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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제만 손 보면 무슨 소용 … 양당 체제 깨뜨려야

중앙선데이 2014.10.26 00:44 398호 4면 지면보기
프리랜서 사진작가 박찬
“개헌은 부차적이다. 우선 순위가 아니다.”

[개헌 놓고 치닫는 정치권] 개헌 앞서 선거제도 바꾸자는 선학태 교수

개헌론 정국이 한창이지만 개헌 자체가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진짜 중요한 건 놔두고 부차적인 사안에 소모전을 벌이는 정치권이 한심스럽다는 반응을 보인 이는 선학태(사진) 전 전남대 교수. 영국 뉴캐슬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고 독일·스웨덴·핀란드 등에서 초빙연구원을 지낸 그는 “개헌 자체가 썩 중요하진 않다”고 한다.

그는 “국회의원을 어떻게 뽑느냐가 정치개혁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기성 정치권이 개헌을 해봤자 한국 정치가 바뀔 가능성은 없어 보이니 선거제도를 먼저 바꿔 정치 엘리트를 물갈이하는 게 차라리 낫다는 뜻이다. 서유럽 민주주의를 오랜 기간 탐구해 온 그를 만나 개헌론과 정치개혁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개헌이 왜 부차적인 사안인가.
“개헌을 하든 안 하든 생각보다 달라지는 게 크지 않다는 거다. 최근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개헌 논의는 4년 중임 정·부통령제, 이원집정제 등 오로지 권력구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어떤 대통령제가 대한민국 실정에 맞는지 등 대통령을 어떻게 뽑느냐에만 관심이다. 하지만 정치체제에서 권력구조나 정부 형태는 상부구조일 뿐 그 근간을 이루는 하부구조는 선거제도-정당체제다. 선거 방식을 건드리지 않고 개헌을 해봤자 곁가지에 불과하다. 본질을 바꿔야 한다.”

-그 본질이란 무엇인가.
“현행 대한민국 선거는 한 표만 더 받으면 승리하는 단순다수대표제다. 이는 지역 중심의 거대 패권 양당 체제를 만들어낸다. 이걸 손대는 게 개헌보다 훨씬 중요하다. 지금 전개되고 있는 개헌 담론은 그 나름의 장단점이 있다. 100% 완벽한 건 없다. 하지만 단순다수대표제를 바탕으로 한 양당 체제를 지속한 채 개헌을 하는 건 하부구조는 유지한 채 상부구조만 바꾸는 것이기에 사실상 정치체제는 크게 달라지는 게 없다. 자칫 사회적 갈등이 더 악화되거나 확대 재생산될 수 있다.”

득표율-의석률 괴리로 민의 왜곡
-단순다수대표제는 왜 문제인가.
“전형적인 승자독식이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 표만 지면 집안이 거덜날 만큼 ‘쪽박’을 차고 한 표만 이기면 수십여 가지 유·무형의 특권과 혜택을 챙긴다. 무엇보다 정당 득표율과 의석률 간에 심각한 괴리를 초래한다. 2012년 19대 총선을 보자. 새누리당은 42.8% 득표율로 50.7% 의석을, 당시 민주통합당은 36.5% 득표율로 43.1%의 의석을 챙겼다. 득표율-의석률의 불비례성은 권역별 차원에서 더 심각하다. 예컨대 대구·경북에서 새누리당은 60.4%의 득표율로 의석을 100% 싹쓸이했고, 민주통합당은 호남·제주에서 52.7%의 득표율로 84.9% 의석을 가져갔다. 지역분할 구도를 고착화 한다.”

-선거라면 승패가 있을 수밖에 없고 한 표라도 이기는 계량화가 그나마 객관적 방식 아닌가. 또한 현행 선거는 비례대표제도 가미돼 있다.
“숫자의 함정이다. 여전히 선거를 게임이나 스포츠로만 여겨 패배하면 제로라는 고정관념에 빠져 있다. 져도 일정한 득표를 했다면 이런 민의를 정치에 반영하는 선거제도를 고민해야 한다. 또한 한국의 비례대표제는 비례대표의 본래 취지를 훼손시키며 양당제를 강화시키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비례대표 의석은 전체 300석 중 54석에 불과해 비율도 낮다.”

-결국 단순다수대표제에 의한 양당체제가 문제의 핵심인가.
“그렇다. 승자독식 단순다수대표제에 의한 양당체제는 한국 정치에서 만악(萬惡)의 뿌리다. 유권자 양극화→선거 불복종→반쪽짜리 대통령으로 이어지며 한국 사회를 둘로 쪼개놓고 있다. 갈등 이슈만 터지면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극렬한 대결 양상이 나타난다. 왜 재벌의 시장 독과점에 대해선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정치 재벌인 두 거대 정당의 폐쇄적 정치시장에 대해선 침묵하는가. 국회의원을 누구로 뽑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누가 와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뽑느냐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양당체제는 미국 등 외국도 있지 않나.
“미국도 양당제의 폐해가 최근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연방정부 셧다운과 국가부채 디폴트 사태 등이 대표적 예다. ‘오바마 케어’(건강보험 개혁법) 예산 심의를 둘러싼 민주당과 공화당의 벼랑끝 대치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하지만 미국은 연방제-양원제 등으로 정치적 양극화가 일정 부분 조정되고 있다. 한국은 완충지대가 없다. 치킨게임이다.”

-대안이 있는가.
“독일식 비례대표제다. 현행 우리 국회의원 선거는 일종의 ‘2표 병립’ 혼합제다. 지역구 의원과 정당 득표율에 의한 비례대표 선출이 각각 따로 합계돼 단순히 더해질 뿐이다. 반면 독일식 비례대표제는 ‘2표 연동’ 혼합제다. 전체 의석수, 즉 지역구 의원+비례대표가 정당 득표율에 좌우된다. 따라서 ‘2표 연동’ 혼합제는 지역구 의원들이 존재하면서도 사실상 순수 비례대표제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장점이 뭔가.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수가 결정되므로 사실상 사표(死票)가 없어진다. ‘나는 A후보(정당)를 선호하지만 될 가능성이 낮으니 될 만한 B후보(정당)를 찍어야지’라는 식의 사표 방지 심리가 사라진다. 전략적 투표 대신 진성 투표를 하게 된다. 민의를 조금 더 정확하게 반영하고 집계할 수 있다. 자연히 투표율이 높아져 정치적 무관심도 극복된다. 또 우리가 투표할 때 반드시 선호 정당과 인물이 일치하는 건 아니지 않나. 두 가지를 분리시켜 지역 중심의 단순다수대표제와 정당 중심의 비례대표제가 유기적으로 연계된다. 계층·직능 대표성과 지역 대표성을 절묘하게 조화시키는 셈이다. 기술적으론 현행 투표방식과 유사해 유권자의 생소함을 덜 수 있다.”

-결과적으론 비례대표 의원이 늘어나 국회의원 총수가 확대되지 않나.
“그게 걸림돌이다. 현직 의원의 저항감은 적지만 국민의 저항감이 클 것이다. 해법은 의원 특권을 대폭 줄이는 거다. 면책·불체포 특권을 없애고 세비와 보좌관을 줄이는 식으로 말이다. 덴마크에선 의원 주차장도 없다.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국회의원이 잘못하니 숫자를 줄이자는 거지 일 잘하고 밥값 한다면 누가 싫어하겠는가.”

-최근 세월호 유가족 폭행 사건에 연루됐던 김현 의원, 막말로 구설에 올랐던 김광진·장하나 의원 모두 비례대표다. 그런 비례대표를 더 늘리자는 건가.
“언급된 인사들은 현행 비례대표제가 제 기능을 못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입증한다. 현직 비례대표 의원이 과연 직능·계층·사회집단 등을 두루 대표하고 있는가. 아니라고 본다. 상당수가 당 지도부에 의해 낙점되고 계파 수장들의 지분이 작용한다. 당원이나 대의원의 의사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으며 ‘그들만의 비례대표’로 국민적 관심도 못 받고 있다. 반면 독일식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유권자가 정당 투표를 할 때 비례대표 후보가 누구인지 꼼꼼히 따지게 된다. 득표를 위해선 경쟁력 있는 인물을 내세울 수밖에 없다. 정당의 줄 세우기 문화가 약화되고 정당 혁신도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다.”

진보가 집권해도 복지·양극화 해소 어려워
-결국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통해 다당제로 가자는 주장인가.
“양당 체제로는 더 이상 한국 사회를 지탱하기 어렵다. 극단적 대립뿐만 아니라 소선거구제에서 선출된 의원은 국가적 의제를 다루는 데 별로 관심이 없다. 오로지 자기 지역 챙기기에만 혈안이 된다. 그래야 재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정치 브로커 집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복지·교육·의료나 양극화 해소 같은 국가적 어젠다에 대한 관심은 약해진다. 다수의 비례대표가 의회에 들어와 전국적 이슈를 주도해야 한다.”

-복지, 양극화 해소 등은 진보정당이 집권하면 해결할 수 있지 않나.
“착각이다. 진보세력이 집권했다고 치자. 재벌이 조건반사적인 반감을 표할 거다. 자본가들이 불안에 떨며 해외로 공장을 옮길지 모른다. 성장과 일자리 창출 등은 물 건너 간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우파정권이 들어서면 노동계층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다. 노무현 정권에서 뻔히 추진했던 제주 해군기지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이명박 정권 출범 뒤 진보세력이 극렬하게 반대하지 않았나. 누가 옳고 그른 차원이 아니다. 너를 인정했다간 내가 다시 집권하기 어려운 양당체제의 구조적 모순이다.”

-독일식 비례대표제-다당제의 강점이라면.
“종적으로 각 정당은 사회적 뿌리를 갖게 된다. 자신을 지지하는 일정한 정치고객을 갖는다는 얘기다. 한국 정당의 고질적 병폐는 한결같이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다’는 레토릭 아닌가. 모든 이의 친구는 누구의 친구도 아니듯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이 한국 정치에 팽배해 있다. 도시 자영업자를 위한 당, 환경을 앞세우는 당, 국가안보를 중시하는 당 등 각 정당은 뚜렷한 자기 정체성을 지니면 자연히 유권자의 선택권도 넓어진다. 횡적으로는 어느 정당도 과반 의석을 차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자연스레 연합정치가 이뤄진다는 거다. 이를테면 우파 정당이 ‘최저임금제 높일 테니 부동산 활성화법 통과시켜 달라’는 식으로 소수 진보정당과 손을 잡아야 한다. 필요에 따라 이념적 색깔을 넘나든다는 얘기다. 자연히 이념적 고착화도 희석되고 정치 세력 간 극단적 대립도 약화된다.”

-국회 선진화법만으로도 ‘입법 제로’를 보였는데 다당제는 혼란만 가중시키지 않을까.
“국회선진화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건 과반 정당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수당인데 왜 질질 끌려다니나’ 하는 패권의식이 본능적으로 작동한 것이다. 이처럼 다수제 민주주의는 숫자로,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체질과 사고의 틀에 갇혀 있다. 이를 ‘나 혼자론 할 수 없으니 옆 사람과 힘을 합치자’며 스스로 몸을 낮추고 타협하는 합의제 민주주의로 전환해야 한다.”



선학태 서울대 대학원에서 교육학 박사를 받았다. 이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뉴캐슬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스위스 베른대, 스웨덴 스톡홀름대, 독일 하이델베르크대 등에서 초빙연구원을 역임했다. 지난해 정년퇴임 후 집필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갈등과 통합의 정치』 『한국 민주주의의 뉴패러다임』 『사회적 합의제와 합의제 정치』 등. 올 초엔 안철수 신당이 출범하자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안철수 의원에 대해선 “양당 구조를 타파하고 제3 정치세력 출현을 갈망하는 ‘안철수 현상’을 본인 스스로 걷어찼다”며 “정치 개혁에 대한 성찰과 고민이 부족했다. 중앙당 축소 등 한국 정치의 미국화를 꾀하려 했다. 기본적으로 내공이 약했다”고 평했다.


광주=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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