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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게 지식인이란 무엇인가

중앙선데이 2014.10.26 03:42 398호 30면 지면보기
1980년대의 끄트머리 학번인 내게만 해도 지식인이라는 개념은 한마디로 ‘행동하는 양심’을 뜻했던 것 같다. 지식보다는 지성이, 개인적인 욕망이나 감각보다는 시대의 이념과 책무가 우선시되는 시대, 혹여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다면 죄책감만이라도 느껴야 맘이 편하던 세대였다.

어쩌면 그때 우리는 마르크스를 알기도 전에 마르크스주의자였고, 미국에서 유학하고 싶으면서도 반미주의자였고, 대한민국에서 잘 살면서도 대한민국은 친일파들이 건설한 부끄러운 나라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러한 분위기에 입각해 우리는 일단 어느 정도의 좌파적 성향을 띠어야만 온당한 지식인이라는 강박에 지배받게 되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오래전부터 대한민국에는 진짜 좌파도 없고 진짜 우파도 없다. 현재 우리는 사회과학적 용어들이 중구난방 엉터리로 사용되는 사회 속에서 소위 좌파든, 소위 우파든 연예인 스타일의 지식인들이 설치는 난잡한 쇼들을 매일 구경하고 있다.

그 밤 베드로가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했듯, 누가 정말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옹호하는 자인지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 와 봐야 환히 드러날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무자비한 자신감에 차 외치는 소리가 너무 많다. 진실한 사람은 진실을 유리 그릇 다루 듯하는 법이다. 이토록 행동하는 양심이 많으신데 왜 이 나라는 여전히 이 모양인 것일까.

예전의 지식인들은 양심이 없어서 지식인이 아니었는가 본데, 요즘의 지식인들은 정말로 지식이 없어서 지식인이 아닌 것 같다. 연예인병에 걸린 지식인들의 양심이야 차후 따로 떼어놓고 더 따져봐야겠으나 모두가 논객이고 모두가 활동가가 돼버린 세상에서 치열한 공부와 신중한 대화란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다. 우리를 지탱하고 추동하는 것은 이념이 아니라 이념의 탈을 쓴 증오와 무명(無明)이다.

얼마 전 스스로 좌파임을 자랑스러워하는 한 청년과의 우연한 술자리에서 그가 ‘전체주의’라는 단어를 모른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어느 좌파 논객을 선지자처럼 떠받드는 그에게 『공산당 선언』은 읽어봤느냐고 물으니, 그게 뭐냐고, 책이냐고 되묻더라. 공인된 멍청이가 아니라 지극히 멀쩡한 대학생에 대한 얘기다.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주입시키기보다는 그들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지식을 쌓게 도와주는 것이 선배의 길이다. 좌파든 우파든 우리의 지식인들께서는 청년들을 제 부하나 놀이터로 만들기에 혈안이 돼 있는 듯하다. 기실 지식인이라는 인종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 날 좀 알아달라는 것일 수 있다. 박정희와 김일성 사이에서 방황하던 많은 지식인이 그러했다. 유신 독재자 박정희가 옳지 않다면 어버이 수령님 김일성도 당연히 옳지 않은 것이다.

지식인은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전할 때마다 소정의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 지식인이란 세계와 자신에 대해 끝없이 의심하고 점검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폭력혁명이 합의에 의해 원천적으로 부정된 상태인 민주공화국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의미가 엄중하며 사회 발전을 위한 소중한 기록이 된다. 광장과 TV 안에서 벗어나 책상으로 되돌아가 연구하고 글을 쓴다는 것이 곧 지식인의 가장 래디컬하고 양심 있는 행동인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이 지경이 된 것은 헌법이 열등해서도 아니고 법이 모자라서도 아니다. 법을 만드는 자들부터 타락해 법을 안 지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가 뽑은 자들이고, 좌건 우건 그 진영의 지식인들이 소개하고 지지한 자들인 것이다. 필경 지식인이란 자기모순 앞에서 가장 솔직한 사람일 것이다. 균형 잡힌 지식인으로서 완성을 추구하며 성장한다는 것은 도저(到底)한 노력과 겸손이 요구되는 과정이다.

지성인임을 자처하는 지식인이 제 거짓말에 스스로 도취돼 국민을 불구덩이로 몰아넣은 사례들은 역사에 차고 넘친다. 하물며 시인은 존경받기보다는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이듯, 예술가의 본연은 그저 예술가이지 지식인이 아니다. 한데 우리에게는 지식인 행세에 재미 붙인 예술가가 너무 많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다고 지식인으로 대접받는 사회는 자크 라캉 식으로 말하자면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의 욕망이 일치하는 포르노와 그 작동구조가 동일하다.

이제 질문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지식’이 있는가? 부처는 정확한 지식이 삶을 구원한다는 것을 증명한 최초의 인간이었다. 양심과 지성을 지식에 앞서 들이대며 제 정의를 퍼뜨리는 자들을 조심하자. 그들에게는 지식도 없고 지성도 없으며 양심과 정의마저 없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응준 1990년 계간 문학과 비평에 ‘깨달음은 갑자기 찾아온다’로 등단했다. 장편소설 『내 연애의 모든 것』 『국가의 사생활』과 시집 『애인』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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