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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CEO 승인 주총 열었더니 … 본인은 “안 하겠다” 불참

중앙선데이 2014.10.26 01:33 398호 12면 지면보기
지난해 12월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주요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협회장·학계 전문가 초청 오찬 간담회. 김정인 KCB 연구소장(오른쪽에서 셋째)이 박근혜 대통령 옆에 앉아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기업신용평가기관인 한국기업데이터(KED)는 지난달 17일 주주총회를 열었다. 안건은 신임 사장 후보 승인이었다. 하지만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사장으로 내정된 김정인 코리아크레딧뷰로(KCB) 연구소장이 주총장에 나타나지 않아서다. 자신이 내정된 줄도 몰랐고, 할 생각도 없다는 이유였다.

한국기업데이터 사장 선임 ‘묻지마 낙하산’ 해프닝

KED는 2주 전 김 소장을 사장으로 추대하는 긴급 이사회까지 열었다. 월급쟁이라면 소망하는 최고경영자(CEO)로 추천됐는데 후보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무것도 몰랐단다. 주총은 무기한 연기됐고 사장은 아직도 공석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청와대 간담회서 대통령 옆에 앉아 화제
대구여고와 경북대를 졸업한 김 소장은 국민은행 경제연구소에서 일하다 2005년 KCB 설립 당시 합류했다. 지난 4월 전무로 승진한 지 불과 다섯 달 만에 다시 KED 대표이사로 추천됐다.

업계에선 이런 이력보다 지난해 12월 청와대 금융인 간담회 때 김 소장이 박근혜 대통령 바로 옆에 앉은 게 더 화제였다. 그 자리엔 은행·증권사 CEO와 금융당국 수장들도 참석했는데 규모가 별로 크지도 않은 회사의 상무급 연구소장이 대통령 옆에 앉아 ‘김정인이 누구냐’라는 말이 나왔다.

이에 대해 김 소장 측은 “박 대통령 옆에 앉게 된 것은 우연이고 본인도 간담회 당일 앉을 자리를 통보받고 당황했다더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김 소장은 왜 사장 자리를 고사했을까. 윤주필 KED 노조위원장의 말이다.

“이사회가 열리기 전 김 소장이 내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연락을 해서 만나자고 했다. 여의도에 있는 우리 사무실 근처에서 만나 ‘청와대에서 낙점한 낙하산 사장이란 우려가 있다. 개인신용평가 전문가인데 기업평가는 문외한 아닌가. 또 연구원 출신이라 경영 능력도 의문시된다. 회사 경영에 대한 열정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대뜸 ‘사장을 할 생각이 없다’고 말하더라.”

이에 대해 취재를 거부하던 김 소장은 회사 홍보실을 통해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혀왔다.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KED 노조라기에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사장에 내정됐다고 하더라.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했더니 내정된 것은 사실이니 한번 만나자고 해 만난 것뿐이다. 물론 사장 자리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KED 노동조합이 서울 여의도 본사 사무실에 ‘낙하산 인사를 거부한다’며 내건 플래카드.
본지는 김 소장에게 ‘관심이 없었다면 왜 금융위원회에 사장 후보 추천에 필요한 인사 자료를 제출했느냐’고 질의했다. 김 소장은 이에 대해서도 “두세 달 전 금융위에서 인재 풀에 포함하겠다고 해서 제출한 것뿐이다. KED 사장 같은 구체적인 언급은 없어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몰랐다”고 대답했다.

처음부터 몰랐다면서 검증 자료 제출
금융위는 사장 후보로 추천된 사람이 막판에 거부한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그냥 천거된 게 아니라 사장 후보로 최종 확정까지 된 사람이 갑자기 안 하겠다고 해 황당했다”며 “인재 풀에 포함하겠다고 하면 당연히 자기가 어딘가의 기관장이나 임원으로 고려되는 줄 알아야지 그걸 몰랐다니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애초에 왜 김 소장이 천거됐는지에 대해선 “개인신용평가 전문가이긴 하지만 기업평가도 같은 신용정보 업무이고 여성이란 점이 고려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KED는 2005년 신용보증기금·기업은행 등 국책기관과 은행연합회·시중은행 등 민간기관이 출자해 설립한 회사다. 회사 규모는 작지만 8600여 개 기업과 기관을 고객으로 두고 있기 때문에 꾸준히 매출이 생기는 알짜 회사다.

원래 KED의 최대 주주는 지분 43%를 가진 신보였다. 이 때문에 그동안 경제관료나 신보 출신이 사장 또는 임원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2012년부터 시중은행들의 지분을 늘리는 방식으로 민영화가 추진되면서 지난해 하반기에 신보 지분이 15%까지 줄고 민간 주주의 지분이 크게 늘었다.

신보 관계자는 “지분이 많이 줄면서 예전에 비해 KED 상황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사장 선임은 정부에서 하는 거라 아무리 주주기관이라 해도 이사회나 주총에서 발언권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결국 KED의 사장 선임 해프닝은 김 소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부 측에서 본인의 의사도 확인하지 않고 어설프게 낙하산을 내려보내려다 당사자가 거부하면서 무산된 한 편의 코미디로 볼 수 있다. 정확히 누가 김 소장을 사장 후보로 추천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금융위 관계자는 “대통령과 청와대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사장의 신상과 능력을 검증해야 할 이사회는 청와대에서 사인이 왔다는, 확인되지도 않은 말에 거수기 역할만 했다.

KED는 경영 공백 상태
그 결과 KED는 경영 공백 상태에 들어갔다. KED 관계자는 “다음 주총이 언제 열릴지 모른다. 몇몇 인사가 사장 자리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데 제대로 자격을 갖춘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신용정보업계 관계자는 “언론에서 아무리 비판을 해도 낙하산을 내려보내려는 시도는 멈추지 않는다”며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KED 해프닝 같은 일은 금융계에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고 전했다. 그는 “낙하산을 내려보내면서 당사자의 의사를 확인하지도 않는 난맥상까지 나타나고 있어 답답하다”고 덧붙였다.


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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