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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 자극하는 도시의 바람타고 스캔들이 된 소풍

온라인 중앙일보 2014.10.26 06:50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1863)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 vs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켕'

좋은 날이었다. 여름의 끝자락, 가을이 다가오고 있었다. 마지막 일광을 ‘유익하게’ 즐기기 좋은 날이었다. 테레즈와 카미유 부부 그리고 카미유의 친구 로랑은 파리 근교로 소풍을 갔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 잡목림 속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몸이 허약한 카미유는 이내 아내의 치맛자락 옆에서 잠이 들었다. 가까이서 ‘센강이 으릉대며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까지, 여기까지는 모두 좋았다. 그림으로 치면, 분명 르누아르나 모네가 여러 번 반복해서 그린 밝고 환한 인상주의 풍의 그림이 될 것이다.



카미유와 로랑은 같은 고향 출신으로 같은 철도국 직원이었다. 특히 화가가 되고 싶었던 로랑에게 사무실의 무료하고 단조로운 노동은 고역이었다. 카미유가 잠에서 깨자, 셋은 강가의 식당에 가서 근사한 저녁을 주문하고, 주문한 음식이 나올 때까지 뱃놀이를 하기로 한다. 센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보트꾼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깔깔대던 웃음소리는 비명소리로 바뀌었다. 믿음직한 친구는 살인마로 변했고, 다정한 아내는 살인의 방조자, 공모자가 되었다. 그렇게 즐거운 소풍은 끔찍한 범죄의 현장이 되고 말았다.



소설 『테레즈 라켕(Th<00E9>r<00E8>se Raquin)』(1867)은 스물일곱 젊은 에밀 졸라의 두 번째 장편 소설이다. 극적인 스토리 전개 덕에 무성영화 시절부터 여러 차례 영화화됐다. 박찬욱 감독의 ‘박쥐’의 원작이며, 2014년 찰리 스트래튼 감독에 의해 동명 제목으로 다시 한 번 영화화됐다.



즐거운 소풍을 범죄 현장으로 바꾼 것은 도시의 욕망이었다. 1848년 혁명이 끝난 후 프랑스에는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범죄 역시 급증했다. 젊은 졸라의 설명에 따르면 좀 특이한 기질을 가진 보통 사람들이 범죄자가 됐다. 수많은 미제 사건의 범인들은 신사복을 차려 입고 태연히 파리 시가지를 활보하고 있었다.



티치아노의 ‘전원의 콘서트’(1509)


똑같이 옷 벗어도 지탄 받은 마네의 그림

19세기말 많은 예술가들이 새로운 시대의 특성, 즉 ‘현대성(modernity)’을 찾기 위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삶은 바뀌었으나 삶을 설명하는 새로운 표현법이 아직 발명되지 않던 시절, 미술에서 ‘현대성’에 대한 탐구는 반성과 성찰에서 시작됐다. 과거를 꼼꼼히 되짚어 보는 것은 거대한 혁명의 시발점이 될 수 있었다. 마네가 그린 소풍 장면 역시 그랬다.



에밀 졸라의 소설이 발표되기 4년 전인 1863년 마네는 살롱전에 ‘풀밭 위의 식사’라는 건조한 제목의 작품을 발표한다. 마네는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던 미술상의 관례에 현대적인 삶을 대입해보았다. 이 작품은 16세기에 그려진 티치아노의 ‘전원의 콘서트’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전원의 콘서트’에서는 벌거벗은 여인들이 두 명이나 등장하지만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러나 마네가 그린 알몸의 여인은 공격의 초점이 됐다.

티치아노의 ‘전원의 콘서트’에서 ‘전원(pastrol)’이란 말은 유토피아적 공간을 연상시켰다. 여기서 두 여인들은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두 남자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는 신화적 존재다. 비너스가 아무리 옷을 갖춰 입고 다니지 않아도, 아무도 복장의 선정성을 논하지 않았다. 아니, 거꾸로 세속의 의상을 벗을수록 그들은 더욱 신화적인 존재가 됐다. 티치아노의 여신들은 처음부터 그렇게 신화적으로 헐벗은 채 그곳에 있었다.

반면 마네의 화면 왼쪽 하단의 음식 바구니 옆에는 그녀가 벗어놓은 하늘색 드레스가 보인다. 그녀는 지금 여기서 옷을 벗은 것이다. 거기다가 여인은 자신이 알몸이라는 사실을 잊은 듯 도리어 뻔뻔한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그림 속 인물들이 모두 태평하므로, 스캔들은 거꾸로 그림 밖에서 일어났다. 마네는 부도덕하다고 비난 받았다. 19세기말 파리 근교에 소풍 가서 여자가 태연히 알몸이 되는 경우는 없었을 것이다. 소위 클래식한 미술의 관행을 19세기 현실의 삶에 옮겨놓자마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관행과 현실의 간극, 이것이 마네의 소풍 그림이 스캔들이 된 이유였다.



마네의 뒤를 이어 변화한 삶에 어울리는 새로운 표현법을 찾는 화가들이 등장했고, 그들은 인상주의자들이라고 불렸다. 따라서 마네의 소풍이 일으킨 스캔들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귀착됐다.



도시의 어둠속으로 들어간 졸라

그러나 테레즈 라켕의 소풍은 그렇지 못했다. 이 소풍이 스캔들이 된 것도 바로 삶의 저주받은 ‘현대성’ 때문이었다. 인상주의자들은 밝은 햇살 아래 벌어지는 일들을 선호했지만, 소설가 에밀 졸라는 도시의 어둠 속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것은 ‘욕망’이었다.

어린 테레즈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고모에게 맡겨졌고 병약한 고모의 아들 카미유와 함께 자라 그의 신부가 된다. 테레즈에게 주어진 것은 약냄새 나는 환자를 위한 보족물로서의 삶뿐이었다. 건장한 로랑의 등장은 그녀의 탈출구가 되었다.



여기서 졸라가 내세운 것은 독특한 기질론이다. ‘알제리’ 태생의 어머니를 둔 테레즈는 뜨겁고 히스테릭한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로랑은 전형적인 농부의 기질을 가진 단순한 사람이었다. 시골에서의 순박한 생활을 할 때는 발휘되지 않던 기질들이 욕망의 도시, 파리의 뒷골목에서 끔찍한 화학작용을 발생시켰다. 둘의 눈빛이 마주치는 순간, 거친 욕망이 그들을 몰아쳤다. 사랑이 격해질수록 남편인 카미유는 방해물로 여겼다. 더 많이 사랑하고 싶어서 그들은 살인을 했다.



그러나 욕망은 욕망일 때만 의미가 있었다. 그토록 갈망하던 사랑이었지만, “카미유를 살해함으로써 욕망도 죽어 버렸다.” 야수와 같은 정욕으로 서로를 사랑했는데, “범죄의 흥분 가운데서 그 사랑은 공포로” 변해버렸고, 두 사람의 결혼은 “살인의 숙명적인 벌”이 되어버렸다. 범죄 공모자를 영원히 묶어 놓는 죄의 공모자였던 그들 중 누구든지 먼저 죄를 고백함으로써 배신자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불신과 죄책감으로 그들은 파멸해갔지만 그들은 헤어질 수도, 그 집에서 떠날 수도 없었다. 카미유의 어머니 라캥 부인에게 기대하는 상속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사랑을 얻기 위해, 그 다음에는 돈을 얻기 위해 그들은 스스로 지옥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결국 이들은 죽음을 택한다. 자살이 아니라 불신과 의혹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상호 파멸에 이르렀다.



발전하는 도시는 욕망을 자극했다. 화려한 도시의 삶과 멋진 상품으로 둘러싸인 안온한 삶은 도시 하급 사무원인 로랑이나 조그만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테레즈에게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되고자 하는 것과 되어 있는 상태 사이의 간극이 클수록 욕망은 들끓는다. 테레즈와 로랑은 도시가 부추키는 욕망의 노예이자, 희생자였다.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욕망은 평범한 사람들을 악인으로 만들었다. 졸라의 소설 『테레즈 라켕』은 도시가 욕망을 자극하고 양산하는 한, ‘범죄’라는 단어는 ‘소풍’ ‘사랑’ ‘우정’ 같은 행복한 단어들의 영역을 끊임없이 침입하는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냉정한 언어로 보고하고 있다.



이진숙

문학과 미술을 종횡무진 가로지르며 각 시대의 문화사 속 인간을 탐구하는 데 관심이 있다. 『위대한 미술책』『미술의 빅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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