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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섭의 시대공감] 백해무익한 국가 IR

중앙선데이 2014.10.26 03:50 398호 31면 지면보기
경제부총리가 이번 달 뉴욕에서 9년 만에 첫 한국경제 IR(투자자 설명회)을 개최한 것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는 부총리와 한국은행 총재의 ‘엇박자’ 발언을 비판했다. 두 경제정책 수장(首長)이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인데 세계 금융의 중심지에서 서로 뉘앙스가 다른 얘기를 해서 혼선을 줬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 IR에서 어떤 발언을 했느냐는 지엽적인 일이다. 국가 IR 자체가 백해무익(百害無益)한 일이기 때문이다. 국가 IR을 기획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전제는 이런 행사를 통해 한국 경제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해도를 높일 수 있고, 그들의 이해도를 높이면 한국 경제에 우호적인 투자가 많이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 금융시장의 실상은 이런 순진한 사고와 너무 많이 동떨어져 있다. 일단 글로벌 투자자들이 국내 정책 담당자들보다 한국 경제에 대해 더 ‘빠꼼이’인 경우가 많다. 경제 장관들의 수명은 1~2년밖에 되지 않는 반면, 글로벌 금융사들의 한국 담당자들은 한 우물만 오래 판 사람이 많다. 이들은 해당 회사가 갖고 있는 세계적인 정보력과 분석력의 지원을 받으며 한국의 환율, 금리, 주가가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에 어떻게 움직일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며 매일매일 투자 결정을 내린다. 국내 경제정책 담당자들조차 국제 금융회사들이 쏟아내는 정보와 ‘권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가. 국가 IR을 통해 이들을 새로이 ‘설득’할 만한 여지가 별로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이 한국 경제에 대해 더 많이 안다고 해서 우호적인 투자를 늘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잘 알수록 한국 경제가 어려울 때 거꾸로 투자해서 자신들의 이득을 챙길 가능성이 커진다. 국제 금융시장은 전쟁터이기 때문이다. ‘윈-윈(win-win)’보다는 ‘윈-루즈(win-lose)’의 논리가 지배한다. 환율은 처음부터 ‘윈-루즈(win-lose)’ 게임이다. 한 나라 환율이 올라가면 다른 나라 환율은 떨어진다. 한쪽에서 버는 사람이 있는 반면 다른 편에선 손해보는 사람이 있다.

채권시장이나 주식시장도 과거에는 ‘윈-윈’의 여지가 많았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파생상품이 거래를 지배하면서 ‘윈-루즈’ 시장으로 봐야 한다. 파생상품에는 항상 반대매매 포지션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가격이 올라가는 방향에 베팅(롱·long)하는 세력과 내려가는 방향에 베팅(쇼트·short)하는 세력 간에 항상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보통 다수의 비(非)전문가들이 ‘롱’에 베팅하고 소수의 전문가들이 ‘쇼트’ 전략을 더 많이 사용한다는 점이다. 그러면 전문가들이 비전문가들을 농락할 가능성이 크다. 국가라고 예외가 아니다.

2008~2009년 세계 금융위기 때를 돌이켜보자. 원화 환율이 흔들리고 금융시장이 불안해지자 한국 정부는 주요 국제금융센터에서 국가 IR을 했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며 ‘펀더멘털’이 튼튼하다는 것이었다. 한국 경제를 제대로 이해하면 투자자들이 한국에 ‘롱’해야지 ‘쇼트’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였다.

그러나 국제금융기관들은 거꾸로 갔다.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기 직전에 외국투자자들은 한국의 주식, 채권시장에서 600억 달러 이상을 빼냈다. 리먼 파산 직후 4개월 동안에는 외국은행 국내 지점들이 250억~300억 달러를 본점으로 빼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주식과 원화에 동시에 ‘쇼트’하는 투기가 성행했다. 8개월 남짓 동안 외국인 투자자들이 ‘쇼트’한 주식 물량이 30조원을 넘었다. 원화 환율은 달러당 1600원 가까이 치솟았다. 당시 한국 금융위기의 주범(主犯)은 정부의 IR 대상이었던 국제 투자자라고 할 수 있었다.

국가 IR은 보통 한국 경제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얘기들이 돌아다닐 때에 투자자들의 ‘오해’를 풀겠다면서 이루어진다. 1997년 외환위기 직전에도 “펀더멘털이 튼튼하다”는 국가 IR이 벌어졌다. 그러나 국제투자자들은 이때에 오히려 한국 경제를 거꾸로 칠 틈새나 균열이 없는지를 유심히 쳐다본다. 국가 IR을 통해 그들이 느끼던 한국 경제의 취약점이 오히려 더 명확히 드러날 수도 있다.

국제 금융시장을 전쟁터라고 받아들인다면 정부도 그에 따라 행동 양식을 정해야 한다. ‘투명성’의 함정에 빠져 적에게 내 패를 다 보여주겠다고 IR을 다닐 필요가 없다. 정부는 오히려 몸을 숨기고 한국 경제에 호시탐탐 쇼트하려는 투기꾼들을 되치기할 작전을 짜야 한다.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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