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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숙의 ‘新 名品流轉’] 호암이 부인에게 77년 전 보낸 엽서 3000만원 가치

중앙선데이 2014.10.26 03:39 398호 29면 지면보기
‘우편(郵便)하가키(엽서)’라고 인쇄된 ‘이병철 엽서’. 겉장에는 받는 이와 보낸 이의 주소, 뒷면에는 사연이 적혀 있다. [사진 옥션 단]
이 무렵쯤 귓가를 울리는 노래가 있었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고은 작사, 김민기 작곡, 최양숙 노래로 추색(秋色)을 물들이던 ‘가을 편지’다. 멀지 않은 장래에 편지가 국어사전에만 남아 있는 단어가 될지도 모르는 시대이기에 더 뭉클함을 불러일으키는 대중가요다. e메일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밀려 손글씨가 점차 사라지고, 우표는 기념품이나 수집품목으로 제 기능을 잃었으며, 빨간 우체통이 무용지물이 되는 오늘에 이 대중가요는 노스탤지어를 자극한다.

그런데 편지가 죽었다는 풍문을 거스르는 희소식 하나가 들려왔다. 지난 8일 서울 인사동 ‘옥션 단’에서 열린 가을 경매 현장에서 손바닥 크기 우편엽서 한 점이 무려 3000만원에 낙찰됐다. 무게는 3g, 현재 판매가격은 270원이다. 물론 이 엽서의 발행 연대는 1937년이니 77년이란 역사적 무게가 얹히기는 한다.

핵심은 엽신을 주고받은 주인공이다. 겉봉에 적힌 사항만 보면 보낸 이는 호암(湖巖) 이병철(1910~87), 받은 이는 대구부 신천리에 사는 박노성씨다. 호암은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 삼성을 일군 창업주이고 박노성씨는 처남이다. 호암이 26년 결혼한 박두을(1907~2000)이 잠시 집을 떠나 친정에 머물자 부인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다. ‘박노성씨 댁 내간(內簡)’이라 쓴 점이 재미있다. 내간은 흔히 부녀자가 쓰는 편지를 일컫는 말로 내찰·내서라고도 한다.

내용은 간단하다. “반달이나 있었으면 그만이지 집은 어른한테 맡기고 가서 …부디 얼른 오게. 하고 베와 옷 챙겨 가지고 속히 돌아오도록 하오.”

37년은 호암에게 시련의 해였다. 호암은 36년 지인들과 동업으로 마산 협동정미소를 창업하고, 이어 마산 일출 자동차회사를 인수해 운수업을 벌인 뒤 김해평야 논 40만 평을 매입한 뒤 토지사업을 확장해 200만 평 대지주가 됐으나 중일전쟁을 거쳐 태평양전쟁으로 줄달음치던 무렵이라 모든 사업을 접어야 했다. 새로운 사업 구상으로 외지를 돌며 마음이 어지러운 때 부인이 친정으로 가버렸으니 속이 탔을 법하다. 이런 난리를 겪고 난 38년 3월에 오늘날 삼성의 초석이 된 삼성상회를 설립했으니 이 편지가 지닌 가치가 꽤 묵직해진다고 할 수 있겠다.

호암의 글씨체는 조선시대 목판본으로 간행된 『언문간독』(한글 편지 쓰는 법)의 기본에 충실한 외에 초서체를 융합한 꽤 독창적인 솜씨다. 꼬장꼬장하고 심지 곧은 이의 성품이 글씨에 묻어난다. ‘글씨는 곧 그 사람’이란 말이 어지간히 맞아떨어진다.

명사들의 편지 뭉치가 꽤 비싼 값에 팔리는 건 서양 전통이다. 비밀도 벗겨지고 새로운 역사적 사실도 밝혀진다. 서간문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우리 실정에서 이 소품을 과연 누가 3000만원이란 거금을 주고 샀을까. 낙찰자 신분을 안 밝히는 경매사 관행상 누구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호암 가문과 친밀한 국내 유수 기업이 사갔다는 얘기가 풍문으로 들린다.


정재숙 중앙일보 논설위원 겸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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