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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위협요인 콕 집어내는 건 훈련된 집단의 눈

중앙선데이 2014.10.26 00:55 398호 6면 지면보기
올해 대한민국에선 유독 안전사고가 많았다.

200년 안전제일 기업, 듀폰에서 배운다

 2월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고를 시작으로 세월호 침몰사고, 판교테크노밸리 환풍구 붕괴사고로 큰 인명 피해를 봤다.

 전문가들은 모든 안전사고 이면에 하나의 법칙이 있었다고 말한다. ‘설마 이런 것까지’란 생각으로 안전 위협요인들을 무시했다는 점이다.

 누군가 세월호의 과적(過積)을 신고했다면, 환풍구에 올라가는 사람들을 제지했더라면, 애초에 환풍구를 만들 때 안전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경고했더라면 이런 사고는 벌어지지 않았을 거란 의미다.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는 안전 위협요인을 찾아내는 비상(非常)한 눈은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200년이 넘도록 안전을 최우선 경영철학으로 삼고 있는 세계적 화학기업 듀폰에서 해답을 찾아봤다.

안전의식은 상식과 원칙 지키는 것
2011년 7월. 출근을 준비하던 듀폰코리아 직원들은 회사에서 온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기습폭우가 쏟아지고 있으니 반드시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면 재택근무를 하라는 내용이었다.

 다른 국내 기업이라면 ‘놀랄 만한’ 일이었겠지만 이 회사 직원들은 태연했다. 듀폰코리아는 장마철 기습폭우가 내리거나 폭설이 있을 때 조기퇴근을 시키기도 한다. 100년 만의 폭우가 쏟아진 이날. 서울 우면산에선 산사태로 16명이 목숨을 잃었다.

 듀폰코리아가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것은 어떤 사업보다 직원 안전이 최우선이란 듀폰의 경영철학 때문이다. 전 세계 듀폰 사무실에는 ‘커미티드 투 제로(Commited to Zero·안전사고 제로(0)를 실천하라)’라는 슬로건이 걸려 있다.

 지난 22일 서울 역삼동 듀폰코리아 사무실을 찾았다. 전 세계 산업 평균의 5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안전사고율, 200년 전인 1811년 세계 최초로 기업 내 안전규칙을 만든 회사다.

 건물 3개 층을 쓰는 이 회사에선 어느 곳에서도 문턱을 찾을 수 없다. 혹시나 걸려 넘어질 수 있어서다. 사무실 곳곳에는 큼직한 볼록거울이 있다. 복도가 꺾어지는 곳이나 칸막이에 가려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을 볼 수 없는 곳이면 어김없이 달려 있다. 소화기와 비상용 손전등도 곳곳에 비치돼 있다.

 사무실 책상 위 필기구통도 여느 회사와는 다르다. 펜이나 가위칼 같은 문구류를 필통에 꽂을 때 날카로운 쪽이 아래로 가도록 해야 한다. 사규로 정해져 있어 고의로 이를 어기거나 반복되면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다.

 모든 사내 회의나 모임을 시작할 때 5분가량 안전보고(safety talk)를 하는 것도 일상적이다. 자신이 경험한 안전사고에 대해 동료들과 공유하는 자리다. 회사를 방문하는 외부인들은 마치 극장에서 비상대피로 안내를 받듯 비상구는 어디인지, 화재가 났을 때 동선은 어떻게 되는지 설명을 들어야 한다.

 듀폰코리아 김숙경 홍보담당 상무는 “유난스럽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상식과 원칙을 지키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상무는 “겉으로 드러나는 안전규정보다 더 중요한 건 직원 개개인의 인식”이라며 “안전의식이 몸에 배 있으면 오히려 이런 것들을 지키지 않았을 때 불안하게 느낀다”고 말했다.

 듀폰의 경영철학에서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게 된 것은 이 회사의 역사와도 관련 있다. 흑색화약을 생산했던 창업 초기, 몇 차례의 폭발사고를 겪으면서다. 1815년 폭발사고로 당시 전체 직원 3분의 1인 36명이 사망하고 창업자인 E. I. 듀폰의 부인과 직원들이 큰 부상을 입었다. 안전과 환경에 대한 인식이 없다시피 했던 19세기 듀폰이 사규에 안전규칙을 넣게 된 이유 중 하나다.

불안전한 행동은 남의 안전도 위협
듀폰코리아 안전환경팀장인 이명덕 부장은 듀폰의 안전사고 예방비법을 묻는 질문에 “끊임없이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듀폰 직원들은 안전에 위협이 되는 사안을 발견하면 반드시 이를 동료에게 알려 주고 해결책을 마련한다. 누군가 안전규정을 소홀히 할 때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에게 이를 알려 주의를 환기시켜 준다.

 “개인은 자기도 모르게 안전에 위협이 되는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이를 지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죠. 특히나 우리나라에선 ‘오지랖이 넓다’거나 ‘지적을 한다’는 소리를 듣기 쉬워요. 하지만 불안전한 행동이 남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생각하면 그런 불편함을 이겨 내야지요. 안전 위협요인을 찾아내는 비상한 눈은 개인이 갖고 있는 게 아니라 훈련된 집단이 갖고 있는 겁니다.”

 부주의한 개인의 단점을 훈련된 집단이 보완하고 끊임없이 주의를 환기시킴으로써 안전 위협요인을 제거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일종의 집단지성이 작동하는 셈이다.

 듀폰이 강조하는 두 번째 안전철학은 리더십에 있다. 임정택 듀폰코리아 사장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솔선수범하는 리더십과 몸에 체득된 개개인의 안전의식 가운데 하나라도 무너지면 안전은 지켜질 수 없다”고 말했다.

 임 사장은 “듀폰은 각국 법인 경영진에게 ‘안전을 책임지지 못하면 비즈니스도 할 수 없다(If you can’t manage safety, you probably can’t manage the business)’고 요구한다”며 “안전 리더십 없이는 안전한 기업·사회·국가도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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