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민족의 얼」 담길 「압제의 상징」중앙청의 「민족박물관」…그 규묘·직재·전시계획을 보면

중앙일보 1982.03.16 00:00 종합 3면 지면보기
국립중앙박관의 중앙청이전은 한민족의 유구한 문화사를 새롭게 할 하나의 혁명적 쾌거다.

중앙청건물을 보수, 새로운 자리를 마련하게 된 민족박물관은 우선 한국이 5천년 역사를 지닌「문화대국」임을 세계에 과시할 수 있는 양적인 문화시설확충의 의미를 갖는다.

5백억 들여 현대화|전시장 5배로 커져|전시물 확충…관장비롯 직급 격상

이번 국립 중앙박물관의 이전은 88서울올림픽에 대비한 문화제건의 마련이 직접적인 중요 배경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국립박물관의 시설 및 규모는 국력신장이나 소장 문화재의 질·양에 비추어 초라한 곁방살림을 면치 못했던게 사실이다. 따라서 박물관시설과 기능의 확대는 한국문화제의 오랜 숙원이기도 했다.

1945년말 문을 연 국립중앙박물관은 그동안 경복궁-덕수궁-남산민족박물관-경복궁으로 네차례나 옮기면서 6·25전쟁중에는 7천여점의 유물을 유실하는 등 어려운 수난의 역정을 거듭했다.

72년 8월신축, 완공된 현 경복궁내의 건물은 연건평 4천 4백평에 전시실이 1천 3백 90평에 지나지 않아 시립박물관에 어울리는 정도였다. 중앙청의 연건평은 9천6백평-.

따라서 민족박물관은 전시실규모가 5배이상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정부당국은 3백억원의 보수비를 투입, 냉·난방과 습도조절 등의 현대적 시설을 완비할 예정이어서 더욱 기대가 크다.

시실확충에 따라 중앙박물관의 직제도 큐레이터시스팀(학예연구직제)과 행정관리직으로 이원화하고 전시·발굴조사·교육 등의 박물관 3대기능을 대폭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관장 직제도 현 별정직 1급보다는 훨씬 격상돼 최소한 차관급이상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현재 1실, 1국, 2부, 3과에 2백 50여명인 중앙박물관의 기구가 이번 이전으로 청사관리직을 포함한 기구의 확대에 따라 5백명이상의 직원을 갖게된다는 점에서 불가피할 것 같다.

일본 동경박물관의 경우 전관장이 문부성차관출신이었고 관례적으로 관장은 차관이상의 경력을 갖는게 통례다.

그리고 관장은 행정관리직이고 학예연구직출신이 관장을 맡는 경우란 거의 없다.

중앙박물관장의 직급 격상문제는 문화계가 오랫동안 갈망해 온 것이기도 하다.

김재원박사(초대 국립중앙박물관장)와 김원룡교수(서울대·전 국립중앙박물관장)도 다같이『중앙박물관의 이전과 함께 관장직급이 적어도 차관급이상으로 격상되고 학예연구직의 대폭 충원이 우선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한국에서 근대 박물관이 등장한 것은 70년 남짓하다.

1908년 9월 대한제국의 마지막 임금인 순종이 창경궁(현 창경원)안에 이왕가박물관을 발족시킨게 그 효시였다.

이왕가박물관은 다음해 11월 동·식물원과 함께 일반에 공개돼 비로소 박물관 본연의 전시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1915년 일제가 물산공진회를 개최하면서 세운 미술관을 박물관으로 개관함으로써 총독부 박물관이 시작됐다.

경주 고적보존회가 구 용사를 이용해 문울 열었던 경주박물관(1913년), 부여박물관(1929년), 공주박물관(1934년) 등은 그 후 모두 총독부박물관 분관으로 흡수됐고 1940년대에는 개성·평양에 부립박물관이 개설됐다. 이왕가박물관은 1938년 덕수궁에 이전, 이름을 이왕가미술관으로 개칭했다.

8·15해방과 함께 일제총독부박물관자리에서 문을 연 국립중앙박물관은 경주·부여·공주분관과 46년 개성부립박물관을 분관으로 홉수, 모두 4개의 분관을 가졌다.

경복궁 중앙박물관은 6·25전쟁 중 1·4후퇴를 맞아 4차(50년 12월∼51년 5월)에 걸쳐 덕수궁 이왕가미술관의 중요 유물을 포함해 소장 문화재를 부산에 대피시켰다가 53년 다시 서울 남산민족박물관으로 환도시켰다.

중앙박물관은 53년 6월 남산에서 덕수궁 석조전으로 이전, 이왕가미술관과 자리를 나란히 하며 72년 8월 현경복궁박믈관을 신축, 이전할 때까지 「덕수궁시대」를 맞았다.

69년에는 이왕가 박물관이 국립중앙박물관에 통합됐다.

덕수궁시대의 중앙박물관 업적으로는 미국 8개도시와 유럽 5개국을 순회한 국보문화재순회전-.

60년대까지 신생국박물관시대를 면치 못한 국립박물관은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시설확장을 벌여 부여(71년), 중앙박물관(72년), 공주(73년), 광주박물관(78년) 등을 신축함으로써「중진」의 면모를 갖추었다.

국립박물관의 시설확총은 1도 1박물관주의로 현재도 계속 진행돼 오는 84년까지 제주자연사박물관·진주·청주박물관 등을 새로 건립할 예정이다.

중앙박물관이 72년 이후의 경복궁시대에서 남긴 가장 큰 업적은 『한국미술 5천년전』의 일본순회전(76년)과 미국 7개도시 순회전(79년 5월∼81년 9월) 을 손꼽을 수 있다.

이제 5백억원(보수비 3백억, 이전비 2백억)을 들여 중앙청자리에 이전, 이름을 민족박물관으로 바꿀 국립중앙박물관은 찬란한 민족문화사를 다시 한번 일깨우는 계기일 뿐만 아니라 새문화 창조의 구심적 기능을 할것으로 크게 기대된다. <이은윤기자>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