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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때문에 생긴 일

중앙선데이 2014.10.26 03:54 398호 31면 지면보기
최근 경험한 일이다. 중국인 친구와 함께 쇼핑몰로 옷을 사러 갔다. 친구가 맘에 드는 옷 한 벌을 들고서 서툰 한국어로 또박또박 “판매원님, 이것 입어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순간 점원의 얼굴에는 황당하고 불쾌하다는 표정이 스쳤다. 놀리는 것으로 오해한 것 같았다. 나는 “제 친구의 한국어가 서툴러…”라고 말하고 황급히 상점을 빠져나왔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친구는 “내가 뭘 잘못 말했어? 난 특별히 ‘님’자까지 붙였는데”라며 억울해했다. 나 역시 괜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 내 친구가 대체 뭘 잘못했길래, 하는 생각에 한국어사전에서 ‘판매원’의 뜻을 찾았다. 책에는 분명히 ‘물건을 파는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를 계기로 한국인들의 호칭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중국에선 보통 상대방의 직업을 그대로 사용해 부른다. 레스토랑에선 “종업원”, 상점에선 “판매원”으로 부르는 것이다.

나 역시 예전에 친구와 유사한 실수를 한 적이 몇 번 있었다. 한 번은 병원에서 “의사님”이라 부르자 의사 선생님이 황당해하면서 웃었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의사를 ‘의사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약국에서는 ‘약사님’이라 부른다. 그런데 왜 의사에게는 ‘선생님’을 붙여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비행기 안에서 스튜어디스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관공서를 방문해 공무원들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당황스러울 때가 적지 않다.

사실 한국에 온 이후 호칭 문제는 내내 나를 괴롭혀 왔다. 대학에서 중국어를 강의하던 시절 중문과 교수님을 비롯해 타과 교수님 몇 분과 함께 점심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한 교수님께서 “한국어는 열심히 배우고 있어요”라고 물으셨다.

당시 나는 한국어 입문 단계의 책을 구입해 공부하고 있었다. 나는 자신 있게 교수님 앞에 놓여 있는 접시를 가리키며 “너 먹어요” 말했다. 분위기가 순간 썰렁해졌다. 50세가 넘은 그 교수님은 호탕하게 웃으시며 내 실수를 넘기셨다. 그날 나는 한국어가 책에서 배운 그대로 실생활에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언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대화 상대에 따라 호칭을 달리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날 귀가하자마자 한국어 교재를 다시 펼쳐 내 실수가 무엇인지 확인했다. ‘당신’이란 단어가 ‘너의 존칭어’라는 설명이 있었다. ‘당신’이란 단어를 반복해서 연습한 후 그 교수님과 다시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당신이 먹어요”라고 교수님에게 권했다. 좌중은 그야말로 웃음바다가 됐다. 내 옆에 앉아 있던 조교가 간신히 웃음을 참으며 조그만 목소리로 ‘당신’이란 말은 보통 부부 사이에서 쓰는 호칭이라고 설명해줬다. 이후 한동안 나는 ‘you’에 해당하는 한국말을 사용하는 것을 최대한 자제했다.

하지만 ‘당신’이란 단어는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또다시 나를 괴롭혔다. 내 차가 실수로 중년부부가 탄 차량과 접촉사고를 냈을 때였다.

차에서 내린 중년 남성은 흥분해 “당신 지금 뭐한 거야”라고 따졌다. 접촉사고로 당황한 상황에서도 ‘당신’이란 말이 귀에 들어왔다. 부부 사이에 쓰는 말을 이런 상황에서 쓰다니 불쾌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었다. 후에 한국에서 ‘you’는 정말 다양하게 사용되는 말이라는 걸 알게 됐다.

한국에서 생활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호칭은 여전히 나를 괴롭히고 있다. 한국의 고유 문화가 투영돼 있는 호칭은 외국인들에게는 정말 풀기 어려운 과제와도 같다.

지금도 한국인들에게 묻고 싶다. “도대체 어떻게 불러 드려야 하나요?”



천리 1979년 중국 선양(審陽)에서 태어나 선양사범대학을 졸업했다. 숙명여대 박사과정 수료. 한국에 온 뒤 주로 비즈니스 중국어를 가르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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