬]
 루비올레는 이 무지개색 필름을 다른 재료에 부착해 스팽글·가죽·실·합성가죽·천은 물론이고 테이프나 튜브, 가루형태로까지 만들어낸 응용 제품이다. 다양한 형태와 소재로 가공할 수 있기 때문에 의류·신발 뿐 아니라 건축·인테리어나 포장 자재로도 쓴다. 디올의 색조 화장품 ‘어딕트’의 포장상자, 걸그룹 ‘2NE1’의 1집 앨범 재킷에 루비올레를 사용했다.

 서 대표는 “불황일 수록 사람들은 번쩍거리고 화려한 제품을 선호하니까 꼭 잘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07년은 세계 금융위기로 이어지는 장기 불황의 전조가 보이던 때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무엇보다 기술력이 문제였다. 12년 동안 3M에서 실무를 하면서 섬유 기술에 대해 이론적으로는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서 대표가 기술자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국해양대 항해학과 88학번이니 대학 전공도 섬유기술과는 거리가 멀다.

 “실 공장, 천 공장, 파이핑 공장… 예전 거래처였던 곳을 다니면서 ‘해외 마케팅은 제가 할테니 사장님의 기술을 접목해 달라’고 설득했어요. 하지만 이미 회사도 나왔는데 그 분들이 저를 뭘 보고 믿겠어요. 정말 두 손 모아 빌고 무릎도 여러번 꿇었어요. 그렇게 1년을 다녔어요.”

 지금도 루비올레의 생산은 각 공장에 위탁해서 한다. 필름을 부착하는 기술과 서로 다른 소재끼리 결합하는 아이디어를 위그코리아에서 주도하는 방식이다.

 2008년 첫 루비올레 제품이 나왔다. 처음부터 해외 시장이 목표였다. 이름 없는 중소기업 제품인만큼 해외에서 먼저 잘돼야 한국 대기업도 돌아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패션성이 강한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를 첫 목표로 삼았다.

 “무조건 배낭 하나 메고 독일 아디다스 본사로 찾아갔어요. 안내데스크에 제품을 보여주면서 ‘내가 이런 좋은 제품을 개발했으니, 담당자를 소개해달라’고 했지요. 당연한 일이겠지만 안 들여보내 주더라구요.”

 매일 아디다스 본사 안내데스크 앞에서 하루종일 기다리는 일을 반복했다. 닷새째 드디어 담당자를 만날 수 있었다. 가공 기술은 독특한데 가격대가 높다고 했다. 루비올레는 일반 천 소재의 3~4배 가격이다.

 “배짱을 부렸어요. 아디다스 컨셉트에 맞을 것 같아서 가져왔는데, 할 수 없이 나이키로 가야겠다고요. 가격대는 높지만 어차피 일부분에만 디자인 포인트로 쓸테니 전체 비용은 많이 안들면서 부가가치는 커지지 않겠느냐고 설득도 했죠.”

나이키가 ‘수퍼볼 한정판’으로 내놓은 루비올레 소재의 운동화. 위그코리아는 지난해 4월 나이키에 정식 공급업자로 등록했다. [사진 위그코리아]
 3개월 뒤에는 미국 포틀랜드의 나이키 본사도 찾아갔다. 결국 아디다스·나이키 양쪽에 납품하는데 성공했지만 성과가 크지 않았다. 글로벌 브랜드는 자기 회사와 계약한 정식 공급업자(벤더)를 통해서만 납품을 받기 때문이었다. “정식 공급업자를 통해서 납품하다보니 우리 실적으로 남지도 않고, 공급업자가 우리 제품을 적극적으로 팔아주지도 않더라구요.”

 설상가상으로 접착력이 다소 떨어지는 제품이 일부 나오는 바람에 배상을 하기도 했다. 서 대표가 직접 기술을 배우기로 결심한 계기다. 그는 2009년부터 5년 동안 신발피혁연구소에서 접착 기술을 익혔다. 2010년에는 접착 기술로 특허도 받았다.

 접착 기술이 안정된 뒤 경쟁 프리젠테이션을 통과해 그해 9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규모의 섬유전시회 ‘프리미에르 비종’에 참가할 수 있었다. 이 전시회에서 루비올레가 샤넬 디자이너의 눈에 띈 것이다. 샤넬의 2012년 봄·여름 패션쇼에 루비올레의 스팽글·리본·테이프를 이용해 만든 재킷·원피스·스커트·조끼 등 숱한 작품이 대표작으로 무대에 올랐다. 서 대표는 “우리가 운동화 끈 용도로 만든 제품을 엮어서 트위드 재킷과 조끼로 만들어낸 샤넬의 창의력에 감탄했다”고 말했다. ‘샤넬 반짝이’에 다른 명품 브랜드가 매료되면서 계약이 순조롭게 이어졌다.

 서 대표는 1년에 100일 이상 해외에서 보내고 20개 이상의 전시회에 참가한다. 2NE1의 앨범 재킷은 서울 디자인페어에서 YG엔터테인먼트 관계자의 눈에 띄어 만들게 됐다. 나이키와의 정식 공급 계약도 2012년 9월 세계적인 아웃도어 관련 전시회인 ‘노스웨스트 의류·신발 전시회’를 통해 할 수 있었다. “당시 유행하던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틀어놓고 직원들이 번쩍이는 우리 소재 신발과 옷을 입고 말춤을 춰가며 요란하게 홍보했어요. 신나고 재미있는 소재라는 컨셉트와 맞아 떨어진 거지요.” 전시회가 열린지 7개월만인 지난해 4월 나이키 정식 공급업자로 등록했다. 지난해 9월에는 음향기기 브랜드인 ‘비츠 바이 닥터드레’, 올 8월에는 애플 본사에 정식 공급업자로 이름을 올렸다.

 서 대표는 “글로벌 브랜드의 정식 공급업자가 된 지금에서야 제대로 출발점에 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공급업자를 통해 팔고 일부 제품에 소량만 사용되다보니 지금까지는 매출이 적었다는 것이다. 해외에서 이름을 얻은 덕에 삼성전자 같은 국내 대기업에서도 찾기 시작했다. 그는 “최근 해외 전시회에서 이탈리아 업체가 우리 소재를 베낀 걸 봤다”며 “시장이 더 커질 수 있도록 카피 업체가 어서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며 활짝 웃었다.

부산=구희령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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