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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기·냄새 쏙 빠진 국물맛 진화한 순댓국

온라인 중앙일보 2014.10.26 06:53



주영욱의 이야기가 있는 맛집 <46> 남순남 순댓국

음식은 우리네 삶, 그 자체다. 인생의 모든 중요한 순간들은 이런저런 음식들과 연결돼 있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음식이 있다.



아버지께서 암으로 투병하실 때였다. 항암 치료의 후유증으로 입맛을 잃으셔서 음식을 거의 못 드셨다. 입맛을 당기게 해드릴 만 한 것이 뭐 없을까 고민하다가 회사 근처에서 파는 순댓국이 생각났다. 밋밋한 병원 밥보다 따끈한 국물이 있는 맛깔스러운 순댓국이라면 아버지께서 맛있게 드실 수 있을 것 같았다.



순댓국을 사들고 병원으로 가서 따뜻하게 데워 드렸는데, 특유의 냄새가 생각보다 좀 거슬렸다. 식당에서는 잘 못 느꼈었다. 음식 냄새가 거의 없는 병원에 오니까 그 냄새가 도드라진 것이다. 다행히 아버지께서는 평소보다 많이, 그리고 열심히 드셨다. 생전 말이 없이 무뚝뚝하신 분이 일부러 “맛있다”라고 칭찬까지 하시면서.



그 순댓국은 아버지께서 외부 음식으로 드신 마지막 식사였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이후에야 나는 알았다. 항암제 치료를 받을 때면 비위가 약해져서 음식 냄새가 특히 더 예민하게 느껴진다는 것을. 그래서 그때 아버지께 순댓국 냄새는 많이 역하셨으리라는 것을…. 그럼에도 일부러 사들고 온 아들을 생각해서 맛있게 드시는 척하셨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순댓국은 내 인생에서 아주 특별한 음식이 되었다.





순댓국은 장터마다 그저 자연스럽게 생겨난 아주 서민적인 음식이다. 그래서 만드는 방식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제각각이다. 내용물도 집집마다 다르고 국물을 만드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사람들마다 익숙해진 입맛이 다르니 좋아하는 순댓국의 형태도 다르다. 나는 국물이 텁텁하지 않고 깔끔하면서 머릿고기가 푸짐하게 들어있는 것이 가장 좋다. 이런 기준에 가장 잘 들어맞아서 내가 좋아하는 곳이 ‘남순남 순대국’이다.



이곳의 순댓국은 꼬리꼬리 한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돼지 머릿고기와 머리뼈만을 이용해서 국물을 내는데 매일 신선한 재료를 사용해서 새로 끓이는 것이 첫째 비결이었다. 재료를 여러 번 다시 사용하면 잡스러운 냄새가 나게 마련이다. 거슬리는 냄새가 나기 쉬운 내장의 경우에는 국물과 아예 따로 삶는다. 끓일 때 마늘과 생강을 듬뿍 넣는 것도 또 다른 요령이다. 순댓국은 그 냄새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곳에서는 다들 그런 거부감을 거의 못 느낀다.



일단, 국물 맛이 아주 일품이다. 오래 끓여서 충실하게 우러난 것이 깔끔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기름기가 거의 없는 맑은 국물이지만 구수한 맛이라 자꾸 입맛을 다시게 만든다. 주인장이 권해주는 방법대로 양념을 더하면 국물 맛이 더욱 풍부해진다. 들깨의 부드럽고 고소한 맛, 새우젓의 깊은맛, 칼칼한 매운맛 등이 함께 어우러져 풍미가 더해지는 것이다. 푸짐하게 넣어주는 머릿고기는 두툼하지만 부드럽게 씹히면서 술술 넘어간다. 냉동을 했었거나 삶아놓은 지 오래된 고기가 주는 퍽퍽하고 무미건조한 맛과는 확실히 다르다.



이곳은 전라도 나주 출신 남순남(58)씨가 운영을 하고 있다. 남편을 도와 살림에 보탬이 되려고 조그맣게 식당을 낸 것이 1994년이다. 쉽게 할 수 있는 음식이라 순댓국으로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어떻게 만드는지도 몰랐었다고 한다. 일단 눈 동냥으로 시작을 하고 나서 그저 한결같이 성실하게 노력을 하면서 맛을 잡았더니 어느새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순댓국을 만들게 됐다고 한다. 이렇게 만든 순댓국 하나로 20여 년 동안 딸 둘과 아들 하나를 잘 교육시키고 결혼까지 시켜서 다들 잘 살고 있다고 하니 역시 어머니의 힘은 대단하다.



나는 어려서부터 순댓국을 좋아하긴 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는 더 좋아하게 되었다. 우연히 순댓국집 간판을 발견하기라도 한다면 뭔가에 끌리듯이 발걸음이 그쪽으로 향한다. 그 음식을 앞에 놓고 앉는 것만으로도 이미 마음이 따뜻해 지기 때문이다. 나에게 순댓국은 그냥 음식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남기고 가신 정(情)이다.



주영욱

음식·사진·여행을 좋아하는 문화 유목민. 마음이 담긴 음식이 맛있다고 생각한다. 경영학 박사. 베스트레블 대표. yeongjy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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