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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함 속의 가시 세상은 변했지만 서태지 혼은 여전

온라인 중앙일보 2014.10.26 06:54



5년만에 돌아온 '문화 대통령'

서태지가 돌아왔다. 5년 만이다. 오랜만에 복귀한 서태지의 모습은 믿을 수 없을 만치 그대로다. 인터넷을 떠도는 ‘뱀파이어설’이나 ‘우리만 늙냐?’는 ‘태지매니아’들의 애교 섞인 하소연도 공감이 갈 정도다.



하지만 그의 ‘방부제 미모’와 달리 많은 게 변했다. 문화계 전반의 흐름도, 음악을 소비하는 풍토도 완전히 바뀌었다. 수년간 쏟아진 사생활에 관한 가십들은 그의 이미지를 처참히 끌어내렸다. 예전만 못한 반응, 쏟아지는 악플, 뭘 해도 욕먹는 분위기에서 서태지는 컴백을 했다.



그래서일까. 18일 잠실 주경기장 컴백 콘서트로 오랜만에 무대에 선 서태지에게선 어딘지 뻣뻣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90여 분의 짧은 공연 시간 동안 그는 멘트마저 최소화한 채 뭔가 조급한 듯 열여덟 곡을 내리 부르기만 했다. 신곡을 낯설어 하는 관객들에게 “내 말 안 들려요? 생소해요?”하고 묻는가 하면 새 앨범 수록곡 중 ‘90’s Icon’을 부를 때는 “한물간 가수, 별 볼일 없는 가수가 들려드립니다”라며 노래를 시작해 팬들의 가슴을 찢어놓았다.



그러나 20일 9집 앨범 ‘콰이어트 나이트(Quiet Night)’의 공식 발매와 함께 개최한 기자회견과 JTBC 뉴스룸 출연을 통해 서태지는 시대의 변화보다 더 획기적으로 달라진 스스로를 드러내며 허를 찔렀다. 대중의 생각보다 늘 한 발짝 앞서가던 그의 행보는 이번 역시 누구도 예상치 못 한 방식으로 이어졌다. 완벽하고 비밀스런 신비주의 뮤지션이란 굴레를 내려놓고, 시대의 흐름 속 자신의 존재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현명하게 수용해 나가는 소탈하고 진정성 있는 아티스트로 다시 대중 앞에 선 것이다.



“서태지의 시대는 사실 90년대에 끝났다고 생각해요. 누구도 거부하거나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제가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좋은 음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문화 대통령’이란 호칭은 과분하고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족쇄 같은 느낌이 분명히 있었어요. (이 호칭을) 누군가가 빨리 가져갔으면 좋겠어요. 저는 뒤에서 선배로서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예전부터 음반을 내면 늘 팬과 안티팬의 콜라보레이션이었어요. 이번엔 더했죠. 제가 떡밥을 많이 던져 진수성찬을 차렸으니까요.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음악이고 그런 관심들 덕에 제 음악을 한번이라도 들어보게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음악도 그랬다. 최근 태어난 딸 ‘삑뽁이’를 뮤즈 삼아 만들었다는 이번 앨범은 “딸과 함께 듣고 싶다는 생각으로 만들었고 다른 새 생명을 가진 어머니들과 그 아이들도 함께 들어줬음 좋겠다”고 할 만큼 전작에 비해 확연히 말랑말랑해졌다. ‘동화’를 콘셉트로 했다지만 내면의 어두운 이야기를 끄집어낸 가사나 사회적 맥락에서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가사도 여전히 눈에 띈다.



분위기는 돌아섰다. 한물간 90년대 아이콘에 유부남 애 아빠라 이죽거렸던 차가운 시선은 오히려 그것들을 영감 삼아 만들어 낸 음악과 22년간 수많은 비난을 견뎌 온 초연함에 눌려 사그라들었다. 이전보다 조금은 덜 고통스럽게, 대신 더 편안하고 행복하게 음악을 하게 된 듯한 모습에 이번 9집 활동은 서태지에게도, 팬들에게도, 가장 즐겁고 신나는 시간이 될지도 모르겠다.



글 LA중앙일보 이경민 기자 rachel@joongang.co.kr

사진 일간스포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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