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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우리의 이웃 동성애자

중앙선데이 2014.10.26 03:25 398호 27면 지면보기
가톨릭 교회가 동성결혼에 대한 새로운 입장을 준비한다고 한다. 입장 차이를 조율하고 있다는데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동성애는 이 시대에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과거에도 있었다. 다만 예전에는 묻어 두고 부인했을 뿐이다. 특히 기독교 문명권에서 그것을 죄악시했기에 드러낼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는 더 이상 동성애를 감출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기에 공식적으로 입장을 정리할 수밖에 없게 됐다.

미국의 보수 복음주의 교회는 동성애에 대해 너무 엄격한 입장을 취했기에 사회적으로 단절과 대립을 낳게 되었다. 그 결과 미국의 동성애자는 복음주의 교회를 적대시하며, 반대로 미국의 보수 기독교 계층은 동성애를 정치적인 이슈로 확대시켜 대통령 후보에게 동성애에 대한 입장을 가장 먼저 묻곤 했다. 이것은 정치적·신앙적으로 미국 사회의 큰 분열을 낳았다. 그리고 마치 기독교인이 성(性)에 집착하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거식증에 걸린 사람이 음성적으로 음식에 집착하듯, 보수 기독교인이 역설적으로 성에 집착한다면 그건 뭔가 이상한 것이다. 그런 실수를 대한민국에서 되풀이할 수 없다. 미국 보수 기독교층은 동성애자를 교회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도록 내쫓아 버렸다. 예수께서 구하러 오신 양을 오히려 문밖으로 차버린 것이다.

동성애가 자연의 섭리에 역행하고 성경에도 동성애를 금하는 것으로 보이는 구절이 분명히 있긴 하다. 그렇다 해도 동성애자가 이성애자로 바뀔 수 있을까. 설사 동성애를 정신적 질환이라 가정해도 치유되는 사람이 있던가. 동성애적 성향을 억누르고 정상인처럼 꾸미고 살 수 있을지언정 성적 취향이 바뀌었다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바뀔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동성애를 무조건 죄악시하는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단지 당사자와 그 가족에게 아픔과 죄의식을 안겨줄 뿐이다.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듣지 않고 나를 버렸다”고 생각하게 만들 뿐이다.

왜 세상에는 동성애가 있을까. 만일 동성애가 선천적이라면 아담과 하와의 사건 이후 인간의 삶에 스며든 여러 괴로움 속에 동성애도 포함되었는지 모른다. 좋든 싫든 이 세상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 우리가 다른 것엔 관대하면서 유달리 동성애에 대해서만 엄밀한 잣대를 들이댈 필요는 없다.

동성애 혐오론자에게 나는 동성애 친구를 두어 본 적이 있느냐고 묻고 싶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이 있는지,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시는 것을 느껴 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그들은 변태자가 아니며 그들 중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자도 많다.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를 거론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나는 에이즈가 동성애자를 심판하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질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일 하나님이 인간을 심판하기 위해 무서운 병을 주신다면, 이미 인류는 옛날에 거덜났을 것이요, 또 하나님을 왜곡하는 것이다. 생선을 달라고 할 때 뱀을 주지 않는다고 했는데, 많은 이들은 하나님이 뱀과 전갈을 주는 분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동성애를 칭찬하자는 게 아니다. 나는 이성애자이며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타인도 이성애자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세상은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신앙이 필요하다. 과연 이성애자가 동성애자보다 더 의로운가. 우리는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함께 예배하고 친교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길이 그리스도를 통한 것이라면 그것은 이성애자나 동성애자나 마찬가지다.



김영준 예일대 철학과와 컬럼비아대 로스쿨, 훌러신학교를 졸업했다. 소망교회 부목사를 지낸 뒤 2000년부터 기쁜소식교회 담임목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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