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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교육부, 절차 무시하고 총장 임용 ‘사전협의’ 의혹

중앙선데이 2014.10.26 01:53 398호 14면 지면보기
국정감사 도중에 교육부 간부의 설명을 듣고 있는 황우여 교육부 장관. 그는 지난 8일 국립대 총장 임용 제청 거부에 대한 질의를 집중적으로 받았다. [뉴시스]
“그 이유를 정말 알고 싶다.” 한국방송통신대(이하 방송대) 농학과 류수노(58) 교수는 24일의 통화에서 이 말을 반복했다. “교육부에서 총장 임용 제청을 거부한 까닭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그는 지난 7월 11일 이 대학의 총장 선거에서 1위를 차지했다. 교수·직원·학생·외부 인사로 구성된 50명의 선거인단 투표에서 31표를 얻었다. 직선제에서 간선제로 바뀐 뒤의 첫 선거였다. 투표 결과 공개 직후 언론들은 방송대 설립(1972년) 이후 최초의 모교 출신 총장 탄생을 예고했다.

선출은 됐지만 임명은 안 되는 ‘수상한’ 국립대 총장 공석 사태

하지만 그는 아직 총장이 되지 못했다. 최소한 수년간은 총장이 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교육부가 선거에서 1위(류 교수), 2위(중문과 김영구 교수) 모두에게 부적격 판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사유를 밝히지 않았다.

공주대 경영학과의 김현규(58) 교수도 “정말 이유를 모르겠다. 혹시 알게 되면 내게 꼭 알려 달라”고 말했다. 그 역시 지난 4월 공주대의 간선 총장 선거에서 1위를 했지만 교육부에서 청와대에 임용 제청을 하지 않았다. 2위 후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도 교육부는 두 사람 모두 부적격인 이유를 공개하지 않았다. 김 교수는 교육부를 상대로 처분 사유를 밝힐 것 등을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내 승소했지만 교육부는 이에 불복하며 항소했다.

한국체대에서도 비슷한 일이 진행 중이다. 지난 7월 총장 선거인단 투표에서 조현재(54)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학교는 그와 2위 후보를 교육부에 총장 임명 후보로 올렸으나 교육부는 임용 제청을 거부했다. 역시 까닭은 공개하지 않았다. 조 전 차관은 “무엇이 문제인지 나로선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교육부, 거부 사유 공개 요구에 불응
지난 11일 교육부를 상대로 한 국정감사에서 박주선(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임용 제청 거부 사유를 본인에게도 알려 주지 않는 점을 지적했다. 박 의원의 질의에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의원님 말씀을 존중해 그렇게 하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황 장관이나 교육부는 25일까지도 이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다.

방송대 류 교수는 22일 국민권익위원회에 교육부가 사유를 알려 주도록 해 달라는 청원을 했다. 방송대 학생들은 ‘이유를 공개하든지 아니면 임용 제청을 하라’고 요구하며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조 전 차관은 최근 한국체대에 추천 과정을 심의해 문제가 없다면 다시 교육부에 총장 후보로 올려 달라고 요청했다. 모두 이유도 모른 채 ‘부적격’의 불명예를 그대로 감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립대 총장 선거 뒤 왜 잇따라 이런 일이 생겨날까. 도대체 왜 이들은 총장으로 임명되지 못했을까. 그리고 교육부는 왜 당사자에게조차 설명을 하지 않고 있을까. 당사자는 물론 해당 대학들이 갖는 의문이다.

한 총장 후보자는 “교육부의 자체 판단이 아니라 ‘윗선’의 결정이라 교육부가 밝힐 수 없는 것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그의 추측이 사실이라는 근거는 없다. 다만 임용 제청 거부에까지 이르는 과정에 다소 ‘특이한’ 일이 있었다.

방송대 류 교수는 “학교에서 교육부에 선거 결과를 보고한 지 열흘 뒤쯤 청와대 직원이라며 전화를 걸어와 인사 검증 차원이라며 과거의 일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고 말했다. 공주대 김 교수 역시 같은 일을 겪었다고 밝혔다. 조 전 차관에게도 같은 경험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는 답변을 피했다.

방송대 총장 후보, MB 때 시국선언 참여
국립대 총장 임용은 대학에서의 선거→1위와 2위 후보자에 대한 교육부 인사위원회에서의 심의→교육부 장관이 청와대에 임용 제청→청와대의 임명 여부 결정 순으로 이뤄진다. 따라서 교육부의 발표대로 자체 심의에서 문제가 발견돼 청와대에 대한 임용 제청을 거부했다면 청와대에서 이들에 대한 인사 검증 작업을 할 필요가 없었다. 류 교수와 김 교수의 주장대로 청와대 직원들이 검증작업을 벌였다면 교육부가 외부에 대한 설명과 달리 실제로는 임용 제청을 했거나 아니면 부처 심의 단계에서 청와대와 협의했다는 얘기가 된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임용 제청 여부 결정 전에 다른 부처나 기관과의 협의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도 협의 대상에 포함되느냐”는 질문에 그는 “더 자세히 얘기하기는 곤란하다”고 답했다. 류 교수 등에 대한 청와대의 인사 검증 실시 여부에 대해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해당 부서에 물어보니 인사와 관련된 내용은 일절 확인해줄 수 없다고 답변했다”고 말했다.

최근 차관급 자리에서 퇴직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고위직 인사를 할 때 절차적으로는 부처가 후보를 결정한 뒤 청와대에 올리는 것으로 돼 있지만 공식적으로 청와대에 서류를 올리기 전 미리 보고를 한다. 교육부의 대학총장 인사 문제도 그런 식으로 진행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만약 임용 제청 전에 청와대와 의논을 했다면 이는 정해진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익명을 원한 한 대학교수는 “대학총장에 대한 임명권자가 대통령이기는 해도 교육부의 자체적인 심사 과정에까지 청와대가 개입한다면 이는 권력 남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방송대 안팎에서는 류 교수가 2009년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에 참여한 게 문제가 됐을 것이라는 얘기가 돈다. 당시 전국에서 약 1000명의 교수가 ‘민주주의의 후퇴를 걱정한다’는 내용의 선언문을 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였다. 류 교수도 통화에서 “청와대 직원이라는 이가 서명한 이유를 캐물었다”고 말했다. 그는 “곽노현 교수와의 친분에 대한 질문도 있었는데, 난 곽 교수와 그리 가까운 사이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곽 전 서울시교육감은 방송대 교수 출신이다. 2009년의 서명에도 참여했다.


이상언 기자 joon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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